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 그리고 ‘제주의 봄’ 
제주4·3 그리고 ‘제주의 봄’ 
  • 뉴제주일보
  • 승인 2018.12.24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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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중훈 시인·제주문화창의연구회장

무술년(戊戌年)도 어느 새 12월의 끝자락에 왔다. 그러고 보니 제주4·3 70주년 달력도 함께 닫히려 한다.

제주에 봄이 오고 있다고 하신 문재인 대통령도 함께한 올해 제주4·3 70주년 행사는 참으로 다양하고 다채로웠다. 추진위원회가 밝힌 주요 캘린더만 보더라도 평화공원에서 치러진 4·3추념식은 물론 광화문 국민문화제를 비롯한 4·3 관련 각종 포럼과 4·3 특별법 개정 운동 등 헤아릴 수 없는 행사들이 연중 내내 전국적으로 펼쳐졌다.

그 모든 행사의 주된 목적은 화해와 상생을 전제하면서 4·3의 완전한 해결을 위해 미국의 책임 문제 등 4·3의 진실규명과 명예회복, 그리고 배·보상 문제 해결에 두었다.

필자가 이 문제를 관심 있게 들여다보는 것은 나 역시 4·3의 학살 현장에서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생존자이며 4·3 유족이기 때문이다. 여덟 살이던 나에게 닥친 4·3은 나의 아버지를 비롯한 아버지 3형제와 할아버지 내외분은 물론 아버지 4촌과 고종, 이종 4촌까지 함께 뺏어갔다.

그렇게 내가 마주한 성산포 터진목 학살 현장의 기억은 죽음 그 자체의 끔찍함이나 잔혹함보다는 살아남은 자들이 언제 또 불려가 죽임을 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함께 그래도 살 때까지는 살아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로 인한 삶의 현실이 녹록지 않아서 결코 한눈팔며 살아서는 안 된다는 냉엄한 현실의 가르침을 깨닫는 일이었다.

이제 내 나이 일흔여덟, 당시 내 또래의 어린 유족들처럼 그렇게 검질긴 삶을 살다 보니 어느 덧 그들과 같은 황혼의 나이에 접어들었다. 그동안 우리의 삶에는 그 흔한 4·3의 트라우마에 시달릴 겨를조차 없었다. 어쩌면 트라우마그것은 한가로운 자의 여유 있는 사치였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살암시민 살아진다고 하시던 우리들 어미의 말씀처럼 한여름 뙤약볕 조밭 고랑에 땀범벅, 졸음범벅의 눈물로 김을 매던 노역의 아픔도, 여덟 살 소년의 들고 있는 밭갈이 쟁기가 아무리 무겁고 힘들어도 쇠가죽같이 질긴 목숨 하나에 의지하며 살다 보니 어느 덧 우리는 여기까지 왔다.

골 깊은 주름살과 검게 탄 얼굴 모습은 차라리 인고의 훈장으로 당당하다. 그 훈장은 이른 바 4·3의 가해자 혹은 그 자식들과도 사돈을 맺었고 다정한 이웃이 되고 친구도 되었다는 화해와 상생의 증표이기도 하다.

이제 우리에게 4·3 문제 해결의 답은 화해와 상생이상 없다. 이는 용서를 수반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진실을 규명하자는 것, 누구의 책임인가를 따져 묻는 것, ·보상 문제를 논하는 것 등은 결코 화해와 상생이라는 용어와 함께할 수 있는 명제는 아니다.

그 이유는 지금까지 당당하게 살아온 우리들의 의연한 모습이 배·보상 문제로 구겨지거나 추해질 수도 있기 때문이며 무엇을 밝히고 무엇을 규명하자는 그 일로 인해서 그동안 잘 어울렸던 우리의 이웃과도 불편해지거나 또 다른 제2제주4·3’으로 비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진실은 언제든 밝혀진다. 70년 아니 100년이면 어떤가. 서두르지 말자. ‘동학농민혁명동학란’, ‘동비의 난’, ‘갑오농민운동’, ‘갑오농민전쟁등으로 불리던 지난 200년 세월을 상기해 볼 필요가 있다.

노벨평화상 수상자이며 전 동티모르대통령인 호세 라모스 오르타2017년도 제주 4·3포럼에서 발표한 과거 극복/치유와 화합의 주제발표문 한 대목이 생각난다.

그는 화해와 상생은 더 이상 캐어묻지 말고 용서하자는데 있다고 전제하면서 “2002년 자유를 쟁취한 동티모르인들은 승자의 정의를 추구하거나 복수를 기하지 않았다. 또한 과거의 적에게 사과를 기다리거나 요구하지도 않았을뿐더러 압제자, 박해자를 용서하였으며 범죄자 및 전범을 심판할 수 있는 국제재판마저 받아들이지 않았다라고 했다.

그렇다. 제주4·3 문제의 해법 역시 여기서 찾으면 어떨까. 화해는 용서함에 있고 상생은 함께함으로 싹틀 제주의 봄에 있으므로.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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