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왕위전
제주도 왕위전
  • 홍성배 선임 기자
  • 승인 2018.12.12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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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3월, 지구촌의 이목이 대한민국 서울로 집중됐다. 구글의 인공지능(AI) 바둑프로그램 ‘알파고’(AlphaGo)와 이세돌 9단, 즉 인공지능과 인간의 ‘세기의 대결’이 마련됐기 때문이다. 대국 전 일반의 예상과는 달리 막상 1국에서 이세돌이 돌을 던지자 전 세계는 침묵했다. 이어 2국과 3국에서도 잇달아 패하면서 ‘이제는 인류가 기계를 이기지 못 한다’는 탄식이 터져 나왔다. 모두가 자포자기 심정이었던 바로 그 순간 이세돌은 기적 같은 승리를 연출하며 지구촌을 열광시켰다.

대국 이후 이세돌과 알파고를 모르는 국민은 없어졌고, 바둑계도 최대 호황을 누렸다. 한국갤럽의 ‘2016년 바둑에 대한 국민인식’ 여론조사 결과 이세돌은 압도적으로 ‘바둑’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 1위(45.7%)를 기록했다. 국민들이 바둑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를 묻는 질문에서도 ‘이세돌-알파고 대국’이 33.4%로 1위였다. 이 대국을 지켜본 후 바둑에 대한 생각이 긍정적으로 바뀌었다는 응답자가 52.8%에 달했다. 응답자의 75.8%는 바둑이 국민 사기를 진작하는데 기여한다며 호감을 드러냈고, 63%는 바둑을 ‘두뇌 스포츠’라고 정의했다. 바둑을 둘 줄 안다는 응답자(22.2%)를 바탕으로 추계한 바둑 인구는 921만명에 달했다.

이처럼 국민들의 사랑을 받는 바둑은 각종 국제・국내대회를 개최하며 기반을 조성한 언론의 뒷받침으로 성장했고, 제주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제주일보의 전신인 제주신보는 1957년 11월 16, 17일 이틀간 제주시 일도동 이승택 전 제주도지사의 집에서 도내 49명의 기사가 참가한 가운데 ‘제1회 전도바둑대회’를 개최했다. 제주기원 주관으로 열린 이 대회는 ‘건전한 오락인 바둑을 널리 보급하기 위해’ 마련됐다. 그러나 전도바둑대회는 5・16 군사 쿠데타와 당시 복잡했던 제주의 언론 환경 등으로 인해 1960년의 4회 대회를 끝으로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이후 제주 바둑의 역사를 이은 것이 제주도 왕위전이다. 제주일보의 전신인 제주신문은 1968년 창간 23주년 기념으로 바둑대회를 마련했다. 건전한 대중오락으로서의 바둑 권장과 제주 바둑의 질적 향상에 도움이 되고자 하는 목적이었다. 이때 창설된 대회가 바로 ‘바둑 제주도 왕위전’이었는데, 제주동호인회 주관으로 친목대회도 함께 열었다. 당시 왕위전 요강을 보면 참가 자격은 2급 이상으로 해마다 봄・가을 2회씩 실시하고 첫 회는 참가자 전원을 대상으로 한 리그전으로 왕위를 가렸다. 또 2회 때부터는 도전자를 선발해 5번기로 왕위를 가리는데, 왕위배는 3연승으로 차지하기로 했다.

제주도 왕위전은 이듬해인 1969년 당초 계획대로 봄・가을에 걸쳐 2, 3기 대회를 치른 후 1970년부터는 연례 대회로 이어졌다. 그러나 1982년 16기 대회를 끝으로 속절없는 단절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마침내 제주도 왕위전은 8년의 공백을 딛고 1990년 17기 대회를 개최함으로써 명맥을 잇게 됐다. 대회 부활을 염원하는 제주 바둑인들의 노력과 신문사의 결단이 합쳐진 결과물이었다.
그동안 대회 우승자인 왕위는 자타가 공인하는 제주 바둑계의 1인자였고, 바둑 동호인들도 손꼽아 기다리는 대회로 자리매김했다.

지난해 우승한 문해성 왕위는 “인생 실패의 순간, 자신이 저지른 실수를 겸허히 받아들여야 앞으로 나갈 수 있는 게 바둑의 매력”이라는 소감을 피력한 바 있다.
애써 쌓아온 전통과 노력이 너무도 쉽게 무너지는 시절이다. 막상 후회했을 때는 이미 늦었음을 절감하면서도….

어려움 속에서도 제주 바둑의 역사를 써내려온 제주도 왕위전이 올해로 반세기를 맞았다. 사흘 앞으로(12월 16일) 다가온 제45기 대회가 반가울 따름이다.

홍성배 선임 기자  andhong@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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