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딴따라’에 빠진 제주청년…한국 인디음악을 이끌다
‘딴따라’에 빠진 제주청년…한국 인디음악을 이끌다
  • 변경혜 기자
  • 승인 2018.12.02 18: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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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제주인] 11. 고건혁 붕가붕가레코드 대표
10대 밴드 거쳐 음반제작자 성장
‘장기하와 얼굴들’ 등 발굴 키워내
지속가능한 좋은 음악 찾기 도전

‘인디계 JYP’로 평가, 확장성 넓혀
고향서 컨퍼런스 연계 공연 노크
‘아시아 음악허브 제주’ 기회 올 것
고건혁 붕가붕가레코드 대표가 트로피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고건혁 붕가붕가레코드 대표가 트로피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12년간 한국 인디음악을 이끌고 있는 고건혁 붕가붕가레코드 대표(38)는 고교시절 ‘크라잉넛’ 밴드의 제주공연을 보고 처음 기타를 잡았다고 했다. ‘장기하와 얼굴들’을 처음 대중에 알린 그는 시나브로 한국 인디음악의 대표주자로 성장해 다양성이 생명인 인디음악의 ‘지속가능성’을 이야기한다. 지난달 23일 서울 홍대근처에 자리한 붕가붕가레코드사에서 그를 만났다.

운명처럼다가온 '음악'

고등학생 소년의 마음에 크라잉넛이 큰 돌을 던진 거죠. 공연을 보고 아 저거다!’하며 그때파문이 기타로 이어졌으니까요. 친구들과 꾸역꾸역 악기를 챙겨 연습할 곳을 찾아 제주시내를 헤매다 노래방과 심지어 유흥업소까지 갔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해요. 그때만 해도 청소년밴드가 연습할 곳이 정말 없었거든요.”

고건혁 붕가붕가레코드사 대표(38)가 고교시절 탈출구였던 밴드활동 이야기를 꺼냈다. 벌써 20년 전 이야기. 그 시절 10대의 상투적인 약속인 학교 성적에 지장 없도록 하겠다는 부모와의 다짐과 약속을 기타 줄에 녹여가며 띵가띵가음악활동을 이어갔다.

그리고 대학 입학, 기타 대신 그는 음악비평과 공연기획으로 눈을 돌렸다.

이유는 간단해요. 저보다 기타를 잘 치는 사람이 정말 많았고, 기타에 소질이 없던 걸 빨리 깨달은 거죠. 친구들과 웹미디어를 시작했는데 거기서 문화비평, 학내 공연비평을 담당했어요. 처음엔 학내 밴드들과 많이 싸우기도 했어요. 그러다 창작과 공연, 앨범까지 내게 됐어요. 대학시절 좋은 경험이 졸업 후에도 이어진 거죠. 하고 싶은 일을 직업으로, 일을 한다는 즐거움을 찾아 도전한 거예요.”

도전엔 늘 위험이 따르기 마련, 그 역시 인디밴드 발굴과 음반제작에 힘을 쏟았지만 별다른 반향을 얻지는 못했다. 대학원에 진학해 일과 공부를 병행하는 것 역시 쉬운 과정은 아니었다.

포기하려고 했어요. 제가 듣기에 좋은 음악인데, 대중들의 반응은 시큰둥했고 , 좋은 노래라고 꼭 대중성이 있는 건 아니구나라는 걸 깨달았어요. 그 즈음 마지막 앨범으로 내부적으론 대중성이 제로라는 말까지 했던 장기하와 얼굴들싸구려 커피싱글앨범이 히트를 치게 됐어요.”

 

붕가붕가레코드의성장

예상치 못했던 결과였다. 한국가요계는 혜성처럼 나타난 장기하와 얼굴들에 열광했다. 싸구려커피를 마시며 방구석에서 무거운 아침을 매일 맞는 청년들의 고단한 삶을 중얼거리듯 뱉어낸 이 노래로 붕가붕가레코드의 2008~2009년 매출액은 무려 3200%라는 놀라운 수직성장을 만들어냈다. 고 대표는 세계적 IT기업인 구글 성장률의 2배라고 농담 삼아 얘기했다. 장기하의 성장 뒤에 고건혁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질문도 던졌다.

장기하는 음악적으로도 굉장히 뛰어나지만 본인이 보여주고 싶은 것을 가장 효과적으로 보여주는 정말 훌륭한 능력을 가진 아티스트예요. 전 그냥, 조력자라도 해두죠.”

장기하와 얼굴들이 탄탄한 대중성을 가진 뒤에도 고 대표는 대학원과 일 두 가지를 병행했다. “물론 회사도 성장했지만, 장기하를 인디영역에 묶어둘 수 없다는 걸 서로 알고 결별했어요. 대중성에 걸맞는 지원을 할 수 없다는 걸 느끼면서 발목을 잡고 있는 것 같아 부담이 많았거든요. 지금도 아주 현명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해요.”

