빛 바랜 묵은 책, 누군가에겐 빛이 된다
빛 바랜 묵은 책, 누군가에겐 빛이 된다
  • 뉴제주일보
  • 승인 2019.01.25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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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평국민학교 문예반 창간호 ‘갈매기’ 등
1965년 4월 간행된 연평국민학교(현 우도초등학교) 문예반 창간호 ‘갈매기’ 합철 모습.
1965년 4월 간행된 연평국민학교(현 우도초등학교) 문예반 창간호 ‘갈매기’ 합철 모습.

매년 이맘 때면 바빠지고 몸이 힘들다. 우리 제주에만 있다는 세시풍속 신구간때문이다.

대한 후 5일에서 입춘 전 3일 사이, 보통 일주일 정도 되는 이 기간에 평시에 하면 동티가 난다는 이사나 집수리 등이 집중적으로 이루어지는 까닭이다.

요즘은 예전에 비해 그런 걸 따지는 사람들이 많이 줄었다지만, 세시풍속이 어디 가겠는가.

확실히 예전만은 못해도 여전히 이사하는 집이 많다. 다들 이사를 하자면 집안에서 불필요한 것으로 판단되는 물건들부터 정리하기 시작한다.

이런 물건들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묵은 책이다. 이런저런 인연으로 그 집에 자리 잡은 철 지난 책들이 해고(?) 대상 1순위인 것이다.

하긴 새 집으로 이사 가는 데 새 책도 아니고 누렇게 변색된 데다가 퀴퀴한 냄새까지 나는 놈을 끌고 가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그 덕분에 요즘 우리 책방에도 평소보다 훨씬 더 많은 책들이 들어온다.

엊그제도 오후 느지막한 시간에 폐기 처리되는 책이 나오면 알려 주시는 분에게서 연락이 왔다. 필자가 좋아할 만한 칙칙한 책들이 많이 나왔다는 그 분 말씀에 달려가 보니 이미 모두 박스에 담겨 있어서 내용을 확인할 수 없었다.

어떤 책들인지 궁금한 마음에 어제 밤늦게까지 정리를 하고 보니, 아쉽게도 그 시커먼책들은 대부분 표지나 판권이 없어서 가치가 그다지 높지 않았다. 그래도 한 가지 다행스러운 건 우리 제주의 아동문학 연구에 필요한 잡지 몇 종을 그 속에서 찾아 낼 수 있었다는 것이다. 대중적인 관심을 받기는 어렵겠지만 우리네에겐 소중한 자료를 폐기 직전에 기사회생시킬 수 있어서 무척 기뻤다.

그 잡지들을 소개하자면, 먼저 19654월 창간호가 발행된 연평국민학교(현 우도초등학교) 문예반의 갈매기를 들 수 있다. 원고를 철필로 쓰고 등사기로 한 장 한 장 밀어서 만든 문예잡지로 19667월에 발간된 제7호까지 모두 일곱 권이 합철된 상태이다.

1967년 2월 간행된 세화국민학교 문예반 제24회 졸업 기념문집 ‘버들피리’ 표지.
1967년 2월 간행된 세화국민학교 문예반 제24회 졸업 기념문집 ‘버들피리’ 표지.

내용은 문예반 학생들의 작품을 실은 갈매기 문예를 중심으로 동무들의 작품’, ‘글짓기 교실등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다. 창간호 등에 실린 수많은 창간사와 격려사는 지역사회의 기대를 잘 반영하고 있다. 그 뒷부분에 19672월 세화국민학교 문예반에서 발행한 제24회 졸업 기념문집 버들피리가 함께 합본되어 있다.

다른 하나는 19675월 창간호가 간행된 고사리극화교육연구회의 고사리이다. 이 모임은 아동극을 통해 학습 효과를 증진하고 정서 순화를 도모할 수 있는 교육 활동의 이론과 실제를 협동 연구함으로써 교육의 향상 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설립된 특수한 분야의 연구회로 회원들은 모두 현직 국민학교 교원이었다.

마지막으로 19811월 창간호가 발행된 아동문학연구회의 새벽이 있다. 이 연구회는 북제주군 교육청 관내의 초등 교사로 조직된 국어과 연구써클로 모임 발족한 지 1년 만에 동인지로 발간한 게 이 잡지이다.

신구간을 맞이하여 집안 정리를 하실 분들은 묵은 책들을 내치시기 전에 한 번 더 살펴보시길 바란다. 댁에서는 이제 더 이상 필요 없는 책이지만, 곧 생긴다는 제주문학관이나 박물관 등에서는 소중하게 쓰일 자료도 혹여 있으리니.

1981년 5월 간행된 고사리극화교육연구회의 창간호 ‘고사리’ 제1~2호 표지.
1981년 5월 간행된 고사리극화교육연구회의 창간호 ‘고사리’ 제1~2호 표지.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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