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정부의 역할...‘바가지 요금’
지방정부의 역할...‘바가지 요금’
  • 정흥남 논설실장
  • 승인 2018.12.20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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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가운데 하나의 단어가 전혀 다른 뜻으로 사용되는 말 중 하나가 다름 아닌 ‘바가지’다. 원 뜻은 ‘주로 물을 푸거나 물건을 담는 데 쓰는 둥그런 모양의 그릇’을 뜻한다. 이 단어는 언제부터 ‘아내가 남편에게 하는 잔소리나 불평의 말’로 더 쓰였다. ‘정해진 값보다 더 높게 값을 매겨서 받는 행위’로도 유명세를 떨친다.

이맘때가 되면 적지 않은 사람들이 한번쯤은 현관 또는 대문에서 금방이라도 울릴 것 같은 초인종 소리를 기대한다. 그리고 그 초인종을 울리는 사람은 다름 아닌 택배기사이기를 그린다. 그러다 뜻하지 않은 사람으로부터 택배를 받게 된다면 그 이상 기분이 좋을 수 없다.

이맘때는 택배물량이 많을 때다. 한해를 보내고 또 새로운 한 해를 맞으면서 감사의 표시로 작은 선물을 주고받는 게지상정의 발로다. 제주에선 감귤택배가 한창이다. 그런데 ‘바가지 택배요금’ 이 문제다.

제주가 언제부터인가 바가지 택배요금인 ‘특수배송비’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고통을 겪고 있다. 정부가 이 문제를 풀어줬으면 하는데, 기대 난망이다. 전국 섬 지역간 형평성을 외면할 수 없다.

지방정부라도 나서야 하지만, 지방정부는 서울만 바라본다.

#6월 지방선거 ‘공약’

제주일보는 최근 5000원짜리 문구상품을 구매했는데 추가배송비로 6000원을 부담하면서 기분 상했던 한 시민의 사정을 보도했다. 그런데 이 같은 사례는 이 시민에게만 해당되는 게 아니다. 섬지역인 제주 사회 구성원 모두가 당하는 불이익이다. ‘특수배송비’다.

이와 관련, 지난 6월 본지가 6‧13 지방선거 공식선거운동 돌입에 맞춰 도지사 후보들에게 ‘이것만은 꼭 실현 하겠다’는 정책공약을 물었다. 이에 대해 한 후보는 제주가 지리적으로 섬인 탓에 도민들이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인 이동권을 제약 받고 물류비용 부담도 가중되는 숙명적인 생활밀착형 현안을 해결하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이 후보는 물류비와 택배비도 절반으로 인하하겠다는 공약을 제시됐다. 당시 이 후보는 “택배비와 물류비 반값을 반드시 실현 하겠다”고 약속했다.

물론 선거에서 후보가 제시하는 공약은 다분히 실현 가능성에 앞서 유권자들의 표를 겨냥한 것으로 볼 수 있지만, 그래도 이를 접하는 유권자는 ‘지방정부가 하겠다고 나선다면 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마련이다.

즉 지방정부가 나서면 풀릴 수도 있는 ‘능력 범위’에 있는 문제라고 믿고, 이를 희망하는 게 당연하다. 제주가 섬이라는 이유로 당하는 불이익 중 첫 번째가 물류비용의 과다한 지출이다. 이게 특수배송비로 옮아 도민들의 어깨를 무겁게 짓누른다.

#도민 모두가 짊어진 고통

올 초 제주연구원의 한 보고서에 의하면 제주도민이 연간(2016년 기준) 부담하는 택배물류비는 1292억 원에 이른다. 그런데 제주도민들의 택배비용은 육지부에서 부담하는 것보다 갑절이상 많다. 전국 평균 택배요금은 ‘2318원’인데 제주는 특수배송비 명목으로 건당 4000원의 요금이 추가로 붙어 6318원을 내야 한다.

그 결과 타지방은 474억원 정도 부담하면 되지만, 제주는 이보다 3배 많은 1292억원을 지불하고 있다. ‘특수배송비’는 업체가 자의적으로 정한 비용이다. 공정하지 않다.

지방정부가 나서야 할 이유는 차고 넘친다. 제주도는 5000건에 육박하는 정부의 권한을 넘겨받아 행사하는 ‘특별자치도’다. 업계를 설득해 추가 요금을 최소화 하고, 그 비용의 일부를 지방정부가 부담해 도민들의 부담을 줄이는 대타협을 이끌어 내는 것은 불가능한 게 아니다.

돈 드는 일은 중앙정부가 하고 돈쓰는 일만 지방정부가 하겠다면 모순이다. 서울을 보기에 앞서 지역 구성원 모두를 억누르고 있는 문제를 풀어 뚜벅뚜벅 앞으로 나가는 게 ‘더 큰 제주’의 출발점이 될 당위성은 충분하다. 어려운 문제 일수록 답은 가까이 있는 법이다. 먼 곳만 보다 이를 못 볼 뿐이다.

정흥남 논설실장  jhn@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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