2013년 장기하가 떠난 붕가붕가레코드엔 술탄오브 더 디스코’, ‘새소년’, ‘눈뜨고 코베인’, ‘불나방스타쏘세지클럽등이 활발한 음악활동으로 채우고 있다.

장기하처럼 아주 확 성공하지는 않았지만 술탄오브 더 디스코팀은 2014년 세계 최대 페스티벌인 글래스턴버리 페스티벌에 한국 최초로 공식초청을 받을 만큼 내공이 대단하죠. 얼마 전 2집 앨범발표에 맞춰 1500석 규모의 공연도 성공적으로 마쳤어요. ‘실리카겔새소년2017년과 2018에 한국대중음악상 신인상을 연달아 받을 만큼 주목받고 있고요.”

붕가붕가라는 발칙한 이름만큼이나 독특한 음색과 개성으로 무장했다는 설명도 잊지 않았다.

국내 대형기획사 틈바구니에서 10년 넘게 인디음악을 하는 게 어렵지 않냐는 질문을 던졌다.

그래서 지속가능한 딴따라질을 얘기해요. 젊은 시절 한꺼번에 다 쏟아 붓는 열정으로 똘똘 뭉쳐진 게 아니라 나이 들어서도 음악을 하고 싶고, 좋은 음악을 계속 해나가는 것, 그걸 하고 싶은 거죠. 생태를 유지하며 개발을 하는 지속가능한 성장·개발처럼요. 음악으로 돈을 벌겠다는 것과는 다른 거죠. 하지만 그만큼 어렵기 때문에 동료나 회사가 그들을 지탱케 해주는 사회안전망으로서의 역할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대학 졸업 직전인 2006년 즈음 지속가능한 딴따라질이란 모토를 만들었으니까, 12년을 유지하는 건데 아직까지는 잘 해내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면서 붕가붕가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전망도 내비췄다.

과거에 비해 인디음악 시장은 훨씬 커졌어요. 예전엔 록밴드가 중심이었지만 장르도 정말 다양해졌고 인디음악이 음원차트에서 1위를 하기도 하죠. 물론 인디음악의 가장 중요한 수단이 공연인데, 공연장이 점점 줄어드는 게 위기이기도 해요. 홍대인근만 봐도 그렇고요. 그렇지만 인디음악 시장이 많이 넓어지고, 성장하고 있다는 걸 실감하고 있어요.”

올해 붕가붕가는 매직스트로베리사운드와 제휴했다. 매직스트로베리사운드는 십센치, 선우정아, 치즈, 윤딴딴 등이 속해있는 인디음악계의 YGJYP로 통한다. 확장성을 넓힌 셈이다.

 

■ '아시아음악허브제주'꿈꾸다

앞으로 계획을 묻자, 부산국제영화제 이야기를 꺼냈다.

제주에 페스티벌을 만든다고 가정하고 가장 주목했던 게 부산국제영화제였어요. 성공비결이 무엇일까. 도쿄영화제가 저물어갈 무렵, 아시아영화에 초점을 맞췄고 실력있는 프로그래머들과 조직위원회의 리더십, 거기에 관의 지원 최소화에 초점을 맞췄어요. 물론 근래의 평가는 좀 다르지만. 곧 아시아의 음악무대가 하나의 권역이 될 것 같아요. 거대한 음악시장이 곧 열릴 중국과 이미 성장한 음악시장을 갖고 있는 일본 사이에 제주가 있다는 건 지리적으로 큰 장점이예요. 아시아의 음악허브가 될 수 있는 조건을 갖춘 셈이죠. 물론 내수가 정말 작아서 시장으로서는 성장하긴 어렵지만, 아시아음악을 함께 향유할 사람들과 프로그램을 함께 접목시킨다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는 2012년부터 3년간 제주에서 여행과 여러 컨퍼런스를 연계한 공연을 노크하기도 했었다.

좋은 실험이었어요.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릴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그날이 오기를 기대하고, 태국·홍콩·도쿄 등등 아시아의 여러 인적 네트워크를 준비하고 있어요. 제주의 올레길에는 제주만의 소울(Soul)’이 있거든요. ‘아시아음악허브 제주의 기회가 분명 온다고 생각해요.”

고건혁 붕가붕가레코드 대표는…

1981년 제주에서 태어난 고건혁 붕가붕가레코드 대표는 인디음악계에서 ‘곰사장’으로 불린다. 오현고와 서울대 심리학과를 졸업, KAIST 문화기술대학원에서 소셜미디어 마케팅분야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5년 붕가붕가레코드를 설립한 후 ‘장기하와 얼굴들’을 비롯 다양한 인디밴드를 발굴하고 있다. 2014년 대한민국대중문화예술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표창을 받는 등 대중음악 발전을 위한 공로를 인정받고 있다. ‘하고 싶은 음악을 계속 하면서, 적당히 벌어먹고 건강하게 사는’ 지속가능한 음악이 그의 목표다.

 

변경혜 기자  bkh@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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