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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2019년
  • 제주일보
  • 승인 2019.01.07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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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윤호 한국영화감독협회 이사장·동국대 영상대학원 부교수

2019년 새해가 밝았다. 3·1 만세운동, 임시정부, 한국영화 100년을 맞는 기쁜 해인데도 많은 사람의 표정이 그리 밝지만은 않다. 어쩌면 제2의 국치(國恥)라고 여겨졌던 1998IMF 때보다도 삶이 더 팍팍해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현재의 양상은 그때와는 조금 다르다. 당시엔 대기업이 무너지고 이에 따른 협력업체들이 줄도산하고 그 여파로 또 다른 대기업이 몰락하고 줄도산하는 한 마디로 대규모 실업 사태와 경제공황이 동시에 덮쳤었다.

반면 지금은 대기업의 몰락 등이 없어서 당시보다 차분해 보이지만 그 위험성은 더 심각하다. 소리 없이 비명을 지르고 있는 게 자영업자, 중소기업 등 바로 소시민들이기 때문이다. IMF 당시 가장 큰 후유증이 두터웠던 중산층의 붕괴라면 지금은 서민층의 몰락이고 양극화의 심화다.

1910년 경술국치(庚戌國恥)는 우리나라 역사상 처음으로 국권을 일본에 빼앗긴 치욕의 날을 일컫는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그 부끄러운 역사를 잊고 싶은 게 당연하다. 필자 역시 한말(韓末)의 역사는 낯이 뜨거워서 들여다보기가 부끄럽다.

그럼에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놀라운 일들이 많다. 이미 15년 전에 한 나라의 왕비가 자신의 궁궐 안에서 일본인들의 정교한 계획 아래 무참히 살해됐다. 그리고 5년 전에는 외교권을 뺏기는 을사늑약이 있었고 3년 전에는 고종이 이토 히로부미에 의해 강제 퇴위 되기도 했다. 그러니 경술국치는 놀라운 일이 아니라 당연히 벌어질 일이었다. 미래가 명약관화(明若觀火)하게 이미 15년 전에 보였는데도 아무도 우리 민족의 치욕을 막지 못했다.

그럼 당시의 사람들이 어리석거나 다 변절자만 모였던 것일까?

아니다. 똑똑한 사람들이 너무나 많았다. 그 중에는 일본, 미국, 유럽 등 유학파도 다수였다. 이미 나라 밖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알고 있는 사람도 많았고 나라를 위해 목숨을 초개(草芥)와 같이 바칠 충신도 많았다.

1905년부터 경술국치까지 수많은 의병과 의군이 대한제국 혹은 조선을 위해 싸우다 죽었다. 그럼에도 임진왜란 때처럼 일본군을 몰아내고 나라를 되찾기는커녕 일본의 제국주의의 긴 터널에 빠져들었다. 왜 이렇게 됐을까?

필자가 조사한 바로는 그 첫 번째가 내분(內分)이다. 어느 드라마에서 일본인이 한 대사다.

조선인들은 잡초처럼 강하다. 아무리 짓밟아도 또 싹을 틔우고 일어나는 족속들이니, 폭력만으로 안 된다. 그들 뿌리에 썩은 뿌리를 접붙여야 한다. 나라도, 민족도 필요 없고 오로지 자신의 출세와 명예만을 바라는 조선인, 그 썩은 조선인을 건강한 조선의 뿌리에 심는 것 그게 조선이 자멸하게 할 유일한 방법이다.”

물론 이 대사는 일본인이 조선을 점령하기 위한 방책 가운데 나온 말이지만 이 말을 이토 히로부미가 했다 한들 전혀 이상한 게 없을 정도다. 임진왜란의 실패로 배운 그들만의 조선 침략방법이다. 똑똑한 조선인들이 자기들끼리 싸우게 만드는 것. 이것이 이토 히로부미의 전술이었고 이것은 거의 들어맞았다. 똑똑한 사람이 많고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칠 충신이 많았음에도 일본에 어이없이 무너진 이유다.

물론 그 외에 대외 정세에 적응을 못 한 면이나 임금으로서 고종의 역량이 너무 부족했다는 이유 등이 있을 수 있지만, 필자가 보기에 한말의 가장 큰 비극은 내분에서 왔다.

2019년 새해에 경술국치와 IMF, 그리고 현재의 정세 등이 연관 지어 떠오르는 것은 기우일까? 예나 지금이나 똑똑한 사람이 많고 여전히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국민이 많다. 그럼에도 우리끼리 갈리고 싸우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아무리 시끄러운 민주주의가 좋다지만 그것도 너무 과하면 서로에게 상처가 된다. 지금은 스스로 겸손하게 우리의 신발 끈부터 잘 매고 주변을 돌아보며 다 같이 미래를 향해 나아가야 할 때다. 2019년엔 더 많은 사람이 행복하게 웃었으면 좋겠다.

제주일보  webmaster@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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