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황후, 신화와 역사 사이
허황후, 신화와 역사 사이
  • 뉴제주일보
  • 승인 2018.11.28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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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방울 고문헌 박사·논설위원

지난 4일부터 34일 일정으로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가 인도를 방문했다. 인도는 현 정부가 추진하는 신남방정책의 핵심 협력 대상국이다.

일정 중에 김 여사는 지난 6일 열린 허왕후 기념공원 기공식에 참석했다. 이 공원은 인도 우타르프라데시 주 아요디아 지역에 조성되는데, 1규모로 내년 12월 완공된다. -인도 교류의 상징으로 허왕후가 그 매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언론에서도 이에 대해 관심을 갖고 여러 기사를 송고하면서, 한편으로는 허왕후의 역사적 실존을 당연시하는 경향에 대해서 경계를 표시했다.

허왕후는 역사적 존재인가, 신화적 인물일 뿐인가. 역사적 존재라고 하더라도 정말로 인도에서 온 사람일까. 신화적 인물이라면 그 속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역사적 메시지는 없을까.

허왕후 이야기는 1281년경 편찬된 삼국유사 기이(紀異) 가락국기(駕洛國記)’에 처음 나온다.

수로왕이 왕위에 오른 지 여러 해 지났으나 아직 왕비를 맞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이에 여러 신하들이 예쁜 처녀를 골라 왕후로 들이려고 했다. 수로왕은 이를 거부하고 하늘이 짝을 지어줄 것이니 바다에 가서 배를 기다리도록 했다. 얼마 안 있어 바다의 서남쪽에서 붉은 색의 돛을 단 배가 붉은 기를 매달고 북쪽을 향해 오는 것을 발견했다. 배를 살펴보니 금은보화를 가득 싣고 20여 명이 타고 있었다. 거기에 공주가 있었다. 왕이 공주를 맞이하니 공주가 조용히 왕에게 말했다.

저는 아유타국(阿踰陀國)의 공주로 성은 허()이고, 이름은 황옥(黃玉)이며, 나이는 16살입니다. 부모님께서 가락국의 왕 수로는 하늘이 내려보내서 왕위에 오른 사람인데, 아직 배필을 정하지 못했다며 저를 이곳으로 보내셨습니다.”

이 때가 서기 48년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삼국유사가 편찬되기 1200여 년 전이다.

문제는 공주가 말한 아유타국이 어딘가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일본에 있던 가락국의 분국(分國)으로 보는 견해, 태국의 메남 강가에 있는 옛 도시 아유티야로 추정하는 견해 등이 있었다.

근래 들어 이런 견해들을 일축하고 인도 갠지스 상류인 사라유 강 좌안에 있던 고대 도시국가 아요디아라는 설이 강력히 대두됐다. 이 설이 널리 퍼지고 설득력을 얻으면서 허왕후는 인도 아요디아 출신이라고 믿어지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는 부산외대 이광수 교수가 지난해 1월 펴낸 인도에서 온 허왕후, 그 만들어진 신화라는 책에서 강력한 태클을 걸고 있다. 이 교수는 인도 델리대학교에 유학한 인도학 전문가이다.

삼국유사에는 허왕후가 단지 아유타국에서 건너왔다는 기록밖에 없다. 이후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장유화상이란 허왕후의 오빠가 불교를 한반도에 전래했다는 이야기와 허왕후의 딸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국을 세웠다는 설화가 추가됐다. 그리고 1647년 경상도 관찰사로 부임한 허적(1610~1680)이 자신의 관할지에 있던 허왕후 능에 허왕후가 아들 열을 낳고, 그 중 두 아들에게 허씨 성을 하사했다는 비석을 세웠는데, 이는 자신이 속한 양천 허씨 집안의 역사성을 높이려는 의도였다는 것이다. 이런 배경을 바탕으로 근래 들어 아유타국을 인도 아요디아로 비정하는 견해가 널리 퍼지게 됐다.

이쯤 되면 허왕후를 직접 인도와 연관시키기에는 역사적으로 좀 무리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 여기서 끝인가. 신화 속에 담겨 있는 역사적 진실은 없는가. 허왕후가 역사적 실존 인물인가 아닌가 여부보다 더 중요한 역사적 메시지는 없는가.

이는 우리 민족의 형성 과정과 관련해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이홍규 교수의 한국인의 기원에 따르면 한국인은 대략적으로 남방 해안 루트를 거쳐 먼저 정착한 남방계 사람들의 유전자를 30% 정도 가지고 있고, 중앙아시아와 시베리아 대륙의 북방 루트를 거쳐 나중에 정착한 북방계 사람들의 유전자를 70% 정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허왕후 이야기는 따뜻한 남쪽 나라에서 벼농사를 지으며 북상해 한반도에 정착한 일단의 무리들이 우리의 무의식에 남긴 문화적 유전자를 표현한 것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뉴제주일보  webmaster@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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