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고 불가능의 사회
충고 불가능의 사회
  • 뉴제주일보
  • 승인 2019.01.23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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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종흠 전 한국방송대 제주지역대학장·논설위원

청춘은 아프다, 그리고 힘들다. 따라서 우리는 청춘에 대해서 위로는 하되 충고나 격려의 말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요즘 흔히 듣는 말이다.

청춘은 아프니까 건드리지 말아야 하며, 위안의 말만을 한다면 그 순간은 편할지 모른다.

청춘이 아픈 것은 자신에게 부족한 것이 많기 때문이다.

그것이 지식인지, 경험인지, 아니면 금전인지를 콕 집어서 말하기는 어렵지만, 완전체가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이러한 현상은 외부에서 들어온 바이러스 같은 것이 우리의 몸을 비정상적으로 만들어서 아픈 것과 같은 이치다.

병의 원인을 살펴 약을 쓰거나 치료를 해야 차도가 생기고 치료도 가능해진다.

그러나 당장 입에 쓰고 불편하다 하여 약은 먹지 않고 달콤한 것만을 고집한다면 병은 고치기 어려워질 것이다.

병을 만드는 원인이 존재하고 있는 외부에는 그것을 고칠 수 있는 치료제도 함께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하나의 예로 명절에 모인 가족들 사이에서 젊은 사람들이 싫어하는 질문을 듣게 될 경우를 들어보자.

어른들이 하는 질문은 압박을 주기 위한 잔소리라는 측면과 걱정을 기반으로 하는 충고라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어른들은 자신이 살아온 과정에서 깨닫게 된 삶의 이치와 방법을 후손들에게 알려주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하는 마음이 클 것이라는 믿음을 젊은이들이 가질 수 있다면 명절마다 압박감에 시달리는 일이 줄어들 것으로 사료된다.

물론 어른들이 살아온 방식과 젊은이들의 삶에 대한 태도가 다를 수 있고, 어른들이 무조건 자신의 방법만이 옳다고 강제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충고하는 어른은 조심스럽게, 받아드리는 젊은이는 겸손하게 예의를 지킨다면 명절의 만남이 좀 더 훈훈하게 되리라 생각한다.

자신의 결함이나 잘못을 고칠 수 있도록 진정의 마음에서 하는 말인 충고를 거부하는 현상은 전염병처럼 우리 사회 전반에 퍼져 있다.

어느 사이엔가 우리 모두는 스스로에 대해 너무 완벽하며, 잘났다고 생각하면서 외부로부터 무엇인가를 받아들이는 것은 거부할 뿐 아니라, 잘못된 것의 모든 원인은 바깥에서만 찾으려 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길거리를 가다 청소년들이 담배를 피우거나 술을 마시고 행패를 부리는 것을 봐도 제지하거나 따끔한 충고를 하지 못 한다.

식당에서 아이가 소란을 피워도 조용히 시키라는 말을 하지 못 한다.

이러한 현상이 발생하는 이유는 어느 누구도 외부의 충고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자칫 언쟁이나 싸움으로 번질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사람은 완벽한 존재가 아니므로 잘못이나 실수를 저지를 수 있지만 다른 사람의 행동을 보고 반면교사로 삼거나 충고를 받아들여 반성하며 고침으로써 삶을 발전적으로 만들어가며 살아왔다.

그러나 이제는 자신만이 최고이며, 완벽하다는 생각을 전제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 구성원 모두는 자신의 입장만을 매우 강하게 주장함으로써 거의 모든 상황에서 부딪힘이 일어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사회 구성원이 개별적으로 가지고 있는 요구와 불만은 어떤 거름막이나 완충지대가 없는 상태에서 직접적으로 드러나게 되고, 그것이 갈등의 폭발로 이어지면서 천문학적인 사회 비용을 지불해야할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이다.

지금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지도 못 하고, 뒤로 물러설 수도 없는 기로에 서 있다. 기욤 뮈소가 말한 돌이킬 수 없는 지점이 지금인 것이다.

잘못된 원인은 자신에게서 찾고, 외부에서의 충고를 받아들이면서 스스로를 발전적으로 이끌어나가려는 자세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기이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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