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 없고 빽 없는 사람들’이 하는 말
‘힘 없고 빽 없는 사람들’이 하는 말
  • 뉴제주일보
  • 승인 2018.11.25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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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나타나는 현명한 지도자의 치세(治世)에는 공통점이 있다. 주위에 유능(有能)하고 청빈(淸貧)한 관료들이 많이 등장한다. 이를 두고 현명한 지도자가 유능한 관료들을 배출했다고 하고, 한편으론 유능한 관료들이 현명한 지도자를 만들어냈다고도 한다. 전자이건 후자이건 다 동전의 앞뒷면이다.

조선 태종(太宗) 때 치세에 유능하고 청빈한 관료들이 많았다. 조선국은 태종과 그의 유능한 관료들이 기틀을 세운 나라다. 대표적인 인물이 황희(黃喜)와 유관(柳寬)이다. 역사는 황희를 두고 조선 왕조에서 가장 명망있는 재상이었다고 기록한다. 태종 때 병조, 예조, 이조판서를 거쳐 세종 때에는 18년 동안 국정을 통리했다. 특히 태종은 숨질 때까지 황희를 항상 좌우에 둘 정도로 신임이 두터웠다. 유관도 태종 때 대제학을 거쳐 세종 땐 우의정을 역임했다. 고령이 돼 임금에게 사의를 표명했으나 세종이 허락하지 않아 애를 먹기도 했다.

 

이 두 사람에게는 몇가지 공통점이 있다. 여러가지 이유로 파직되거나 유배되는 혹독한 고난을 여러 차례 겪는다.

황희는 두 차례의 파직을 당하고 한 차례의 유배를 당한다. 유관도 파직과 유배를 각각 한 차례씩 겪는다. 모두 불의를 보고 참지 못하는 직언(直言)이 동기였다.

그러나 태종이 이들을 죽이지 않고 재등용한 것은 그들의 순수함과 청렴한 공직생활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높은 벼슬자리에 있으면서도 두 사람의 생활은 찢어지게 가난했다. 세종이 남대문이 열리는 새벽부터 문을 닫을 때까지 남대문 안으로 들어오는 물건은 모두 사서 황희에게 주라는 특명을 내릴 정도였다. 이른바 세종의 새벽 어명이다. 유관은 고위 관료가 돼서도 동대문 밖 울타리도 없는 초가에 살았다. 겨울엔 버선이 없어 맨발에 짚신을 신고 다녔다. 비가 오는 날에는 천장에서 비가 새서 부인과 함께 우산을 받고 앉은 채 밤샘을 했다.

 

그러면서도 이 두 사람은 마음의 여유를 잃지 않았다. 옛 선비들은 관직을 도연명(陶淵明)이 말한 것처럼 잠시 머물다가는 여관으로 여겼다. 벼슬자리에 있는 동안 염치를 높히고(崇廉恥, 숭염치) 절개와 정의를 지키는데 힘썼다(勵節義, 여절의). 벼슬 할 때는 언젠가는 불우해질 것이라는 자세로 업무에 임했다(仕宦常以不遇處之, 사환상이불우처지). 강한 수기(修己) 정신을 가졌다.

황희는 26, 유관은 25세에 문과에 급제해 관직에 나갔다. 그 후 황희와 유관은 여러 최고위 관직을 옮겨다녔지만 평생 가난을 면치 못했다. 그러면서도 자세를 꼿꼿히 하고 올곧은 직언을 마다하지 않았다. 벼슬이 승진해서 새 관직으로 떠날 때는 부임할 때 싣고온 한수레의 책과 남루한 이부자리가 고작이었다. 조선 초 태종 이방원은 이들로부터 온갖 모욕적인 직언을 듣고 화가 나면서도 이를 수용해 나라의 기초를 세웠다.

 

황희와 유관의 이야기를 하는 것은 요즘 우리 정부, 우리 도정에 올곧은 직언을 하는 관료들이 있을까 하는 회의감이 커진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주 최근 경제 상황을 좋게 평가하면서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라는 말처럼 (이 좋은) 기회를 살리자고 했다. 물이 들어오기는커녕 마르고 있는데 노 저으라니. 시중에서는 누군가 대통령에게 잘못된 보고를 하고있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왔다. 원희룡 도지사도 마찬가지. 국제병원 개원 허가 문제 등 풀어야 할 대형 사업 현안이 산적한 데도 눈이 가상화폐로만 쏠리는 것도 누군가 도지사에게 잘못된 보고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대통령이나 도지사나 지도자들이 백성들의 생각과 유리돼 있다면 국가나 지역 사회에 불행이 아닐 수 없다. ‘선거 공신측근이 돼 관직에 나가는 것을 개인의 영달로 생각해선 안 된다.

벼슬살이 머슴살이의 속담이 있다. 황희, 유관 같은 청빈 관료들의 실제에서 유래된 말이다. 이 나라나 이 제주에서 공직 사냥꾼들이 아닌 수기 정신을 지닌 참다운 공직자가 보고 싶다고 한다.

힘 없고 빽 없는 사람들이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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