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취적 DNA, 자존감 높은 제주인 만들다
진취적 DNA, 자존감 높은 제주인 만들다
  • 김현종‧고경호 기자
  • 승인 2018.12.20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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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제주인 에필로그....제주인은 누구인가]
불굴의 개척정신-수눌음 공동체 문화...글로벌 제주 도약 원동력
탐라시대 정체성 확립 후 전승...개방적이고 생존.자립 의식 높아

제주인에게 자립의식과 저항정신, 포용력 등은 운명과도 같다.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고립된 섬, 아름다운 자연 이전에 생을 연명하기에 결코 녹록하지 않은 척박한 땅에 태어난 제주인의 삶은 곧 극복과 개척의 연속이었다.

생의 여정에서 제주인은 부지런하지 않으면 살 수 없었기에 근면과 성실이 체화됐다.

변방이자 유배의 섬으로 내몰려도 제주인에게 체념이나 포기란 없었다. 서로 협력하고 나누며 삶의 고비를 넘어섰고, 공동체적 가치 아래 똘똘 뭉쳐 굴곡의 소용돌이를 견뎌냈다.

오랜 세월 고통과 억압의 굴레에서 가슴에 맺힌 한()은 강인한 정신으로 단련했다.

제주인은 자연에 맞서되 순리를 거스르지 않고 지혜를 모아 독창적 생활문화를 창조하고 지역색으로 구축했다. 수눌음과 조냥정신이 잉태했고 초가와 돌담문화가 발원했다.

제주인 정신의 근간들이다. 그것은 제주인의 유전자에 스며들어 유유한 세월의 물결을 따라 도도히 이어져온 결과 변방의 섬을 글로벌 도시로 바꾸는 저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실제 국내외 사회 각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제주도민에게 정신적인 공통점이 읽힌다. 본지가 올해 제주 & 제주인을 통해 소개한 주인공들의 내면에도 같은 제주인 정신이 관통했다.

제주인 정신은 고난이나 실패에도 굴하지 않는 강인한 도전정신과 불굴의 개척정신, 공동체문화를 지탱하는 수눌음 정신 등으로 압축된다. 근저에는 근면함과 포용성이 깔려 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제주인의 정신은 탐라시대에 배태해 DNA에 각인됐고 고려조선시대를 거치며 더욱 차별화했다. 섬이란 삶의 터전을 받아 안았던 제주인들은 진취적이고 개방적이었다.

세계 유명 섬들이 그랬듯 제주인은 교역에도 능해 문화적인 수용력과 흡수력이 강했다. 외부문화를 곧잘 받아들였고 외지인과 쉽게 어우러졌다. 제주인끼리는 응집력이 높았다.

생존을 위한 강인한 기질로 내면을 무장한 제주인들은 외부 침략이나 핍박에는 강력한 저항의식을 표출했다.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옹골차게 맞서 싸웠고 극단적으로 응전했다.

탐라시대 1000년을 지나 고려조선시대로 넘어가면서 제주가 독립국에서 변방으로 바뀌는 과정에 제주인의 정신은 위기이자 기회를 맞았다. 제주인 정체성의 일대 전환점이었다.

탐라시대 제주인의 자존이 프라이드였다면 이후 1000년의 자존은 생존감의 발로였다.

결과적으로 두 가지 기질이 결합된 강력한 자강과 자립의식이야말로 제주인 정신의 요체다.

제주연구원 제주학연구센터가 2016년 실시한 재외 제주인 네트워크 공동체 의식조사 연구 결과에 제주인 정신의 본질이 잘 드러난다. 서울부산에 거주하는 제주인 388명을 대상으로 진행된 조사에서 제주인은 제주를 벗어나 살더라도 제주인으로서 정체성이 매우 강했다.

재외 제주인 83.8%제주사람끼리 언제 어디서 만나도 반갑고 친하게 지낸다에 긍정적으로 답했다. 부정적인 대답은 5.2%뿐이었다. ‘제주출신이란 점을 타 지역 사람에게 자랑스러워한다는 물음에 대해서도 73.3%가 그렇다고 답했고, 아니란 응답은 3.2%에 불과했다.

