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산 노루는 유해동물인가?
한라산 노루는 유해동물인가?
  • 뉴제주일보
  • 승인 2019.01.22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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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철 자연사랑미술관 관장

한라산에 첫눈이 내리면 산속에 살던 노루들은 산에서 내려올 채비를 서두른다. 특히 그해 태어난 새끼노루와 암노루들은 서둘러 산에서 내려와 겨울나기를 준비한다.

최근에는 노루들이 오름을 중심으로도 서식하고 있지만, 그래도 주 서식지는 한라산이다. 한라산에 사는 노루들은 눈이 많이 내리면 먹이를 찾아 중산간 지역 등지로 내려온다. 이때 내려온 노루들과 오름 주변에 서식하는 노루들이 농작물에 피해를 주고 있어 농민들에게 미움을 사고 있기도 하다.

제주도에는 아주 오래전부터 섬 곳곳에 노루가 많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 숙종 28(1702) 이형상 목사가 화가 김남길을 시켜 그리게 한 탐라순록도에 보면 당시 녹산장 일대(현 교래리 지경)에서 하루 사냥에서 수십 마리의 노루를 잡았다는 기록이 있다.

1960년쯤에도 중산간 지역에선 개를 이용해 하루에 10여 마리의 노루를 쉽게 잡았다고 증언하는 주민들도 있다.

이 같은 기록으로 볼 때 한라산을 중심으로 제주 곳곳에는 참으로 노루가 많았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와 4·3사건 등으로 인해 노루가 급격히 줄어들기 시작했고 1960년 후반 들면서 급작스러운 남획으로 한때는 멸종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1980년도 초까지만 해도 한라산을 비롯한 제주 섬에서 노루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어쩌다 등산길에서 노루를 보면 대단한 행운이라고 여길 정도였다.

한라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면서 우마 방목이 금지됐고 한라산에는 노루들이 한두 마리씩 늘기 시작했다. 이런 소문이 퍼져나가자 도민들 사이에선 한라산 노루를 보호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기 시작했다.

1990년 도민들은 한라산 노루 보호 캠페인을 대대적으로 펼쳤다. 이와 함께 밀렵꾼 단속을 강력하게 실시했다. 그러자 한라산에는 하루가 다루게 노루가 늘어났다. 환경단체에서는 이때 벌인 노루 보호 운동은 우리나라에서 펼친 야생동물 보호 운동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꼽고 있다.

이런 노력 끝에 노루 수가 늘어났지만 덩달아 농작물에 피해 사례도 늘어나면서 일부 주민에게 애물단지로 취급을 당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야생동물 중 유일하게 떼 지어 다니는 한라산 노루의 모습을 본 사람들은 마치 캐나다 도심에서 사슴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는 모습과 호주의 캥거루들을 떠올린다. 제주도가 또 다른 자연 천국을 연출하고 있다고 신비로워한다.

인간과 야생동물이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자연이 살아 있다는 증거다. 인간과 야생동물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대책을 지혜롭게 세워 나간다면 앞으로 노루는 경제적 가치가 매우 큰 야생동물이 될 수도 있다.

외국의 예를 들어보자. 인도 서부 키친마을이 있다. 이 마을에 언제부터인가 두루미들이 날아들기 시작했다. 한 스님이 이 두루미들에게 먹이를 주기 시작했더니 매년 수만 마리가 날아왔다. 매년 이 두루미들에게 주는 양곡이 1.5t이나 됐지만, 마을 주민이 합심해 보호했고 지금은 1년에 15만 마리가 날아와 장관을 이룬단다. 마을은 두루미가 날아올 때에 맞춰 축제를 벌이는데 이 축제가 세계적인 축제가 됐다고 한다.

일본 나라(奈良)에 있는 동대사란 사찰은 사슴 공원으로 더 유명하다. 동대사보다 입구에 수백 마리의 사슴 떼가 더 구경거리가 되고 있다.

태국이나 인도 등 동남아 국가마다 코끼리와 야생동물에 의한 농작물 피해가 크다. 그러나 이들 국가에서 코끼리를 유해동물로 지정해 사살하지 않고, 어떻게 하면 공생할 것인가를 연구한다. 이러한 모습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할까.

한라산 노루가 농작물에 피해를 준다고 해 몇 년 전 유해동물로 지정, 포획 허가를 내렸다. 참으로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온 도민의 염원 속에 보호 운동을 펼쳐 겨우 노루들의 천국을 만들었는데 그 깊은 뜻이 한 순간의 결정으로 허물어지고 말았다. 이러고도 자연 천국의 섬이라고 할 수 있을까.

뉴제주일보  webmaster@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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