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 특집] “제주 정체성 위기…경관·지문 살리는 도시로 가꿔야”
[신년 특집] “제주 정체성 위기…경관·지문 살리는 도시로 가꿔야”
  • 변경혜 기자
  • 승인 2018.12.31 19: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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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다움을 말하다 / 승효상 국가건축정책위원장
승효상 국가건축정책위원장이 지난달 25일 서울 대학로에 있는 그의 건축사무소 이로재(履露齋)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승효상 국가건축정책위원장이 지난달 25일 서울 대학로에 있는 그의 건축사무소 이로재(履露齋)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제주의 기록을 남기는, 지문(地文, 땅의 무늬)을 살리는 도시로 가꿔갈 것을 제안하는 승효상 대통령직속 국가건축정책위원장을 지난달 25일 서울 대학로에 있는 그의 건축사무소 이로재(履露齋)에서 만났다. 그는 제주와 깊은 인연을 맺고 있어 최근 몇 년새 급격한 개발로 몸살을 앓고 있는 제주에 대한 걱정이 깊었다. 

한라산에서 해안까지 사방으로 내뻗은 지맥을 수십년간 계속된 도로 개발로 참혹하게 난도질한 것을 치유하는 것, 이것이 제주도의 지문(地文, 땅의 무늬)을 살리는 첫 번째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제주다움을 살리는 방법에 대한 건축가 승효상의 첫 번째 해답이다. 사람에게 각기 다른 지문이 있듯 모든 땅, ()에도 고유의 무늬를 가지고 있어 지문을 잃은 건축, 과거의 기억을 잃은 건축은 터 무늬 없기에’ ‘터 무늬 있는 건축을 이야기하는 그는 제주의 지문을 살리는 도시로 가꾸는 것이 가장 필요하다고 말했다.

2007년 우리나라에 경관법이 처음 도입된 후 제주에서 4년간 경관관리위원장을 지냈고 3년에 걸쳐 제주의 경관관리지침을 만들며 누구보다 제주의 속살을 잘 알고 있는 터. 더욱이 세계가 인정하는 한국의 대표건축가로 왕성한 활동을 하던 시기, 제주와 인연을 맺었기에 최근 몇 년새 급격하게 개발로 몸살을 앓고 있는 제주에 대한 그의 비판엔 냉정과 안타까움이 가득하다.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를 보면 한라산을 중심으로 바다로 뻗어나가는, 평면이 아닌 매우 입체적인 제주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특히 이 지맥, 루트를 보면 곳곳에 독립적인 공동체 마을을 형성해온 것을 알 수 있지요. 마을목장이 그 예지요. 그런데 산업도로를 시작으로 해안도로까지 몇십년 동안 지독하게도 꾸준히 가로세로 격자형태의 아스팔트가 그 생태선을 다 끊어놓았어요. 옹벽을 쌓아올린 해안도로는 바닷물로 인해 언젠가 다 떨어져 나가죠. 이대로 두면, 심하게 얘기해서 제주는 바다에 떠있는 섬이 아니라 아스팔트 위에 떠있는 섬이 되고 맙니다.”

그는 급격히 늘어난 제주의 고가의 아파트 이야기도 꺼냈다. 공동주택이라고 규정짓고 사람들이 붙어살지만 공동체적 삶과는 거리가 먼 부동산 버블에 전전긍긍하게 만드는 주인공이다.

제일 나쁜 게 대규모 개발사업인데, 특히 아파트가 제일 나빠요. 건물 하나는 그래도 도시풍경이나 장소에 많은 영향을 주지 않지만 대규모 아파트단지는 달라요. 육지의 다른 도시인 서울, 대구, 부산이나 제주가 다를 바가 하나도 없어요. 건설회사 컴퓨터 파일에서 꺼내져 같은 문법으로 항상 짓기 때문입니다. 산이 있으면 깎고, 계곡이 있으면 메워버리고, 제주의 지문을 깡그리 없애버리는 거죠. 제주의 지역성이나 정체성을 건설회사들이 고민을 할까요? 제주시의 경관이, 서귀포시의 경관이 그렇게 깡그리 망가지고 있어요.”

걱정과 경고의 말들을 이어간 그는 다른 어떤 지역보다도 제주에 총괄건축가 제도가 하루빨리 도입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총괄건축가는 공공건축물의 정비사업 계획과 설계 단계에서부터 전문가와 지역주민들이 의견을 모아 도시경관을 체계적이고 종합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제도다.

