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통치에 유용하게 쓰일 재목, 누가 있을까?"
"조선 통치에 유용하게 쓰일 재목, 누가 있을까?"
  • 뉴제주일보
  • 승인 2019.01.18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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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신사대동보(朝鮮紳士大同譜)
조선신사대동보(朝鮮紳士大同譜,1913) 겉표지

때때로 요즘에는 보기 드문 책이나 자료를 찾는 이들의 문의 전화를 받는다. 우리 책방에 있는 거면 바로 드리면 되지만, 때로는 없는 책들도 있기 마련이다. 그런 경우 그 자료를 어디서 구할 수 있는 지, 가격은 어느 정도 하는 지 등을 수소문해서 알려드리곤 한다.

지난달에도 학위논문을 쓰기 위해 일제 강점기 초기에 나온 어떤 자료를 찾는 이가 있었다. 우리 책방에는 없는 책이어서 여기저기 알아보니 경상도 어느 헌책방에서 고가에 판매 중인 것을 발견하고 관련 정보를 알려드렸다. 그 분이 그 책을 구매를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논문을 쓰는 데 조금은 도움이 된 것 같아 뿌듯했었다.

이런 경우 얼마 후에 그 책이 책방에 입수되는 상황이 종종 있다. 이번에도 그랬다. 지난 주에 우연히 그 책을 발견하고 반가운 마음에 바로 입수하게 되었다. 그 책이 바로 1913년에 발행된 “조선신사대동보(朝鮮紳士大同譜)”(日韓印刷株式會社)이다.

편찬자인 오오가키 다케오(大垣丈夫)는 1899년 도쿄에서 “사쿠라신문(さくら新聞)”을 창간했던 저널리스트로 대한자강회(大韓自强會)의 고문을 지낸 인물이다. 그가 합병된 조선의 왕족과 귀족 등 지도층 인사 1만여명의 신상 자료를 모아 편찬한 게 바로 이 1364쪽짜리 책이다.

그의 서문에서 인용한 말 “많은 목재를 모아야 집 짓는 데 있어 각각의 쓰임새를 알게 된다(聚衆材然後知作室之用)”(程頤)에 편찬 목적이 잘 나타나있다. 바로 합병된 조선의 인물 가운데 일본의 조선 통치에 유용하게 쓰일 재목들을 파악하기 위함이었다.

수록된 인물은 왕족 5명과 일본으로부터 작위를 받은 귀족 61명을 필두로 156개 성씨별로 전국에서 여론주도층에 해당하는 인사들을 포함하고, 마지막으로 효자, 열녀, 부인(夫人)부를 두어 함께 기록하고 있다.

이들 모두가 친일인사라고는 말할 수 없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항일인사들은 거의 찾아볼 수 없는 것을 보면 이 책 속 인물들의 성향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이는 판권부분에 명시된 한권에 3원씩, 사진을 수록하는 경우 2원을 추가하고 송료 18전을 별도로 받았다는 기록을 통해서도 증명되는 바이다.

 조선신사대동보(朝鮮紳士大同譜,1913) 귀족부 부분

당시 설렁탕 한 그릇에 5전이라 하니 지금 돈으로 환산하면 대략 50~90만원에 해당하는 돈을 내면서까지 이 대동보에 자신의 이름을 올린 것 자체가 친일은 아닐지라도 최소한 일제에 순응하는 태도를 가진 인물들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책을 보다보니 발간 후 한동안 시끄러웠고 지금도 시끄러운 일제의 식민지배에 협력했던 인사 4389명의 친일 행각을 담은 “친일인명사전”(전3권,민족문제연구소,2009)이 떠오른다.

100여 년 전 자진해서 유료(有料)로 이 대동보에 이름을 올린 인사들과 친절하게도 무료(無料)로 수록해 준 10년 전 인명사전 속의 인물들이 당연하게도 다수 겹친다. 발간 당시 이 책에 수록된 인사들에게는 가문의 영광이었을 테니 돈까지 냈겠지만 이젠 부끄러운 것임을 그들도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1만여 권은 발행 되었을 이 책이 지금은 아주 보기 드문 책이 되었으니 말이다.

이 책에 관심있는 분들은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http://db.history.go.kr)를 이용하시라. 무료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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