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초원서 ‘몽골 돌하르방’을 만나다
대초원서 ‘몽골 돌하르방’을 만나다
  • 뉴제주일보
  • 승인 2018.12.21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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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부. 바람의 고향, 초원의 나라 몽골
동쪽 끝 돌하르방 마을을 찾아서(4)
동부 몽골 수흐바토르 다리강가 지역 돌하르방 유적지.
동부 몽골 수흐바토르 다리강가 지역 돌하르방 유적지.

몽골인과 우리는 같은 몽골로이드(Mongoloid) 종에 속해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네처럼 저들도 갓난아기의 엉덩이에 몽고반점이라 불리는 푸른 점이 나타나고 용모 또한 우리와 비슷하다고 합니다.

고대에는 몽골, 만주, 시베리아, 한국, 그리고 알래스카에 이르는 지대에 단일 문화권이 형성됐다는 의견(D.마이달, N.츄르템 몽골문화사)도 있습니다.

또 몽골민담에는 몽골의 조상도 우리네 단군처럼 하늘에서 내려왔고 나무꾼과 선녀, 흥부와 놀부, 범과 토끼 이야기도 전해오고 있다고 합니다.

몽골 사람들도 우리처럼 흰빛을 숭상하며 오보와 우리의 서낭당은 형제 사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달리고 달려도 끝이 없는 몽골 초원. 한가롭게 풀을 뜯는 양 떼들만 나그네를 반겨준다.
달리고 달려도 끝이 없는 몽골 초원. 한가롭게 풀을 뜯는 양 떼들만 나그네를 반겨준다.

89일 마침내 우리 일행은 고대하던 돌하르방 유적지를 향해 길을 나섰습니다. 잔뜩 기대해서 그런지 차 안은 침묵이 흘렀습니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그야말로 제주 중산간의 모습입니다. 사방에 오름이 있고 소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는 모습이 마치 제주를 확대해서 보는 듯합니다.

오전 915. 우리 일행은 학수고대하던 동부 몽골 다리강가 지역의 돌하르방 유적지에 도착했습니다. 엄청나게 넓은 분지 안에서 이전에 사진에서 봤던 그 훈촐로(石人)’를 만나는 순간, ‘아 드디어 만나는구나. 얼마나 멀고 먼 길을 돌아왔나하고 감격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제주에서 가지고 온 돌하르방을 들고 한·몽 학자들이 한데 모인 가운데 역사적인 조우식(遭遇式)을 가졌습니다. 사상 처음 열린 이 조우식을 통해 제주와 몽골의 석상이 모자 모양과 얼굴 생김새, 손의 위치 등 지금껏 어느 지역의 석상보다 닮았다는 것을 확인하게 됐습니다.

제주 돌하르방과 몽골 훈촐로가 역사적인 조우식을 가지고 있다.
제주 돌하르방과 몽골 훈촐로가 역사적인 조우식을 가지고 있다.

몽골의 훈촐로는 의자에 앉아 있는 형태로 높이는 110, 얼굴은 미소를 띠고 있으며 오른손에는 술잔을 들고 다른 손이 받치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세밀하게 다듬어진 훈촐로 두 개가 나란히 서 있습니다. 이들 석상에서 30m 정도 떨어진 곳에 또 다른 훈촐로 한 기가 머리가 잘릴 채 서 있습니다. 이 훈촐로들은 본래 한 기씩 서 있던 것을 한데 모은 것이랍니다.

실링복 분지 안에 있는 훈촐로.
실링복 분지 안에 있는 훈촐로.

실링복에서 70떨어진 대분지 안에도 일렬로 세워진 석상들이 있는데 제주 돌하르방과 같은 석질인 다공질암(多孔質岩)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모자나 얼굴 등의 모습이 제주 돌하르방과 상당히 비슷해 양국 학자들을 놀라게 했다고 합니다.

다리강가 지역 유적지의 석상은 형태 면에서는 제주 돌하르방과 매우 닮았지만, 두께가 얇고 무덤 앞에 세워졌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이 지역 훈촐로는 옛 소련 학자가 처음 발견했고 1981~1985년 땅속에 묻혀 있는 것을 몽골 석상연구가인 바에르 교수가 발굴해 학계에 보고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고 합니다.

이전 사상 처음 실시된 한·몽 합동조사에서 66기의 훈촐로가 발견됐는데 그 중 14기가 다리강가 지역에 분포돼 관심을 끌었습니다. 이 지역은 옛 고려와 가장 가까운 곳으로 이 지역 출신 군인들이 과거 몽골이 고려를 지배했을 당시 제주에 주둔했다는 역사적 배경이 있다고 몽골 학자들이 설명했습니다.

실링복 분지에 있는 훈촐로의 경우 그 뒤쪽으로 돌무더기를 쌓아 놓은 것이 특징으로, 수호신적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고 의견이 모였다고 합니다. 이 훈촐로들은 다른 지역 석상보다 더 먼저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15년간 몽골 석상을 조사·발굴해온 바에르 교수는 몽골 훈촐로는 13~14세기 만들어진 것으로 보고 있으며 다리강가 지역에 특히 많이 분포하고 있다특히 다리강가 지역의 석상은 제주 돌하르방과 유사한 점이 많은 것으로 확인돼 두 석상의 혈연관계(?) 개연성이 높다고 주장하며 이와 관련된 연구가 진행되기를 희망했습니다.

그는 훈촐로의 수호신적 기능과 더불어 호칭에서도 제주 돌하르방과 유사점이 있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훈촐로는 몽골어로 돌사람이란 뜻을 가지고 있는데 제주 돌하르방도 하라(본다)’(노인)’이 합쳐진 돌을 보는 노인이란 뜻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에 대한 어원 조사도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1년 후 바에르 교수는 제주를 찾아 돌하르방을 세밀하게 조사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그는 인터뷰를 통해 제주 돌하르방의 모자와 복식 등은 몽골 훈촐로와 매우 유사하다. 과거 몽골군은 정복지에 있는 상징적인 것들은 다 파괴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혹 제주 돌하르방은 제주에 온 몽골군이 옛 상징적인 것들을 파괴한 후 제주 사람들과 합작해 만든 것이 아닌가 하는 조심스러운 생각을 가져본다고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참 멀고 먼 땅에서 이뤄진 돌하르방과 훈촐로의 역사적인 조우를 뒤로하고 우리 일행은 다시 끝 모를 초원을 달리고 있습니다. <계속>

<서재철 본사 객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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