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특집] 전환점 맞은 4·3…해원과 평화 ‘새로운 시작’
[신년특집] 전환점 맞은 4·3…해원과 평화 ‘새로운 시작’
  • 고경호 기자
  • 승인 2018.12.31 19: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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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차원 진상조사 16년째 제자리…행불 희생자 등 추가 실태 조사 절실
70주년 전국화 속 미국 책임론 부상…객관적인 사료·근거 확보 노력 필요
특별법 개정안 통과 위한 내실화 요구…정명·세계기록유산 등재도 해결 과제
기해년 새해를 맞은 제주 4·3은 앞으로 완전한 해결을 위해 특별법 개정 등의 현안 과제를 슬기롭게 풀어야 할 전환점을 맞고 있다. 사진은 제주4·3평화공원 내 조형물과 행방불명인 표석 (임창덕 기자  kko@jejuilbo.net)
기해년 새해를 맞은 제주 4·3은 앞으로 완전한 해결을 위해 특별법 개정 등의 현안 과제를 슬기롭게 풀어야 할 전환점을 맞고 있다. 사진은 제주4·3평화공원 내 조형물과 행방불명인 표석 (임창덕 기자 kko@jejuilbo.net)

70년간 제주4·3은 비극의 역사로 점철돼왔다. 지난해 전국화라는 성과를 거뒀지만 공권력에 의해 희생된 도민들에 대한 명예회복과 정부, 그리고 미국의 책임을 묻기 위한 진상 규명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70년을 지나 100년을 향해 가는 제주4·3이 비극을 넘어 극복의 역사, 저항의 역사로 나아가기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들을 짚어봤다.

■ ‘정부 주도’의 추가 진상조사 필요

제주4·3에 대한 정부 차원의 진상조사는 2003년 ‘제주4·3사건진상조사보고서’ 발표 이후 16년째 멈춰있다.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하 4·3특별법) 등에 따라 현재 제주4·3평화재단에서 추가 진상조사를 벌이고 있지만 학계와 4·3 단체들은 정부가 나서서 지속적인 조사를 추진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제주4·3사건진상조사보고서에 따르면 4·3은 ‘1947년 3월 1일 경찰의 발포사건을 기점으로 1948년 4월 3일 남로당 제주도당 무장대가 경찰·서청의 탄압에 대한 저항과 단선·단정 반대를 기치로 무장봉기한 이래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금족지역이 전면 개방될 때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장대와 토벌대간의 무력충돌과 토벌대의 진압과정에서 수많은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이다.

즉, 국가 공권력이 무장대를 토벌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도민들이 희생했기 때문에 국가 공권력의 발원인 정부가 추가 진상조사를 벌여 책임을 인정해야만 희생자에 대한 배·보상 및 명예회복 등 4·3의 완전한 해결을 이룰 수 있다.

양동윤 제주4·3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도민연대(이하 4·3도민연대) 대표는 “4·3 해결의 핵심은 진상규명이다. 이를 통해서만 희생자들의 명예를 회복할 수 있다”며 “제대로 된 진상규명이 선행돼야만 4·3특별법 개정 등 현재 멈춰있는 과제들이 해결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 4·3당시 불법 군사재판으로 억울하게 징역형을 선고 받아 전국 각지의 형무소에 수감된 수천명의 도민들은 한국전쟁이 발발하며 대부분 행방불명됐지만 이들에 대한 진상규명은 여전히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제주시 북촌마을을 비롯해 중산간 마을 등 수많은 도민들이 희생된 대규모 학살에 대한 면밀한 실태 조사도 미흡한 상태다.

양동윤 대표는 “목포형무소에 끌려간 도민들의 명단 일부가 밝혀졌고, 1960년 6월 대구매일신문에서 보도한 한국전쟁 당시 대구형무소 수감자 명단에도 제주도민들이 포함돼있다. 희생자 명단이 명백히 존재하고 언론에서도 보도했지만 이들에 대한 진상조사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희생자 유족들이 ‘내 부모, 내 가족이 어디에 있다가 희생됐냐’고 물으면 정부는 최소한 답을 해줘야 한다. 4·3에 대한 정부의 추가 진상조사가 필요한 이유다”고 얘기했다.

