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 못지않게 친일인물도 다룰 생각”
“독립운동 못지않게 친일인물도 다룰 생각”
  • 변경혜 기자
  • 승인 2018.11.18 19: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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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역사만화 작가 박시백
내년 임정수립 100년 ‘친일’ ‘식민지’ 논쟁 여전히 뜨거워
일제 ‘35년’ 역사만화…세계사 흐름·인물소개·연표 ‘꼼꼼’
지난 13일 서울에서 만난 박시백 작가가 자신의 작품에 대해 말하고 있다. 변경혜 기자 bkh@jejuilbo.net

2019년, 임시정부수립 100년을 앞둬서도 ‘친일’ ‘식민지’ 논쟁은 여전히 우리사회를 가장 뜨겁게 달구고 있다. 일제식민지 35년. 치열하고도 부단한 항일투쟁의 역사와 친일의 역사가 혼재돼 있던 현대사, 세계열강들의 패권다툼 속에서 아시아의 작은 나라 ‘조선’의 민중들이 한 세대를 뛰어넘어 숨 가쁘게 싸워온 ‘그 35년’을 그려내고 있는 박시백 작가를 지난 13일 서울시내 한 찻집에서 만났다.

 

▲일제 강점기를 담다 '35년'

올 초 박시백 작가(54)가 1910~1945년 일제 강점기를 담은 만화역사책 ‘35년’의 7권중 3권을 펴내자 큰 주목을 받았다. 대중들이 쉽게 읽어내려가는 만화라는 장르 때문만은 아니다.
전작 ‘조선왕조실록’(20권, 2013년 출판)은 꼬박 12년간을 하루 12시간씩, 실록·역사서 연구와 이를 만화로 끈질기게 그려낸 고단한 열정이 담겨져 있기에 독자들의 ‘35년’에 대한 기대는 자연스럽다. 더욱이 우리 현대사의 가장 뜨거운 논쟁, 여전히 끝나지 않는 친일 부역에 대해 어떻게 그려내고 있는지 또한 주요 관심사였다.
“역사는 늘 어렵죠. 나머지 4권은 6개월 정도 늦어질 것 같아요. ‘조선왕조실록’은 실록이라는 메인텍스트가 있었지만, ‘35년’은 새로운 사료를 발굴해 내는 게 아니라 기존 역사학자들과 연구가, 사가들이 정리한 것을 바탕으로 팩트를 재검증하고, 팩트라고 판단되는 것들을 정리해 나가는 작업입니다. 시작할 때부터 예상은 했지만 생각만큼 진도가 빨리 나가지 않네요”
‘35년’은 1권 ‘1910~1915 무단통치와 함께 시작된 저항’, 2권 ‘1916~1920  3·1혁명과 대한민국임시정부’, 3권 ‘1921~1925 의열투쟁, 무장투쟁 그리고 대중투쟁’이 올 초 먼저 출판됐다.
4권 ‘1926~1930 단일전선을 위하여’, 5권 ‘1931~1935 만주침공과 새로운 무장투쟁’은 올 연말에, 6권 ‘1936~1940 중일전쟁과 독립전쟁의 준비’, 7권 ‘1941~1945 몰락하는 제국과 해방의 꿈’은 내년 완간을 목표로 하고 있으나 반년 가량 늦어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조선왕조실록은 양은 방대해도 기본텍스트를 바탕으로 작가의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지만, 현대사는 자료는 넘쳐나도 역사가들의 경험과 해석이 다른 부분이 많지요. 축약된 부분도 많고요. ‘35년’도 해석은 배제해 거의 없어서 조선왕조실록 독자들은 실망할 수도 있지만, 대부분 축약입니다. 있는 사실들을 성실히 잘 정리해서 소개하는, ‘그것마저 알려주마’라는 심정으로 그리고 있어요”

▲'35년' 속 인물과 배경

먼저 나온 3권의 ‘35’년은 날짜별로 상세한 연표와 함께 많은 인물들에 대해서도 설명하고 있다. 또 3·1혁명 당시 태극기를 들고 불렀던 노래 ‘광복가’나 신분제가 폐지됐음에도 여전히 차별을 받았던 백정들의 ‘형평(衡平)운동’도 등장한다. 러시아 하바롭스크 아무르 강가에서 총살당하기 직전 조선의 13도를 떠올리며 열세걸음을 걸었던 조선 최초 볼셰비키 김 알렉산드라, 조선 최초로 이혼을 공식선언하며 위자료 청구소송을 제기했던 여성 나혜석 등도 만날 수 있다.

