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8년 광주 기자단 “4·3으로 무고한 제주도민 희생”
1948년 광주 기자단 “4·3으로 무고한 제주도민 희생”
  • 고경호 기자
  • 승인 2018.12.09 20: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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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 1948년 보도된 호남신문 기획 ‘동란의 제주도를 찾아서’ 입수
광주지역 기자단 1948년 6월 29일부터 14일간 제주에서 현장 취재
당시 도민 및 관·군·경 지도부 등 만나 피해 규모, 발발 원인 등 보도

“먼 곳 총탄은 무섭지 않고, 가까운 총부리가 무서워서 못 살겠다”. 1948년 7월 2일 당시 화북 부락의 한 노파가 기자들에게 건넨 절규다.

제주4․3의 참상을 여실히 보여주는 ‘호남신문’의 기획 기사가 최근 공개됐다.

당시 도민들이 처한 상황과 고통을 비롯해 관·군․경 지도부를 대상으로 한 취재가 생생하게 담겨있는 해당 기사는 제주4·3의 비극을 증명하는 객관적인 사료(史料)로 가치가 높다.

본지는 국립중앙도서관을 통해 1948년 7월 15일부터 22일까지 당시 ‘호남신문’이 총 7회 보도한 ‘동란의 제주도를 찾아서’ 기획기사를 확보했다.

당시 호남신문 김상화 기자 및 이경모 사진부장을 비롯한 광주지역 신문사 기자들은 ‘제주도 소요사건 진상조사’를 위해 1948년 6월 29일부터 7월 12일까지 14일의 일정으로 제주를 찾았다.

기자단이 방문했던 시기는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에 명시된 4·3 전개과정 중 5·10선거 직후인 초기 무력충돌기(1948년 5월 11일~10월 10일)에 해당된다.

기자단이 목도한 제주는 비극의 현장 그 자체였다.

기자단이 만난 당시의 도민들은 “제주도 백성은 바다와 산에 생명을 의존하고 있는데, 이제는 법 아닌 총검에 다 뺏겼다” “늙은 것들이야 죽든 말든(상관없다). 젊은 사람들이 집에 발을 붙일 수가 없다”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까우니 살 수가 없다”며 울부짖었다.

호남신문 7월 18일자 보도에는 ‘부락민들은 일행을 둘러싸고 격분에 북받치는 태도와 눈물어린 얼굴로 시계를 뺏겼느니, 처녀를 내놓으라고 조른다느니, 가재를 부쉈느니, 돼지를 잡아갔다느니 등의 말을 고성으로 외쳤는데 이러한 만행은 도대체 누가 범하고 있는 것일까’라고 명시돼 있다.

이외에도 포로수용소에 폭도와 함께 갇혀있는 양민들과 이들에게 사식을 넣기 위해 밥 광주리를 움켜쥐고 있는 여인들의 모습에 대해 ‘포로수용소에는 발발이 찢어진 감물 들인 옷을 입은 농민들이 있었다…소박한 농군이 저 잔악한 민족의 피를 뿌리게 하는 폭도로 보이지는 않는다’고 보도했다.

1회 호남신문-1948년 7월15일자 2면

기자단은 1948년 7월 1일 임관호 제주도지사와 김봉호 제주경찰감찰청장, 최경록 경비대 연대장 등 관·군·경 수장이 참여한 가운데 열린 ‘제주도군수읍면장 연석회’의 주요 내용도 기사로 전했다.

호남신문 1948년 7월 16일자 2면에 보도된 내용에 따르면 당시 각 면장이 보고한 피해는 6월 15일 기준 소실가옥 421호, 폭도를 제외한 양민 측 사망 292명, 중경상 98명, 납치 35명이었다. 주민 집단희생기 전이었음에도 상당한 피해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기자단은 제주도민들의 특징에 대해서도 소개했다.

호남신문 1948년 7월 21일자 보도에는 ‘육지에는 1면 1국민학교인데 반해 제주는 1부락 1국민학교, 1면 1중학교일 만큼 교육시설이 발달돼있다…특권층을 용납 안할뿐더러 무리한 제압이 있을 수 없는 균등사회’라고 명시돼 있다.

제주의 비극을 직접 취재한 기자단은 제주4·3을 ‘무고한 도민의 희생’으로 바라봤다.

기자단은 호남신문 1948년 7월 22일자 마지막 회를 통해 ‘일부 관공리와 몇몇 사설단체의 탈선행위가 이번 사건의 직접 원인은 안됐다고 하더라고 간접적 원인은 충분히 되고 있음을 도 당국 최고 책임자도 시인하고 있다…도민들은 죽든지 살든지 두 갈래의 길 중에서 어느 것이라도 하나를 취하지 아니하면 안 될 최후 운명선에 섰다’고 보도했다.

박찬식 제주학연구소장은 “기자단이 직접 제주에 와서 4·3을 목격했고, 도민들과 관·군·경 수뇌부를 만나 취재했다”며 “특히 5~7회에는 산악부대, 산군 등으로 불린 폭도들의 봉기 원인이 설명돼 있어 4·3의 과정을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고경호 기자  kkh@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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