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 만에 상봉…제주섬 울린 한 맺힌 통곡
70년 만에 상봉…제주섬 울린 한 맺힌 통곡
  • 고경호 기자
  • 승인 2018.11.22 18:5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제주4․3평화재단 22일 평화교육센터 강당서
4․3희생자 발굴 유해 신원 확인 보고회 개최
신원 확인 된 유해 29구 가족 품으로 돌아가

피로 물든 차가운 땅 속에 묻혀있던 제주4․3 희생자들이 70년 만에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다.

유족들은 반세기 넘게 켜켜이 쌓아온 응어리진 한을 풀어내려는 듯 유해함을 끌어안고 통곡했다.

제주4․3평화재단은 22일 제주4․3평화교육센터 강당에서 ‘4․3희생자 발굴 유해 신원 확인 보고회’를 열었다.

이날 보고회는 유해 운구 및 배치, 신원 확인 유해 사연 영상 시청, 신원 확인 결과 브리핑, 유해․유가족 상봉, 헌화 및 분향, 추도사, 유해함 봉안, 합동제례 등의 순으로 거행됐다.

29구의 유해가 모셔진 함이 놓이자 보고회장에는 유족들의 서글픈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무장대와 토벌대를 피해 다니다 연행된 故 강봉혁(1926년생), 봉개국민학교 교사로 재직하다 행방불명된 故 고의학(1920년생), 무장대에 납치된 후 토벌대에 연행됐다가 행방불명된 故 양묘길(1927년생), 토벌대가 집을 불태우자 산으로 피신했다가 행방불명된 故 오국양(1928년생) 등 신원이 확인된 유해들의 사연이 영상을 통해 하나 둘 소개되자 유족들의 통곡은 더욱 커져갔다.

이어진 상봉의 순간에는 유족들이 70년 만에 돌아온 가족의 유해함에 이름표를 붙이며 눈물을 쏟아냈다.

아버지, 어머니, 오빠, 동생 등을 상봉한 유족들은 유해함을 끌어안아 절규하거나, 울다 지쳐 그 자리에 주저앉는 등 모질었던 70년 세월의 한을 힘겹게 풀어놓았다.

이날 아버지를 상봉한 김상호 유족대표는 추도사를 통해 “오늘은 꿈속에서 아버지를 만나 ‘그동안 고생 많으셨다. 이제 편히 쉬시라’고 위로하며 손을 꼭 잡아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오임종 제주4․3희생자유족회 회장 대행도 “신원이 확인됐음에도 한 곳에 묻혀 누가 형이고 누가 동생인지 구분할 수 없는 허씨 형제는 국가 공권력이 만들어낸 비극”이라며 “하루빨리 국회에 계류 중인 4․3 특별법 개정안이 처리되고, 유해 발굴과 신원 조회를 위한 정부 예산을 확보하는 것이 희생자와 유족들을 위한 최상의 도리”라고 강조했다.

70년 만에 행방불명된 가족을 찾은 유족들은 유해함을 4․3평화공원에 봉안하고 합동 제례를 올렸다.

4․3 당시 행방불명됐던 둘째 오빠를 찾은 양유길 할머니(본지 11월22일자 1면 보도)도 오빠의 유해함을 봉안한 후 한동안 발걸음을 떼지 못하다 주저앉아 통곡했다.

양 할머니는 “아직도 차가운 땅 속에 묻혀있는 희생자들이 많다. 하루라도 빨리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다”며 “평화재단과 제주도에 지속적인 유해 발굴을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

고경호 기자  kkh@jejuilbo.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