박찬식 제주학연구센터장 역시 “2003년에 정부가 발표한 제주4·3사건진상조사보고서에는 4·3의 피해가 개략적으로 기술 돼 있다. 잃어버린 마을을 포함해 각 마을별로 집중적인 추가 조사가 필요하다”며 “특히 현재까지는 진상 조사 자체가 인적 피해에 집중되고 있는데 앞으로는 재산 및 토지 소유권 변동 등 물적 피해와 함께 연좌제로 인한 피해 실태도 파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객관적 근거’로 미국 책임 규명

지난해 10월 4일 제주시 칼호텔에서 열린 제주4·3 70주년 기념 국제학술대회 당시 4·3에 대한 미국의 책임이 주요 주제로 다뤄졌다.

같은 달 31일에는 제주4·3희생자유족회와 제주4·3 70주년기념사업위원회, 제주4·3 제70주년범국민위원회가 4·3에 대한 미국과 국제연합의 책임 있는 조치를 촉구하는 10만9996명의 서명을 모아 미국 대사관에 전달했다.

4·3 당시 미군정의 책임을 요구하는 움직임은 분명 의미가 크지만 과제는 미국의 책임을 증명할 수 있는 객관적인 근거 확보다.

정부는 2000년 4·3특별법이 제정됨에 따라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명예회복위원회’를 구성하고 같은 해 9월부터 진상조사에 착수했다.

당시 미국에 파견된 조사팀은 ‘미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과 ‘맥아더기념관’ ‘미육군군사연구소’를 방문해 800건의 4·3관련 자료를 확보했다.

그러나 여전히 비밀문서로 묶여 있는 ‘제주도에 관한 보고 1&2편(Cheju Do Island, Parts Ⅰ& Ⅱ)’ 등 4·3 직·간접자료 28건은 확보하지 못했다.

박찬식 센터장은 “당시 NARA에서 공개하지 않은 1급 자료들을 확보해야 한다. 4·3평화재단이나 4·3단체가 개별적으로 움직이는 것보다 정부 당국이 나서서 자료 공개를 촉구해야 한다”며  “4·3 당시 작전 지휘권을 갖고 있었던 미국에 대해 법적 책임을 묻기 위해서는 객관적인 역사적 사료와 국제법적인 근거가 반드시 필요하다. 결국 정부 차원의 주도면밀한 진상규명이 지속적으로 추진돼야 한다”고 말했다.

양동윤 대표는 “4·3에 대한 미국의 책임은 분명히 있다. 그 책임을 어떻게 부여하는가가 문제”라며 “미국은 여론을 굉장히 중요시한다. 4·3에 대한 미국의 책임을 묻는 여론을 형성하려면 이를 증명할 수 있는 근거 확보가 선행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어 “객관화된 자료를 통해 미국의 책임을 따지는 장이 마련돼야 한다. 특히 미국인들의 입에서 미국의 책임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나와야한다”고 덧붙였다.

■ ‘내실화’로 개정안 통과 추진해야

국회에서 표류중인 4·3특별법 개정안 통과도 미국의 책임 규명과 맥을 같이 한다.

오임종 제주4·3희생자유족회장 직무대행은 “4·3특별법 개정안이 통과돼야만 제대로 된 진상규명과 불법재판에 대한 무효화, 4·3을 부정하는 세력들에 대한 처벌, 희생자 명예회복이 가능하다”며 “그러나 국회는 야당 합의에 어려움을 겪고 있고, 정부는 배·보상 예산 확보와 불법재판 무효화에 따른 삼권분립 위배를 이유로 4·3특별법 개정안 통과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4·3특별법 개정안 통과 역시 정부 책임을 더욱 명확히 하기 위한 내실화가 요구되고 있다.

