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일 남자라면
내가 만일 남자라면
  • 뉴제주일보
  • 승인 2018.12.04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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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가영 수필가

철학관에서 사주를 봤더니 남자로 태어났으면 좋았을 뻔 했다고 했다.

생각을 해 봤다. 내가 만일 남자라면 어떤 여자를 택했을까 하고.

대부분의 남자들이 싫어하는 기가 센 여자가 나는 좋다. 아내를 택한다면 역시 그런 여자다.

실패하거나 맘에 안 드는 일이 있다고 투덜거리고 한탄하고 남의 탓으로 돌리는 여자보다는 화끈하게 한 대 치고받아 산뜻하게 끝내는 여자가 좋다. 일 처리를 빨리 하고 다시 평정심으로 돌아올 수 있는 여자.

그런가 하면 상류 지향적인 여자는 싫다. 상류가 아닌 상류지향적인 여자. 예를 들어 옷은 어느 브랜드가 아니면 안 되고 승용차는 어떤게 아니면 안 된다는 식의 여자는 남편인 나로서는 불유쾌할 것이다.

멋있는 척 하는 사람은 멋있는 사람이 아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척 일 뿐이니까.

감정이 풍부하고 나름대로의 지식을 갖고 있지만 그것을 사람 앞에 자랑하지 않는 게 교양이라는 게 아닐까.

말을 바꾸면 남편인 나보다도 모든 면에서 뛰어나도 곤란하지만 무지하고 무교양도 흥이 깨진다는 얘기다.

적당히 영리하고 적당히 어리숙해서 가끔은 남편인 내가 그런 것도 몰라?”하고 꾸짖으면 미안해 몰라서라는 사과를 받고 싶다.

적당하게 영리하고 적당히 어리숙하지만 이렇다 할 때 확실하게 자기주장을 할 수 있는 여자. 그게 내가 바라는 나의 아내의 모습이다.

이런 얘길 쓰겠노라고 했더니 친구가 깔깔 웃었다. 누구나 그런 아내를 좋아할 것이 아니냐고 했다. 구태여, 내가 만일 남자라면, 이라고 가상을 붙이지 않더라도.

가장 큰 문제는 남편인 내가 바람피운 걸 족집게 같이 알아내는 여자를 아내로 맞이했을 경우다.

그땐 어떨까? 그걸 생각해 보는 게 훨씬 재미있을 것 같다.

지금 남편들이 무서워하는 그런 아내는 내가 만일 남자여도, 별 수 없는 게 아닌가나도 무섭다.

그러고 보면 내가 만일 남자여도 거기서 거기라는 생각이 든다.

여자가 기쁘다고 생각하면 남자도 기쁘고, 남자가 슬프다고 느끼면 여자도 슬픈 것일 게다.

남자로 태어났으면 좋았을 뻔했다는 사주 선생의 그 말에 별 의미가 없음을 알았다.

친구들과 모여서 수다를 떨었다.

남편이 없어도 곤란하지만 종일 집에 있어도 골치라고 투덜댔다. 퇴직한 후에 사소한 일에도 상처 잘 받는 남편 달래고 얼러맞추는 게 힘들다고 했다. 허풍떨던 남편의 모습이 그립다고.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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