제주인으로서 소속감도 평균값 3.93(5점 만점)으로 높았다. ‘제주인5, ‘현재 거주지 주민1점인 조사에서 53.9%가 제주인이라고 답했다. 거주지 주민이란 응답은 10.8%였다.

제주인 특성 중에 자랑스러운 점은 부지런함’(33.9%), ‘인정 많음’(17.6%) 순으로 꼽혔다. 어려움으로는 제주인으로서 정체성 상실이라고 답한 비율이 40.9%로 압도적으로 높았다.

제주인은 외부로 출타해 살아도 고향에 대한 소속감과 애착이 한결같다는 점이 재확인된 것이다.

 

인터뷰-박찬식 제주학연구센터장

척박한 환경과 공동체 의식이 빚어낸 제주정신

 

“제주의 정신은 척박한 환경과 공동체 의식이 빚어낸 ‘자강’과 ‘자립’이다”

‘제주의 정신’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박찬식 제주학연구센터장은 ‘自尊’(자존)과 ‘自存’(자존)을 적어보였다.

박 센터장은 “예로부터 섬사람들은 농사만으로 자급자족하기 힘들기 때문에 섬에서 나는 특산품을 갖고 외부와 교역했다”며 “섬 안에서의 세계관과 우주관을 구축하고 외부 사람들과의 소통 속에서 삶을 영위했다”고 짚었다.

이어 “그래서 탐라국 1000년 간 탐라인들은 진취적이고 개방적인 ‘해양 문화’와 밖에서 들어 온 사람들과 어우러지는 ‘포용성’을 바탕으로 스스로 힘써 삶을 개척하는 ‘자강’ 정신을 드높였다”며 “탐라인 스스로 ‘자부심’을 제고한 탐라국 1000년간의 제주 정신은 ‘높일 존’자를 쓴 ‘자존(自尊)’으로 함축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를 거치며 독립 국가인 탐라국에서 지방인 제주로 바뀌는 과정에서 ‘自尊(자존)’은 ‘自存(자존)’으로 변모했다.

박 센터장은 “고려시대 474년과 조선왕조 519년 등 탐라국 이후 1000년 동안 육지 사람들에게 제주는 말을 키우는 목장이자 유배의 섬, 해안 방어의 요충지대로 여겨졌다”며 “조선 중기에는 200년간 출륙금지령까지 내려졌다. 제주인들에게는 생존, 즉 ‘존재’가 가장 중요한 문제였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웃과 함께 더불어 살기 위한 ‘수눌음’과 ‘조냥’ ‘안거리-밖거리’ 등은 결국 외부와 차단된 척박한 환경에서 삶을 지탱하고 버텨내기 위해 필연적으로 갖춰야 했던 공동체 정신”이라며 “무엇보다 가족 구성원 모두가 한 사람도 빠짐없이 일을 해야 한다는 ‘근로의식’도 매우 강해졌다”고 얘기했다.

박 센터장은 “그렇기 때문에 탐라국 시대 이후의 제주 1000년은 자강보다 자립이 우선됐다”며 “이 때의 제주정신은 ‘존재할 존’자를 쓴 ‘자존(自存)’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결국 개척정신과 수눌음 등으로 한계를 극복한 제주인의 정체성은 자강으로 대변되는 자존(自尊)과 자립으로 대변되는 자존(自存)의 결합으로 형성됐다는 게 박 센터장의 의견이다.

박 센터장은 “제주인은 진취적이고 개방적인, 그리고 외부와 교류하기 좋아했던 탐라인들의 정신과 외부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삶을 개척해온 제주인의 정신이 어우러져 다른 지역과는 전혀 다른 특유의 강인함을 갖추고 있다”며 “사학자 토인비가 ‘도전에 대한 응전’으로 바라본 인류의 역사는 제주와 다르지 않다”고 덧붙였다.

김현종‧고경호 기자  tazan@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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