“독립투쟁과정, 그 시대를 살았던 인물들을 지면에 다 넣을 수 없었어요. 예를 들어 A사건과 B사건중 하나를 선택해 간략하게라도 쓰면 그것 자체가 하나를 무시하게 되어버리는 결과를 낳죠. 당시 너나 할 것 없이 치열하게 독립을 위해 싸운 수많은 사람들 중에는 이름조차 기억되지 않는 이들이 많아요. 또 당시 사회를 대변하는 일들도 많았고요. 이 책에서 한번이라도 거론된 인물들, 그들이 그렇게 쉽게 잊혀 질 인물들이 아니라는 걸 알려주는 게 온당하다고 생각 했지요”

‘35년’은 당시 세계 흐름도 알기 쉽고 자세하게 다루고 있다. 도입부가 일본이 조선을 강제병합시켜 총독으로 부임했던 ‘데라우치 마사다케’가 일본에서 어떤 배경을 갖고 성장했는지, 또한 어떤 인물인지, 일본내 기반과 흐름을 담은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당시 우리가 세계사에서 어떤 위치였고 어떻게 역사가 흘러갔는지 큰 그림을 보여주는 방식이다.

‘35년’은 이같은 세계정세 속에서 우리 항일운동세력내의 노선투쟁에 대한 깊은 고민도 담겼다.

“독립운동사에서 노선투쟁은 상당히 치열하게 진행됐죠. 일본은 과거 우리역사를 사색당파로 규정하고 왜곡하는 논리를 처음 만들어 퍼뜨리기도 했고요. 하지만 현재 남북관계나 북미관계를 보면서 한반도 미래에 대해서 정말 다양한 생각들이 표출되는 것 보면 당시를 이해하는데 크게 도움이 될 겁니다. 나라를 빼앗겨 아무것도 없던 시절, ‘어떻게 나라를 찾아올 것인가’ ‘독립이 되면 어떤 나라를 세울 것이냐’는 당시 항일운동 내부에서 백이면 백, 각기 다를 수밖에 없지요. 좌우세력 뿐 아니라 그 내부에서도 상당한 격론들이 있었죠. 물론 과오도 있었고 과오가 없었다면 더욱 좋았겠지만, 당시 역동하는 세계흐름 속에서 식민지 지배 역사를 경험한 나라들에게 나타나는 자연스런 과정이기도 합니다”

 

▲앞으로 펼쳐나갈 이야기

앞으로 출판될 4~7권에 대해 물었다.
“1925~1935년은 굉장히 역동적인 시기죠.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에너지가 한창이던 시기이고, 이후 만주침략을 경험하면서 일본의 강력한 힘이 뚜렷하게 보이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이 시기를 겪으면서 변절자들도 나오게 되지요. 4권부터는 그 치열한 과정의 인물들의 변화에 집중했어요. 친일로 돌아서게 되는 과정과 그 어려웠던 시기, 무엇이 항일운동을 이어가게 했는지 인물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요”

그러면서 작가는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

“식민지 지배기간이 35년, 한 세대를 넘는 시간이죠. 만주침략을 보면서, 일본제국주의의 위력에 ‘아 더 이상은 안되겠구나’ 하는 이광수처럼 변절한 이들도 있는데, 항일운동가들은 어떻게 계속 등장했을까요? 우리 손으로 온전하게 해방됐다면 지금과 다른 역사를 맞고 있겠지만, 식민지 시대가 치욕의 시간이긴 하나 수동의 역사가 아닌 능동의 역사인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지요. 그 시대를 이끌었던 항일독립운동가들이 당연히 역사의 중심으로 평가받아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임진왜란 당시 목숨을 걸고 의병을 일으켰던 의병장 중 공신에 책봉된 이는 단 한명도 없었던 반면 선조는 의주피란 행렬에 함께한 이들을 공신반열에 올렸던 조선의 역사를 작가는 상기시켰다.

“해방사 역시 별반 다르지 않지요. 그래서 마지막 7권에서는 독립운동 못지않게 친일파를 다룰 생각입니다. 대동아공영에서 만주군관학교, 최남선이나 최린, 이광수 등 문화계인물들도 자세히 담아보려 합니다”
‘35년’ 이후 제주4·3을 그려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을 던졌다.
“마음은 늘 그리고 싶지요, 반면 늘 무거운 주제이기도 해요. 욕심은 한국전쟁까지 다루면 좋겠다고 생각은 하지만, 우선 ‘35년’을 마무리하고 생각해봐야죠. 그 다음, 해방이후 한국전쟁까지가 될지, 고려사가 될지는 ‘아직은’입니다”

박시백 작가는

대하역사만화를 개척한 박시백은 1964년 제주시 한림읍 금악리에서 나고 자랐다. 오현고와 고려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어릴적 꿈꾸던 만화가가 되기 위해 1996년 한겨레신문의 시사만화가로 데뷔했다. ‘박시백의 그림세상’으로 입지를 굳혔으며 2001년 신문사를 그만두고 12년간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에 몰두, 2013년 20권을 완간했다. 이 공로를 인정받아 대한민국 만화대상 장관상과 부천만화대상을 수상했다. 이어 일제강점기 총 7권으로 구성된 ‘35년’을 집필하고 있으며 이중 1910~1925년까지 다룬 3권을 올초 출판했다.

변경혜 기자  bkh@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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