送年(송년)
送年(송년)
  • 부영주 주필·편집인/부사장
  • 승인 2018.12.30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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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던 시간 다 어디 갔을까.

지난해 연말이 엇그제 같은데 어느 덧 또 세모(歲暮). 올 한 해를 되짚어보던 중 어느 선배가 들려준 촌언(寸言)이 문득 떠올랐다.

내용은 간단하다. 나이 들었다고 기 죽지도 말고, 세상을 달관한 척 하지도 말라고 했다. 나이 먹었다고 하고 싶은 일이 없어지는 것도 아닌데 내 나이가 몇인데 관두자식으로 억누르거나, 나이가 많으니 점잖게 살아야 한다고 믿는 건 인생을 쓸쓸하게 만든다는 얘기다. 먹고 싶은 건 먹고, 즐길 건 즐기면서, 가고 싶은 곳 다 가면서, 가는 시간을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느긋하게 살라고 했다.

하지만 한 해 마지막 날. 오늘 왠지 허둥대고 지난간 시간의 흐름이 너무 빠르다고 느끼는 건 나뿐이 아닐 것이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같은 게 아니라 다른 것일까. 미국 신경학자 피터 맹건(Peter mangan)이 실험을 했다. 연령대별로 나눠 눈을 가린 채 3분을 마음 속으로 헤아리게 했다.

9~24세 젊은 층은 3초 이내로 오차가 별로 없이 알아맞혔지만 45~50세 중장년층은 316초라고 대답했다. 60세 이상은 340초라고 말해 40초 이상 차이가 났다. 나이가 들수록 도파민 분비가 줄어 중뇌에 자리한 생체시계가 느려지기 때문이란다.

네덜란드 심리학자인 다우베 드라이스마란 사람도 인간은 망원경 효과로 인해 나이들수록 시간이 빨리 흐르는 것처럼 느낀다고 했다.

망원경 효과는 망원경으로 물체를 볼 때 실제보다 훨씬 가깝게 보이듯이, 과거의 사건이 더 나중에 일어났던 것처럼 여겨지는 것을 의미한다. 10년 전 사건이 5, 3년 전에 발생했던 것처럼 인식되는 시간축약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20대에는 시간이 시속 20로 흐르고, 40대에는 40, 60대가 되면 60로 달린다고 한다. 1년이 10살에겐 인생의 10분의 1로 지각되는 반면 50살에겐 50분의 1로 느껴지기 때문이라는 19세기 프랑스 철학자 폴 자네의 해석도 그럴 듯하다.

 

지난 1. 속도는 저마다 달랐겠지만 유독 말 많고 탈 많은 한 해였다.

정치는 포퓰리즘과 소득주도 성장론의 덫에 빠져버렸다. 급속한 경기둔화, 고용 절벽이 시종 우리를 짓눌렀다.

그런 가운데 터져나온 일. 청와대 민정수석실 특감반 출신 김태우씨의 폭로 파문이 세밑 세상을 온통 덮었다.

이런 걸 기시감(旣視感)이라 했던가. 언젠가 본 듯한 일이라 싶은데 그게 언제였는지 가물가물하고, 더러는 긴가민가 미심쩍어지는 그런 느낌을.

, 심리학의 신비, 일컬어 데자부.

정윤회 문건파문으로 박근혜 대통령의 콘크리트 지지율(40%)마저 무너져 내린게 집권 3년차 초입이었다.

정치와 권력의 역사는 어떤 결승점이 있는 게 아니라 그렇고 그렇게 돌고돈다고 한다. 정말 그렇다면, 국정동력은 감속으로 가는데 고속을 요하는 현안들이 첩첩산중, 갈길은 구만리라 걱정이다.

 

올 한 해. 뜻하지 않게 시련을 겪은 이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옴치고 뛸 수 없는 막막한 현실이 거대한 벽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그래도 희망을 놓지 않고 버티다 보면 삶은 재건된다는 게 역사의 가르침이다. 그렇게 흔들리고 저렇게 흔들리며 어떻게든 견뎌내다 보면 어김없이 새해 봄은 온다는 얘기다.

세상사에 정답이 있으랴. 어차피 모르는 거라면 아는 체 말고 흔들리며 사는 것도 괜찮다.

신문을 보면 내년이 더 힘들 것이라고 한다. 우리에게 닥친 국내·외 여건이 어느 것 하나 녹록지 않다. 정치인들이 책임없이 마구 뱉어낸 말의 거품이 가라앉고 냉혹한 경제 현실이 맨얼굴을 하나씩 드러낼 테니 더욱 그렇다.

이런 때일수록 저마다 선 자리에서 마음 다잡아야 한다. 그동안 우리가 헤쳐온 험하고 팍팍한 세월을 돌이켜 보면서 내일 새해를 맞자. 내일 새해 아침에는 꽃망울 터져나오는 그 소리를 들어 보자.

부영주 주필·편집인/부사장  boo4960@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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