기존의 경관지침에 입각해서 아주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어야 합니다. 물론 공공의 가치를 신념으로 가진 분이 이끌어야 합니다. 그래야 제주의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지요. 특히 제주는 육지와 전혀 다른 성격을 갖고 있어서 제주를 정확하고 잘 파악할 수 있는 사람이 추진한다면 그 효과가 더욱 크게 나타날 겁니다.”

2009년 전국에서 처음으로 총괄건축가제도를 도입한 경북 영주시는 공공건축과 도시재생 사업 기획부터 시설 조성, 운영 등 전 과정에 지역주민들과 적극적인 협력을 이뤄내 도시경관 뿐 아니라 협동조합까지 만들어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한몫을 하고 있다. 2015년부터 서울시가 도입했고 인천시 서구도 추진 중이다.

그러면서 그는 우리나라 경관지침 중 제주도의 지침이 가장 훌륭하다는 말을 빼놓지 않았다.

제주도 경관지침에는 지문을 철저히 존중하라고 나와 있어요. 건물을 배치하거나, 형태를 만들 때, 집합을 할 때도 모두 지문을 존중하도록 돼 있어요.”

그가 경관위원장에서 물러나자 허가가 이뤄진 드림타워나 신화역사공원 등 대규모 개발사업에 대한 쓴소리를 하며 가슴 아픈 게 한 두가지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다만, 개발의 임계점에 다다랐다는 걸 잊어선 안된다는 점을 거듭 강조하며 중국 항저우의 량주문화촌(良渚文化村) 설명을 곁들였다.

부동산으로 돈 버는 것만큼 허망한 건 없어요. 우리나라에만 있는 아파트 선분양제와 달리 중국만 해도 양질의 주거풍경을 구축해 놓고 있어요. 상업적 이득을 넘어 새로운 사회를 실현하기 위해 특별한 주거단지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는데 농산물과 생활품을 나누는 장터, 교통수단, 다양한 주거형태와 여가시설 등 이미 량주문화촌이 공유사회를 여실히 증명하고 있어요. 그렇다고 이들이 경제적 여유가 없는 것도 아니예요. 부유하지만 공유사회를 위해 그렇게 살기로 결심한 거죠. 옛날 우리의 마을과 마찬가지 형태입니다. 마을마다 독립된 촌락을 형성해온 제주가 공유사회의 성공모델을 제시한다면 우리사회의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해봅니다.”

그가 제주에 남긴 건축물중 특히 애착이 간다는 감자(지슬)창고별명이 붙은 서귀포시 대정읍 추사관이야기를 꺼냈다.

추사의 삶을 어떻게 구현해낼까 고민 끝에 굉장히 소박하게 지었어요. 제주의 지형특성상 땅을 파는 게 힘들었지만, 고민 끝에 지하화 했어요. 그런데 주민들이 지슬창고라면서 크게 실망한다는 거예요. 강의를 했죠. 추사관이 지슬창고로 불려도 좋은데, 취지가 이렇다라고. 이해를 하셨어요. 주민들이 현명한 거죠. 그러면서 자랑스런 감자창고라는 별명도 생겼어요. 소통하면 답이 나옵니다. 제주가 소통하며 지속가능한 미래를 만들어나가길 희망합니다

승효상 위원장은…

서울대학교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과 오스트리아 빈 공과대학에서 수학했다.

1974년 김수근의 문하를 거쳐 이로재를 개설했다. 20세기 서구문명에 대한 비판에서 출발한 ‘빈자의 미학’이라는 철학을 바탕으로 좋은건축을 추구하고 있다. 파주 출판도시 프로젝트에 코디네이터로 참여해 건축 지침과 마스터플랜을 기획하고 건설을 총지휘했고 2002년 미국건축가협회로부터 ‘명예 회원’으로 추대됐다.

서울시 초대 총괄건축가를 역임하고 현재 문재인정부 국가건축정책위 위원장을 맡고 있다.

대표작으로 문화재청장을 지낸 유홍준의 자택 ‘수졸당’, 광고를 공부하는 학생부터 전문광고인이 함께 쓰는 플랫폼인 ‘웰콤시티’, ‘노무현 대통령 묘역’ 등이 있다.

한국전쟁 당시 피난민이었던 부모가 제주에서 재회, 부산에서 태어난 그는 자신을 ‘메이드 인 제주’라고 소개하며 제주와의 깊은 인연을 전한다.

 

변경혜 기자  bkh@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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