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니까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니까
  • 부영주 주필·편집인/부사장
  • 승인 2018.12.16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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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연말 이맘 때쯤 자신에게 던져보는 화두(話頭) 하나. 인생, 그리고 행복이란 무엇인가.

김소운(金素雲)의 수필 가난한 날의 행복은 지난날 5060세대에게 행복론의 교과서였다. 신혼 초 실직한 남편은 아침을 거르고 출근한 아내를 위해 어렵사리 쌀을 구해 점심상을 차린다. 점심상이라야 밥 한 그릇에 한 종지의 간장이 고작이건만 남편은 왕후의 밥, 걸인의 찬이라는 쪽지를 남긴다. 정성을 다한 남편의 마음에 아내는 왕후가 된 것보다 더한 행복을 느끼며 눈물을 흘린다는 내용이다.

어쩌면 신파조(新派調) 같은 이 이야기는 우리 기억 속에 남아있는 한 장의 빛바랜 흑백 사진일지 모른다. 하지만 수필을 읽었어도 과연 행복이 무엇이냐 하는 물음에는 답을 찾기가 쉽지 않다. 저마다 느끼는 행복의 질과 내용이 다르기 때문이리라.

 

행복은 사람마다 다르다. 주관적인 감정인 동시에, 시대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배가 고픈 시절에는 삼시 세끼면 족했다. 민주화의 열망과 정의로운 투쟁이 곧 행복이라고 확신하던 때도 있었다. 웰빙 시대에는 내 몸을 위해 비타민을 먹고 정신을 위해 요가를 하는 것이, 그리고 힐링 시대에는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면서 정신적 안정을 얻는 것이 행복이라고들 한다.

사실 인간 존재와 행복의 결부는 철학이나 종교·예술의 전유(專有) 영역도 아니다. 그래선지 정치와 행정도 사람들의 행복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행복을 나눠주겠다며 포퓰리즘 경쟁을 벌인 경우가 허다하다. ‘행복주택’, ‘행복한 보금자리등 때는 바야흐로 관급 행복시대를 열고 있는 것이다. 국가나 지자체가 자유시민 개개인에게 어떤 행복을 줄 수는 있는 건가? 턱없이 뒤처진 정치 지체(遲滯)’ 현상이 씁쓸하다.

 

행복의 조건과 정의가 사람마다 제각각이듯, 그런 행복으로의 도달 또한 궁극적으로 개인의 평생 과제일 수밖에 없다.

그래도 팍팍한 생활 속에 누군가에게 배우고 싶고, 앞선 이들의 색다른 경험이나 깊은 사유에서 답을 찾고 싶은 게 보통사람들이다.

굳이 사상가, 대문호, 석학이 아니어도 좋다. 때로는 내 눈높이에 맞고, 답답한 내 현실에 꼭 맞는 해법이 더 좋지 않을까.

예나 지금이나 많은 철학자가 행복에 대해 탐구하고 사색했다. 사상가, 철학도만이 아니었다. 종교인 문인 예술가들도 그렇고, 무수한 장삼이사(張三李四)들도 무엇이 행복이며 어떤 상태가 행복인가를 고민했다. 저술로 나온 행복론도 많다.

하지만 결론은 인생의 답을 찾아 평생을 헤맸지만 결국 답이 없다는 답을 얻었다는 정도다. 그럴 만도 하다. 저마다 잘난 체 폼 잡고 살아가지만 멀리서 보면오십보백보니까.

 

올해 1인당 국민소득이 3만달러 돌파가 확실시된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또 2023년쯤 소득 4만달러를 예측했다.

나라 밖에서는 유례없는 성공 사례로 부러워하지만 정작 우리들 안에서는 볼멘소리가 날로 커져 간다. 삶의 만족도가 떨어지고, 상대적 박탈감을 표출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국민소득 3만달러라는데 왜 이럴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회원국 중 우리의 주거 환경, 소득, 직업 등 11가지 지표 중 다른 건 웬만한데 공동체 생활’(어려울 때 도움받을 친척 친구 이웃이 있다) 부문은 10점 만점에 0.5점으로 최하위라고 한다. (OECD 평균은 6.6) 다들 사무치는 외로움에 떨고 있다는 얘기다.

영화를 보면 대개 끝이 다가오면 장면은 짧아지고 이야기 전개는 빨라진다. 세월도 그렇다. 연초에는 사소한 일들조차 낱낱이 살아서 느릿느릿 움직인다. 그러다가 연말이 되고 세밑이 가까우면 하루하루가 엔딩 자막 오르듯 빠르게 물러나며 사라져 간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물러나다가 혼곤하게 지쳐 산에서 내려올 때야 비로소 얻는 깨우침. ‘웬수같은 가족들이 있어 줘서 고맙다. 그래서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니까.

웬걸 오늘 아침은 겨울비에 젖은 거리가 한 폭 수채화 같다.

부영주 주필·편집인/부사장  boo4960@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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