국가 공권력에 의해 다수의 도민들이 희생된 만큼 정부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당위성을 강화해야만 이념에 상관없이 여·야 모두 4·3특별법 개정안 통과에 공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양동윤 대표는 “4·3특별법 개정안은 국회에서 입법돼야 하기 때문에 정치적 행위가 수반돼야 한다”며 “단순히 국회를 찾아가 개정안 통과를 요구할 게 아니라 추가 진상조사 등 4·3에 대한 내실화를 기반으로 전략과 전술을 수립해 접근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 정명, 그리고 세계기록유산 등재

제주4·3은 70주년을 맞은 지난해 전국화라는 성과를 거뒀다. 그리고 미국에 대한 책임을 촉구하면서 세계화에 대한 진전도 이뤄냈다.

하지만 올해로 71년을 맞이한 현재까지 제주4·3에 대한 정명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수많은 토론회에서 정명에 대한 의견이 쏟아졌지만 4·3에 대한 실체적 진실이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는 이상 정명은 풀리지 않는 과제로 남겨질 수밖에 없다.

오임종 직무대행은 “아직까지 4·3은 1948년 4월 3일 이후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 이전 4·3이 발발하기 직전까지의 도민들의 삶과 제주가 처해진 상황을 조명해야 할 필요가 있다”며 “결과가 아닌 원인을 들여다봐야 4·3이 단순한 사건인지 아니면 도민들을 못살게 군 경찰에 대한 저항인지, 나아가 당시 정부와 미군정 등 공권력에 대한 항쟁인지 정의할 수 있다”고 말했다.

4·3 기록물에 대한 세계기록유산 등재 역시 정명처럼 어려운 과제로 남겨질 우려가 높다.

양동윤 대표는 “세계기록유산의 등재 기준은 해당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과 학살자 처벌, 국가의 사과, 배상, 기념사업인데 4·3은 진상규명과 기념사업만 있고 중간이 없다”며 “대통령의 사과는 있었지만 뒤이어 보수정권이 들어서면서 희생자 명예회복과 배·보상 등 후속조치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결국 정부와 미국의 책임 규명, 이에 따른 명예회복과 배·보상이 있어야만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될 수 있고, 이를 위해서는 정부의 추가 진상조사가 반드시 선행돼야 한다”며 “4·3의 실체적 진실이 담겨진 진상조사보고서가 곧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될 수 있는 기록물이다”고 강조했다.

인터뷰 / 오임종 제주4·3희생자유족회장 직무대행

“4·3에 대한 올바른 교육, 평화·통일로 가는 첫 단추”

 

오임종 제주4·3희생자유족회장 직무대행
오임종 제주4·3희생자유족회장 직무대행

“4·3의 진실과 미국에 대한 책임 규명은 곧 우리나라의 통일과 직결된다”.

오임종 직무대행은 “제주4·3과 한국전쟁, 그리고 한반도 분단으로 이어진 비극의 역사에는 모두 미국이 깊이 개입돼 있다”며 “4·3에 대한 미국의 책임을 명확하게 밝히는 것이 통일로 나아가는 첫 단추”라고 강조했다.

이어 “이를 실현하기 위한 방법이 바로 4·3에 대한 올바른 교육이다. 4·3의 원인과 과정, 이후 발생된 한국전쟁과 분단에 미국이 어떻게 개입했는지를 정확하게 후대에 가르쳐야 한다”며 “올바른 교육의 기반 위에서 통일에 대한 논의가 이뤄져야만 전쟁 등 무력이 아닌 평화 통일이 가능하다”고 얘기했다.

4·3의 완전한 해결을 위한 후속 과제에 대해 오 직무대행은 “4·3특별법 개정과 함께 트라우마 센터가 하루속히 조성돼야 한다”며 “지난해 10년 만에 재개된 유해발굴과 신원 확인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는 한편 희생자 및 유족신고도 상설화돼야 한다”고 주문했다.

마지막으로 “한 많은 4·3 유족들이 이제는 마음을 내려놓고 제주의 평화를 얘기하는 시대가 왔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고경호 기자  kkh@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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