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기적
일상의 기적
  • 뉴제주일보
  • 승인 2018.12.02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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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진주 제주서중학교 교사

아침에 일어나는데 목이 말을 듣지 않고 고개를 들 수 없다. 겨우 세수를 하고 옷을 챙겨 입고 출근했다. 오전 개인 상담, 오후 행복 교실 내내 왼쪽 손끝까지 마디마디 저려온다. 하루를 어떻게 근무한 지 모르게 진통을 견디며 퇴근 후 병원에 들렀다.

정형외과에 가서 엑스레이를 찍었는데 목뼈 7, 8번이 거북이 목처럼 됐다며 주사를 놔 주고 아침저녁 약을 7일간 복용하라 한다. 난생 처음으로 약국에서 파스를 사서 붙였다. 그렇게 일주일을 지내고 병원에 다시 갔더니 오래 갈 거라며 주사를 한 대 놔 주고 또 7일간의 약을 줬다. 몸이 아프니 음식 맛이 없다. 사는 즐거움이 다 없어진다. 통증은 사라졌는데 왼쪽 팔이 저렸다. 지금껏 경험해 보지 못한 진통과 저림이었다.

지인들에게 이야기했더니 한방에 가서 침을 맞으면 좋을 거라 한다. 병은 알리고 사람들의 도움을 받는 게 좋을 듯해서 만나는 사람마다 나 아퍼”, “호 해줘하면서 너스레를 떨었다. 사람마다 본인이 아픈 것처럼 위로해 주며 자신들의 병 고친 이야기를 해 준다.

주사 맞는 것도 침 맞는 것도 무서워하는 내가 너무 아프니 침을 맞고 진료를 열심히 받았다. 한의원 선생님 말씀이 생각난다. 오십이 넘으면 한방하고 친하게 지내란다.

사실 내 몸에서 신호가 오고 있었다. 너무 무리하지 말라고. 눈도 피곤하고 어깨도 무겁고 다리도 아팠다. 그런데 그 신호를 무시하고 지내다 보니 이상이 왔다. 그렇게 한 달간 고생하고 치료를 열심히 했더니 이제는 말짱해졌다.

아침에 일상으로 일어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아프고 나니까 몸의 신비가 바로 기적이다. 아침에 눈을 뜨고 세수를 하고 화장을 하고 스스로 운전해서 출근한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매일 제주시를 오가는 게 지쳤던 것 같다. 오후에 특별하게 스케줄을 따로 하지 않아도 몸이 지친다. 운전을 할 수 없어서 버스를 타고 출근을 해 보니 버스기사님이 얼마나 감사한 분인지!

아이들과 이야기하면서 내 몸이 아프니까 이야기를 들어도 대충 걸러서 듣게 되고, 마음이 아픈 친구에게 제대로 상담이 이뤄지지 않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교사는 자기 몸도 잘 관리해 최선의 컨디션으로 학생을 돌봐야 한다.

얼마 전 지인이 아프다고 해 병문안을 다녀왔다. 나이도 있고 몇 년에 걸쳐 건강이 악화돼 침대에 누워만 있는 선생님을 뵀다. 한 때 명성도 있고 날카로운 직관력, 예민한 감수성, 빛나던 그의 재능도 다 소용이 없다는 마음이다.

선생님이 가장 원하는 것은 좋아하는 사람들과 웃으며 이야기하고 산책을 하고 식사를 하는 아주 사소한 일이 아닐까? 자주 찾아뵙는다고 하면서도 삶의 여유가 없어서인지 지인들에게도 점점 관심을 두지 못하게 된다. 그러면서 밥 한 번 먹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행복하게 산다는 것은 좋은 사람들과 관계를 나누고 친밀감을 이루는 게 아닌가?

친구들이 산행한다며 보내준 사진에 단풍이 예술이다. 하늘은 높고 은행은 노랗고 단풍은 빨강으로 온통 산을 물들였다. 계절의 변화를 느끼게 한다. 공기는 맑고 태양은 그대로이건만 내 몸은 불편하다. 나도 저곳에 함께 있어야 하는데 가지 못했다. 내가 오늘 일어서 걸을 수 있다는 건 기적이다. 친구들과 함께 산행할 수 있다는 건 축복이다. 건강하면 다 가진 것이다.

한 해를 잘 보냈는지 감사의 계절이 됐다. 올 한 해의 결실을 보는 이 시점에 부족한 게 너무 많다. 남은 기간 잘 마무리해 올 한 해도 열심히 잘 살았다고 스스로 인정할 수 있어야 할 텐데. 몸도 마음도 잘 가꿔 유종의 미를 거둬야 한다.

계절이 바뀌고 겨울이 온다. 우리 인생에서도 매 순간 건강과 행복이 오는 것은 아니다. 인생에서 라이프 곡선이 있듯 아프고 어려움이 있으니 일상의 감사가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된다.

좀 더 겸손하게 자연 앞에 우리는 작은 피조물이다. 오늘 아침 일어날 수 있는 축복이 얼마나 감사인가. 오늘 하루 내게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하는 성실함이 내가 살아있는 존재 이유임을 새삼 실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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