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사랑한 '바람의 사진가'...이어도를 필름에 담다
제주 사랑한 '바람의 사진가'...이어도를 필름에 담다
  • 김현종 기자
  • 승인 2018.12.18 19: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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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제주 황홀경의 전령사' 사진작가 故 김영갑
제주자연 원형의 풍경들 카메라 기록에 예술혼 쏟아
예술 이전 구원.구도의 삶 살아...대자연에 대한 경외감
제주는 평화.안식의 땅...생전 환경훼손 등 안타까워 해
폐교에 두모악갤러리 조성...치열했던 예술혼 깃든 성지
고(故) 김영갑 작가가 루게릭병 투병 당시 갤러리 ‘두모악’에서 평온한 표정을 짓는 모습.
고(故) 김영갑 작가가 루게릭병 투병 당시 갤러리 ‘두모악’에서 평온한 표정을 짓는 모습.

제주 황홀경의 전령사’, ‘바람의 사진가.

() 김영갑(1957~2005)에게 따라붙는 수식어다.

충남 부여 출생인 김영갑은 제주 바람에 홀려 혈혈단신 섬에 정착했다.

그는 20여 년간 카메라로 섬의 속살을 받아 적던 중 루게릭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지금도 김영갑은 제주에 있다. 사람들은 그의 사진을 보며 바람 쐬고 햇살을 쬔다. 그들은 말한다. “김영갑의 사진 앞에 서면 바람이 불고 안개가 끼고 제주자연의 내음이 난다.

 

제주에 홀리고 사진에 미치다

김영갑은 1982년부터 서울에 주소를 두고 제주를 오가며 사진작업을 했다.

점점 제주에 매혹된 그는 28세 때 아예 섬에 눌러앉았다. 독신으로 제주와 사랑에 빠진 김영갑에게 섬의 원형을 필름에 담고 기록하는 것은 살아가는 유일한 이유가 됐다.

그는 카메라를 어깨에 메고 꽁지머리를 휘날리며 제주를 누볐다. 마치 신내림을 받은 무녀처럼 온 섬을 헤집고 다녔다. 제주에 그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란 없었다.

김영갑은 배고프면 들판에서 당근이나 고구마를 캐먹으며 허기를 달랬다. 주민들의 눈에 행색이 유별나고 행동이 수상쩍을 수밖에 없었다. 급기야 그를 간첩으로 오인해 경찰에 신고하는 일이 생기는가 하면 아이들은 꽁지머리를 보고 가수로 착각해 사인해 달라고 졸랐다.

삽시간의 황홀경을 포착하기 위한 기나긴 기다림은 오롯이 그의 몫이었다. 김영갑은 온몸으로 바람을 맞으며 서 있곤 했다. 바람을 느끼고 이해하지 않으면 결코 제주의 아름다움을 볼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바람과 구름, 오름, 나무, 풀과 한 몸이 되려 했다.

그러다 바람이 빛에 부딪치며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순간 김영갑은 셔터를 눌렀다. 그가 제주의 맨얼굴과 대면하는 황홀한 순간들이 차곡차곡 필름에 기록됐다.

간결한 수평구도의 파노라마 사진마다 제주 대자연을 향한 인간의 경외심이 깃들어있다.

언젠가부터 셔터를 누르는 그의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허리에 통증이 찾아왔다. 나중에는 카메라를 들지도, 제대로 걷지도 못했다. 검진 결과 루게릭병(근위축성 측삭경화증)이었다.

식음을 전폐하던 그가 다시 일어났다. 폐교인 서귀포시 성산읍 옛 삼달초등학교를 빌려 갤러리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당시 김영갑은 몸은 점점 굳어가도 해야 할 무엇인가가 있는 하루하루는 절망적이지 않다고 했다. 뼈가 굳고 근육이 퇴화할수록 악착같이 공사에 매달렸다.

김영갑은 마지막 혼과 열정을 쏟아 부었다. 갤러리가 완성되자 한라산 옛 이름을 붙였다.

2005년 그는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필름들을 두모악에 남겨놓고 48세로 세상을 등졌다.

 

고(故) 김영갑 작가의 유품 중 하나인 카메라.

자연에서 평화와 안식을 얻다

김영갑은 제주자연의 품에서 보고 느끼고 깨달으며 영혼의 자유를 갈구했다. 제주자연의 메시지를 통해 영혼의 구원을 꿈꿨다. 제주 대자연을 향한 그의 애정은 절대적이었다.

그의 삶은 불광불급(不狂不及미치지 않으면 도달할 수 없다)에 도달한 수행이자 구도였다.

생전 김영갑은 대자연의 신비와 경외감을 통해 신명과 아름다움을 얻는다고 했다.

그의 사진은 이어도와 같다. 이십 여 년 간 사진에 몰입한 결과 제주신화 속 이어도에 나온 제주 속살을 발견한 것이다. 제주 사람들이 꿈꿨던 유토피아인 이어도에 잇닿았다.

김영갑은 생전 루게릭병 투병생활 중에 두모악을 지으며 제주는 우리에게 두 눈을 크게 뜨지 않으면 놓쳐버릴 삽시간의 환상에 빠져보라고 손짓하고 있다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제주의 진정성을, 제주의 진짜 아름다움을 받아들일 넉넉한 마음이라고 설파했다.

김영갑갤러리 두모악을 운영 중인 박훈일 관장(49)생전 삼촌은 제주곳곳에 전신주가 세워지고 송전탑이 설치될 때마다 고유의 아름다움이 사라지고 정체성이 훼손된다고 안타까워했다특히 제주자연의 원형을 간직한 중산간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하셨다고 전했다.

박 관장은 김영갑의 제자이자 그가 세 들어 살았던 집의 아들로, 스승을 삼촌이라 불렀다.

박 관장은 삼촌은 제주를 명상센터라고 표현했다. 제주자연 속에 서면 내면에 평화와 고요가 찾아왔기 때문이라며 삼촌의 사진은 제주 자연을 지켜야 하는 이유와 같다고 강조했다.

사진을 찍으며 아름다운 세상을 보았다. 대자연의 신비를 느끼고 하늘과 땅의 오묘한 조화를 깨달았다. 지금은 사라진 제주의 평화와 고요가 내 사진 안에 있다. 더 이상 사진을 찍을 수 없는 나는 그 사진들 속에서 마음의 평화와 안식을 얻는다.’(김영갑의 그 섬에 내가 있었네중에)

 

 

김영갑갤러리 두모악은

서귀포시 성산읍 삼달초등학교를 빌려 조성한 1종 미술관이다. 김영갑의 작품과 필름 수만 점이 소장전시되고 있다. 주인 잃은 카메라를 비롯한 고인의 유품들도 전시돼 있다.

그의 치열했던 예술혼 덕분에 갤러리를 넘어 경건한 성지와 같은 곳으로 평가받고 있다.

내셔널 트러스트의 잘 가꿔진 자연문화유산과 한국관광공사의 한국인이 꼭 가봐야 할 한국관광 100등에 지정됐다. 제주 관광객 대상 인상 깊은 관광지’ 1위에도 선정됐다.

김영갑갤러리 두모악은 2014년 사단법인으로 등록했다. 두모악은 김영갑이 남긴 수만 장의 필름에 대한 데이터베이스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현재 절반 정도 작업이 완료된 상태다.

김현종 기자  tazan@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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