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적인 타협 정신적인 감내
물질적인 타협 정신적인 감내
  • 뉴제주일보
  • 승인 2018.11.20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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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훈식 (시인. 제주어육성보존위원)

육지 가서 업무를 마치고 숙소로 들어갈 때 지인이 성의를 베푼다고 빵을 사서 주었다. 비싼 선물이 아닌 간식거리라서 부담 없이 받고 먹지만 꼭 한 두 개 정도는 남는다. 여행 가방에 넣고 집에 와서 아내에게 주는데 별로 반기지 않는 눈치였다. 누구랑 흥겹게 먹다가 남은 것을 주느냐는 상황인 거다. 처음 주었을 때는 무심히 먹긴 했다. 두 번이나 남은 빵을 주었더니 여행 선물이 이거냐고 당신이나 많이 먹으라고 짜증을 내었다. 그 후로는 아깝지만 멀쩡한 빵을 공항 쓰레기통에 과감하게 버린다.

생각하기에 따라 실수이긴 하지만 사람이 얼마나 너그러워야 하는지 궁금하다.

중요한 약속을 해 놓고 사세부득으로 파기했더니 그 피해가 고스란히 상대방이 떠안았다. 상대방은 분노를 삼키며 절교를 선언했다. 참가 신청을 해놓고 불참한 나태나, 말실수하여 상대방을 곤욕스럽게 한 경우도 불신을 초래하는 것은 당연지사. 그 동안 쌓은 정리를 생각해서 한 번은 너그러움을 보여주긴 한다. 연인이거나 가족이 아니면 두 번은 없다.

중요한 약속을 어겼으니 상대방에게 무척 미안해서 나중에 몇 곱절의 배상하는 차원으로 성의를 더하고자 노력해도 이미 싸늘해져버린 상대에게서 받은 답장은 신용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라는 불통의 집행유예이다. 상대가 그리했을 경우 나또한 비슷해서 안타까운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자존심이 화해를 막는다.

어떤 일을 맡길 때 돈을 먼저 주고 일을 마칠 때까지 기다려야 옳은지, 일을 다 마친 후에 거기에 합당한 가격을 지불해야 하는지 갈등할 때가 있다. 먼저 지불하면 액수에 따라 겨우 이 정도냐고 실망하거나, 생각보다 후하게 준다고 일의 진행을 단축시켜주고 품질을 고급스럽게 만들어주기도 한다. 의뢰하는 입장에선 어떻게 만들어도 만족할 수준일 거라는 예상으로 후불할 수도 있다. 이런 일은 서로의 관계이므로 계약서를 쓰기 애매한 경우에 발생하는 이성적인 판단에 따른 감정적인 호불호다.

소년 시절, 우리 집에 손님이 찾아왔다가 내가 귀엽다고 사탕을 한 봉지나 준 기억이 있다. 짝꿍에게 사탕 세 개를 주려고 불러냈다. 그때 꼼수로 하나 씩 세 번에 나누어 줄까? 하나 주고 나서 두 개를 더 줄까? 한꺼번에 세 개를 다 주면 기분 좋다고 하나를 나에게 주면 못 이기는 척 받아먹는 것이 더 좋은 계산인지 지금도 궁금하다.

죽고 싶도록 괴롭겠지만 우선 참고 있어라. 죽이고 싶도록 밉겠지만 용서허기 바란다. 잘못을 저지른 입장에선 양심이 요동치기에 나로 인한 고통이나 증오가 얼마나 지랄 같은지 억지를 쓰면서 견딘다. 그렇게 한 번의 실수를 너그러이 이해해 주기 바라는 거고, 여러 번의 잘못도 용서를 구하는 것이 세상이치이건만 저마다 불문율을 정하고 절교를 선언하면 그 동안 내면에 간직했던 추억이나 다정은 벌거숭이로 쫓겨나서 얼어 죽을 지경에 이른다.

무리해서라도 돈 갚고 나면 다시 곤고한 삶을 살아야 하는 채무자로서는 차라리 미움 받는 쪽을 택한 억지를 채무자는 역지사지로 알고 있다. 그래서 무시당한 처사라는 판단으로 고문에 가까운 독촉을 반복한다.

칠십이 넘도록, 본의 아니게 저지른 실수를 어떻게 감당해야 좋은지, 도와준 고마움을 어떻게 보상해야 좋은지 잘 모르면서 여태 살고 있다.

뉴제주일보  webmaster@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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