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입시, 무엇을 고민해야 하나
고교 입시, 무엇을 고민해야 하나
  • 홍성배 기자
  • 승인 2019.01.03 12: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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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학년도 제주의 고교 입시는 유난히 주목을 받았다. 연합고사라고 불리던 고입 선발고사를 폐지하고 대신 내신성적 100% 전형을 실시한 첫 해였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 문제는 지난 교육감선거에서도 주요 쟁점이었다.

원서접수 결과 제주시는 물론 서귀포시와 읍·면지역 일부 비평준화 고등학교도 정원을 초과하거나 유지했다. 제주시 평준화지역 일반고는 중복지원자를 제외할 경우 지난해보다 탈락자가 크게 감소할 것으로 예측됐다.

연합고사 폐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상존하던 상황이어서 제주도교육청은 이 같은 원서접수 결과에 안도하는 모습이다. 도교육청은 비평준화지역 학교에 고르게 지원하는 흐름이 안정화되고 있고, 고교체제 개편과 읍·면지역 일반고 활성화 정책이 의미 있는 효과를 낸 것으로 분석했다.

도교육청의 평가는 상당 부분 일리가 있어 보인다. 현행 대학입시에서는 수시모집 비중이 압도적이다. 이 같은 흐름을 파고들어 서귀포지역과 읍·면지역 고교가 입시에서 성과를 올리면서 해당 지역 학생들의 유출이 크게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이번 고입에서 상대적으로 유리할 것으로 예상됐던 읍·면 학생들의 제주시행이 예상 외로 크지 않았던 것으로 집계됐다.

그럼에도 방향을 조금 돌려보면 만만치 않은 문제가 도사리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모든 입시업무가 전산처리 되고, 진학담당 교사들 사이에서 정보가 공유되는 상황에서 시험이 없다면 당락을 가르는 대략의 커트라인은 사실상 예측가능하다. 무모한 도전임이 불 보듯 뻔한 상황에서 독불장군처럼 원서를 쓸 수 있는 부모가 몇이나 될까. 합격선을 계산하며 한 명의 제자라도 더 진학시키기 위해 분주했던 교사들의 분투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고입제도와 관련해 전교조 제주지부가 발표한 오래된 설문자료가 하나 있다. 제주시지역 중학교 3학년 685명을 대상으로 2010년 고교입시에 대한 실태조사에서 4명 중 3명이 제주시내 평준화지역 일반계고 진학을 희망했고, 외고와 과학고를 포함할 경우 80%가 넘었다. 비슷한 시기에 제주시 동지역 중학교 학부모 761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5명 중 4명이 자녀들이 평준화지역 일반계고 진학을 희망했고, 특목고에 대한 진학 희망 비율까지 합할 때 87%에 달했다.

8년여의 시간이 지난 지금 당시 조사에서 부모들 55.4%가 원했던 대로 선발고사 없이 내신성적 만으로 선발하도록 고입제도가 바뀌었고, 제주시 동지역학생의 평준화고 진학비율도 올해는 60%선이 예상되는 등 다소 늘어난다.

그러나 서울 등 다른 지역 수준(80% 정도)과는 비교가 안 된다. 사정이 달라졌다지만 해마다 평준화고 입시 탈락자는 적게는 수십 명, 많게는 200명 가까이 이를 정도였다. ‘좁은 문’을 만들어놓고 제주지역만 유난히 평준화고를 선호한다는 논리는 억지다. 치열한 경쟁을 모르는 다른 지역과는 비교 자체가 무의미하다.

선발고사에서 내신 100% 전형으로의 변경은 전국적인 추세인데다 그 자체로 의미를 갖는다. 하지만 전체 선발 비율의 재조정이 없는 상황에서 학생들에게는 외부와의 경쟁에서 내부 경쟁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어제까지 무조건적 돌진도 있었다면 이제는 내신성적에서 합격선에 미달하면 스스로 희망학교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다. 제주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로 어린 나이에 겪어야 하는 스트레스와 상실감은 마찬가지다.

물론 고교입시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 우선 지역의 이해가 맞물려 있다. 고교체제 개편의 중단 없는 추진과 특화프로그램을 통한 읍·면 고교의 성장 등도 이뤄져야 하지만 무언가 부족하다. 학생과 학부모, 즉 수요자의 욕구를 마냥 모른 채 할 수는 없다. 다른 지역만큼 평준화고 입학비율을 올릴 수 없다면 과연 우리가 합의할 수 있는 선은 어디까지인지 이제라도 사회적 논의가 시작돼야 한다.

홍성배 기자  andhong@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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