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익태, 그는 왜…
안익태, 그는 왜…
  • 뉴제주일보
  • 승인 2019.01.22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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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방울 고문헌 박사·논설위원

 

뜨끈뜨끈한 책 한 권이 우리 사회에 파문을 일으켰다. 지난 15일 출간된 이해영 교수의 안익태 케이스. 세계적인 음악가이자 지휘자로 알려진 안익태의 친나치 행적을 밝힌 책이다.

안익태가 우리에게 충격으로 다가온 것은 2000년대 들어 독일연방문서보관소 영상 자료실에 소장됐던 영상 자료 하나가 국내에 소개되면서였다. 그것은 19429월 에키타이 안(안익태의 당시 이름)이 베를린 방송 교향악단을 지휘하는 광경이다.

문제는 이 음악회가 만주국 창설 10주년 기념음악회라는 것이었고, 여기서 연주된 음악이 에텐라쿠(越天樂)’만주국환상곡이었다는 점이다. ‘에텐라쿠는 원래 천황 즉위식 때 연주됐던 음악으로 천황에 대한 충성을 중심 테마로 한다. 이를 바탕으로 에키타이 안이 새롭게 창작한 것이 당시의 에텐라쿠였다. 그리고 만주국환상곡은 만주국 건국을 주도한 일본을 중심으로 세계 평화와 신질서를 확립하자는 내용의 음악이다.

애국가한국환상곡의 작곡자에서 에텐라쿠만주국환상곡의 작곡자로, 안익태와 에키타이 안 사이의 이질적 어감만큼이나 다른 이 변화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1906년생인 안익태는 일본에서의 학업을 마치고 1930년 미국 유학길에 오른다. 193711월 유럽으로 활동무대를 옮길 때까지 미국에 머물렀다. 이때 미국에서 애국가를 작곡했다. ‘애국가의 테마를 관현악과 합창으로 확대한 것이 한국환상곡이다. 당시의 감정은 안익태 본인이 미주 한인 독립운동 단체 대한인국민회의 기관지인 신한민보에 쓴 1936326일자 기사를 통해 알 수 있다.

“5년 전 처음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했을 때 가장 인상적인 것은 샌프란시스코 한인 예배당 강당 위에 걸린 대한국의 태극기와 제일성에 처음 부른 대한국 애국가였다. 그런데 곡조가 스코틀랜드 민요에 맞춰 불리고 있어서 내가 새로 작곡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5년 동안 고심한 끝에 드디어 완성해 발표하게 됐다면서 다음과 같이 토로한다. “음악의 위대한 힘이 실로 민족 운동과 혁명 사업에 대단한 활기와 도움을 주는 것은 과거의 역사가 증명하는 바로서 진실로 바라건대 이 신작 애국가도 우리 민족 운동과 애국정신을 돕는 데 대한한 도움이 되기를 성실히 바라는 바입니다. 대한국 애국가를 부르실 때는 특히 애국가 말의 의미를 깊이 생각하면서 애국적 정신으로 활기 있게 장엄하게 부르시되 결코 속히 부르지 마십시오.”

그랬던 그가 이후 유럽에서는 전혀 다른 면모를 보여준다. 철저하게 일본 제국주의 편에서 그들을 옹호하는 음악 활동을 한 것이다. 독일, 이탈리아, 나치 치하의 프랑스, 헝가리 등 추축국 품 안에서 활동했으며 1943년에는 나치 독일의 제국음악원 정회원이 됐다. 나치 패망 이후에는 스페인으로 이주해 스페인 여성과 결혼하고 죽을 때까지 머물렀다. 당시 스페인 또한 파시스트 독재 국가였다.

1955319일 안익태는 고국을 떠난 지 25년 만에 입국한다. 326일 이승만 대통령 제80회 탄신축하음악회를 지휘하기 위해서였다. 이어 도쿄에서도 연주회가 있었는데, 여기서 한국환상곡을 지휘했다. 일본 합창단원들은 한국환상곡’ 4장에 들어있는 애국가를 한국말로 불렀다.

이때의 감정을 그의 부인에게 다음과 전했다고 한다. “음악이라는 것은 사람들의 뜻을 합치게 함으로써 모두가 한 형제처럼 서로 사랑하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구나. 내가 그들 머리 앞에서 군도(軍刀)를 휘둘렀더라면 아무도 노래를 부르려고 하지 않았을 텐데 지휘봉을 드니까 두말없이 노래를 불렀거든. 결국 두 나라는 음악을 통하여 형제국이 된 거요.”

36년 압제 후 시간이 얼마나 흘렀다고 음악 하나로 형제국 운운한단 말인가. 아마 그에게는 베를린에서의 활동이 완전히 잊혔거나 아니면 모두의 기억에서 잊히길 바랐는지도 모른다. 그래야 자기는 조국애와 인류애를 동시에 추구한 세계적 음악가 반열에 남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끝으로 영국 작곡가 콘스탄트 램버트가 한 말을 사족으로 붙인다.

수백명의 자원 입대자를 모으는 것은 정치 선전물이나 포스터로는 불가능하지만, 나팔과 북소리로 충분히 가능하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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