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아지트'…학교 앞 문구점
잊혀진 '아지트'…학교 앞 문구점
  • 이민영 기자
  • 승인 2016.02.23 18: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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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마트·온라인몰 등장에 속속 문 닫아
교육청 '준비물 없는 학교' 정책 타격 더해

제주시 노형초등학교 인근에서 11년 동안 문구점을 운영해 오고 있는 김모씨(41)는 문구점 앞을 지나가는 학생들을 바라만 볼 뿐이다.

김씨는 23일“대형 마트가 생기고, 인터넷으로 문구를 쉽고 편리하게 구매할 수 있게 돼서 예전에 비해 장사가 잘 되지 않는다”며 “몇 년 전만해도 문구용품이나 장난감을 사려는 학생들로 북적거렸는데 요즘에는 공책 한 권, 펜 하나 사가는 학생들이 드물다”고 토로했다.

이어 김씨는 “장사가 안 되니 해마다 문을 닫는 문구점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며 “문구점을 계속 운영할 수 있을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이 학교 주변에는 김씨의 가게를 비롯해 문구점 8곳이 있었지만 최근 5년 사이에 하나둘 문을 닫으면서 지금은 2곳만 영업을 하고 있다.

경쟁 문구점이 1곳으로 줄었지만 김씨의 가게에는 이날 학용품 등을 구입하기 위해 찾은 손님이 거의 없다.

어린 시절 우리들에게 다양한 먹거리와 놀 거리를 제공하면서 친구들과 ‘아지트’로 삼았던 학교 앞 문구점을 찾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이처럼 문구점들이 어렵게 된 것은 대형마트와 온라인몰의 등장으로 문구류가 잘 팔리지 않는 데다, 교육청의 ‘준비물 없는 학교’ 정책으로 준비물을 학교에서 일괄 구매해 학생들에게 무상으로 지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씨는 “문구점에 준비물을 사러 오는 학생들은 한 명도 없다”며 “교육청에서 실시하는 ‘준비물 없는 학교’ 정책 시행이 가장 큰 타격이다”라고 하소연했다.

이어 김씨는 “우리 같은 영세 규모의 문구점이 공개 입찰에 나서려고 해도 절차가 복잡할뿐더러 가격 경쟁력을 갖춘 도매상과는 경쟁이 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제주시 노형동 소재 A대형마트 문구 코너에는 신학기를 대비해 많은 학생들과 부모들이 문구용품을 구경하는 모습이 학교 앞 문구점과는 대조된다.

초등학교 4학년 이모양(10)은 “마트에는 다양한 종류의 문구용품이 있고 문구점보다 가격이 저렴해 공책과 펜 등 문구용품을 대부분 마트에서 구입하고 있다”며 “준비물 같은 경우에는 학교에서 무료로 다 나눠주기 때문에 따로 구입하지 않아도 돼 문구점 갈 일이 없다”고 말했다.

방과 후 짜투리 시간에 친구들과 함께 찾던 학교 앞 문구점이 시간의 뒤안길로 사라져가는 것 같아 아쉬움을 남기고 있다.

이민영 기자  emy@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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