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대영웅의 전설 깃든 오름에 서다
몽골 대영웅의 전설 깃든 오름에 서다
  • 뉴제주일보
  • 승인 2018.12.28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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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부. 바람의 고향, 초원의 나라 몽골
동쪽 끝 돌하르방 마을을 찾아서(5)
실링보크 훈촐로 유적지 인근에 있는 한 오름. 동행한 몽골학자에 따르면 과거 이 오름에서 칭기즈칸이 전쟁을 벌여 대승을 거뒀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고 한다. 그 때문인지 이 오름을 오르면 영웅으로 불린다고 한다.

비행기로 하루, 버스로 이틀을 달려 찾아간 몽골 동쪽 끝 다리강가 실링보크의 대초원 분지.

이곳에 나란히 서 있는 훈촐로(石人)들은 우리에게 많은 의미를 전해줬습니다. 우선 이 일대는 몽골의 어느 지역보다 오름이 많았고, 훈촐로 재질이 현무암이어서 몽골의 여러 곳에서 봤던 그 어떤 훈촐로보다 제주의 돌하르방과 비슷했답니다.

답사를 마치고 모여 앉은 조사팀은 이 지역은 마치 제주도를 확대해 놓은 지형 같고, 또한 이번에 조사한 훈촐로들은 제주 돌하르방과 상당히 닮아 앞으로 많은 조사가 필요할 것 같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몽골은 흉노의 고향이랍니다. 흉노족은 기원전 300년대부터 400년간 북방 초원 지대를 석권했던 기마민족입니다. 초원의 유목민으로 떠돌며 살던 민족을 묵돌(昌頓)이라는 인물이 통합하면서 세력이 번창했고, 동으로 열하에서 서쪽으로 알타이산맥 북단의 키르기스 지방까지 석권했답니다.

중국을 통일한 진()나라 시황제도 흉노의 남하를 저지하기 위해 만리장성을 쌓는 대역사를 감행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흉노족은 위협적인 존재였다고 합니다.

김병모 전()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는 한국인의 조상은 누구인가. 신라의 박혁거세, 석탈해는 누구인가. 그들의 할아버지는 이 땅에서 태어난 사람들인가. 한민족은 북방 기마민족의 후예들이고, 그들의 조상이 청동기 시대에 단검을 휘두르며 말발굽 소리 요란하게 이 땅으로 이주해왔다. 이 정도가 우리가 알고 있는 한민족사의 전부일 뿐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삼한 시대 신라의 전신인 진국(辰國)의 형성 과정에 대해 ()나라에서 만리장성을 쌓는 노역을 피하고자 이주해온 사람들이 세운 나라이기 때문에 진국이라고 부른다(삼국지 위지 동이전)”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런 기록을 근거로 몽골 초원 지대에서 만주를 거쳐 한반도로 이어지는 길이 진국인(辰國人)의 이동 루트라고 여겨지는데 이 지역에서 서기 전후 시대 만들어진 적석총이 줄줄이 발견되고 있다고 합니다. 이 때문인지 한국 고대사는 흉노와 관련이 있다는 주장을 하는 학자가 많은 것 같습니다.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가 하면 제주 돌하르방은 과연 어떻게 만들어지게 된 것일까?’ 하는 의문 때문입니다. 한 때 인도네시아 발리섬이나 다른 남방 지역에 대해 이야기 하는 학자들도 있었지만, 그래도 몽골의 영향을 받았다는 의견이 가장 설득력이 있지 않느냐는 주장도 있습니다.

이와 더불어 이 실링보크 초원의 훈촐로가 아마도 제주 돌하르방과 가장 가까운 모습이라고 볼 수 있지 않나 하는 의견도 나왔습니다.

가장 중요했던 답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말굽형 분화구가 있는 한 오름을 올랐습니다. 옛날 칭기즈칸이 이 오름에서 전쟁을 벌였는데 타르박이란 동물이 파놓은 굴을 이용해 대승을 거뒀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고 합니다. 이런 이야기 때문인지 이 오름을 오르면 영웅으로 칭해준답니다. 오름 화구 둘레 곳곳에는 돌들이 쌓여 있는데 이 일대가 몽골과 중국의 국경 부근이라 그 표시를 해 둔 것이랍니다.

우리 일행은 다시 버스를 타고 끝도 없는 초원을 달리기 시작합니다. 드넓은 초원 너머로 해가 넘어가자 차 밖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수많은 별이 금방이라도 쏟아질 듯합니다. 몽골의 밤하늘, 무척이나 아름답습니다.

가로등 하나 없는 초원을 버스는 잘도 달립니다. 한동안 이런저런 이야기가 흘렀던 버스 안이 조용해져 둘러봤더니 일행 모두가 눈을 감고 조용한 명상의 시간을 갖는 것 같습니다. 그간 일정이 힘들었나 봅니다.

밤늦게 수흐바토르에 도착, 다음 날이 되자 우리 일행은 울란바토르로 가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공항을 향했습니다.

그런데 비행기를 탈 수가 없답니다. 이유는 자국민이 우선이고 또 몽골 부통령이 우리가 타고 갈 비행기에 타야 하기 때문이랍니다.

황당한 일이라 뭐라고 말을 할 수가 없어 우왕좌왕하는데 한 몽골 사람이 기막힌 말을 합니다. 몇 사람이 비행기 바퀴를 잡고 있으면 비행기를 탈 수 있을 것이라는 겁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일축하고 비행기 아래 모여 마냥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비행기가 이륙 준비를 할 때였습니다. 비행기에 오르려던 몽골 부통령이 우리 일행을 발견하고는 다가와 무슨 사정인지 묻습니다. 그는 이야기를 다 듣고는 주변 사람에게 우리 일행이 비행기를 탈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줬습니다.

비행기에 탄 후 몽골 부통령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자 그는 당신들이 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합니다. 그와 함께 사진도 찍고 이번 답사 이야기도 두런두런 나누다 보니 어느새 울란바토르에 도착했습니다. <계속>

<서재철 본사 객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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