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의 경계, 마음의 경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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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주일보
  • 승인 2018.12.10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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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종태 시인·다층 편집주간

나이가 조금 든 사람이라면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들었던 새마을 노래를 기억할 것이다.

1970년부터 농촌 부흥 운동을 기치로 시작된 새마을운동은 점차 도시와 공장과 직장, 심지어 학교에까지 파급되면서 초기에는 경제 부흥 운동으로 시작된 것이 의식 개혁 운동으로 발전되게 됐다.

물론 이 운동에 대해 정치적 목적이 있는 국민 세뇌 운동이었다고 폄훼하는 사람들도 없는 것은 아니나 이 글에서는 그러한 논쟁을 하자는 자리가 아니기에 논외로 둔다.

가사에는 초가집도 없애고, 마을 길도 넓히고~’라는 가사가 있다. 바로 이 부분을 얘기하고 싶은 것이다.

돌이켜보면 어린 시절 필자의 집으로 가는 길은 우마차 한 대도 간신히 갈 정도의 비포장 산길이었다.

그것도 이슬이 내린 날이면 신고 있는 고무신에서는 발이 미끄러지면서 고무와 마찰해 나는 개구리 소리가 들리곤 했다.

그러던 길이 새마을운동이 일어나면서 불도저가 밀어대더니 시멘트 포장을 해 놓았다. 좁고 굽은 길은 도로변 토지주들의 협조로 도로에 편입시키면서 번듯한 길이 됐다. 그 후로 길을 오갈 때 겪었던 불편이 사라지고 새로운 세계가 열린 것이다.

그렇게 마을 안길 넓히기 사업은 성공적으로 자리를 잡았고 그때 넓힌 길이 지금까지도 유지되고 있다.

하지만 이게 탈이 되는 일이 요즘 제주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필자가 사는 마을만 해도 그렇다.

귀농·귀촌 바람이 불면서 골목 중간에 있는 과수원이 팔렸다는 소식이 들리더니 건물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마을 사람들은 그 누구도 큰 걱정을 하지 않았다. 문제는 건물이 완공되고 그들이 울타리를 쌓으면서였다.

안 그래도 급커브에 심한 경사길인데 도로 폭이 좁아 자동차 한 대가 아슬아슬하게 지나갈 정도만 남아 있다.

새로운 땅 주인은 자신들의 지적도대로 경계를 확보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그 땅은 이전 밭 주인의 동의 하에 도로로 사용하기로 한 땅이었고 마을 사람 누구도 그에 대해 의심해 본 적이 없다.

실제로 이 길을 지적도대로 울타리를 쌓는다면 그 신축 건물로 들어가는 길마저도 자동차 진입이 불가능하게 될 것이다.

물론 새로 땅을 구입하고 집을 짓는 사람 입장에서는 자신의 권리 주장도 일리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마을로 들어서는 진입로를 침범한 경계 설정으로 매일 그 길을 오가는 마을 사람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는 것은 모를까.

그런데 이런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은 다른 데 있다고 생각한다. 마을 주민들이 그렇게 성의를 표하며 자신의 땅을 내놓고 안길을 확장한 것을 행정관청에서는 그대로 방치해뒀다는 얘기다. 그러다 보니 토지주가 바뀔 때마다 곳곳에서 주민들과 이런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나 몰라라 하는 당국은 도대체 뭐 하자는 것인가. 법적인 기준만 가지고 수수방관으로 일관하는 무성의요, 무책임 아닌가.

더 황당한 것은 그렇게 기존 도로를 침범하고도 건축 허가가 나온다는 것이며 준공검사가 통과된다는 것이다.

원래 살던 사람들의 선의와 동의 하에 도로로 이용해오던 것을 자신의 땅이라고 주장하는 새 주인들의 심보도 고약하지만, 진작 토지주들과 상의하고 도로의 경계를 확보해 놓았더라면 새 토지주들과 마을 사람들이 갈등을 빚고 불편해하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제주도의 땅값이 천정부지로 상승한 지금에 와서 토지주들에게 동의를 구하려면 만만한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옛 어른들이 성의로 내어주고 만들었던 도로에 대해 공공의 목적에 맞는 도로의 구실을 할 수 있도록 행정당국의 대책이 시급히 필요하다.

제주일보 기자  kangm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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