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의료기구, 고려부터 군현제 일환 설치·운영 시작
제주 의료기구, 고려부터 군현제 일환 설치·운영 시작
  • 뉴제주일보
  • 승인 2018.11.14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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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제주의 의료기구와 그 운영(1)
‘제주풍토록’ 질병 발생과 귀신 관련 부분.
‘제주풍토록’ 질병 발생과 귀신 관련 부분.

오늘부터 수회에 걸쳐 제주의 의료기구와 그 운영 실태에 대해 얘기하고자 한다.

제주의 의료기구는 제주 지역에 사람이 살기 시작할 때부터 있었다고 하겠으나 기록을 통해 확인되는 것은 고려시대부터이다. 이후 조선시대 들어와서는 제주의 의료기구가 상당수 들어섰던 사실이 드러나거니와 그 운영양상도 구체적으로 엿볼 수 있다. 또한 고려·조선시대 때 제주의 의료기구는 국·공립의 성격을 띠고 있기도 하다.

제주의 의료기구는 그 원형(元型)을 신당(神堂)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신당은 제주 민간신앙의 신앙처로서 성소(聖所)’라 할 수 있는 곳이다. 성소의 존재는 선사시대 이래 생성·변천해 나아갔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제주 민간신앙의 성소가 오늘날과 같이 신당으로 일컬어지게 됐던 한편 이들 각 신당에는 천지왕으로부터 치세업무를 분장 받은 신들이 직능별로 좌정했다는 관념도 생겨났을 것이다. 제주의 신당 중에는 아기의 점지·잉태·출산과 무병성장을 맡아 주관하는 삼승할망이 좌정했다는 곳도 있다. 또한 일뤳당이라 일컬어지는 곳도 적지 않은 편이다. 이들 일뤳당은 신앙민의 어린 자식이 걸린 질병, 주로 피부병을 낫게 해주는 치병신이 좌정했다고 한다. 이들 삼승할망과 치병신이 좌정했다는 신당은 제주 주민이 아기 낳기를 바라거나, 혹은 자신의 가족이 걸린 질병을 낫게 하려고 할 때 찾아가 각종 제의를 올렸던 곳이다. 이때 무당, 곧 제주어로는 심방이 신탁(神託)을 빙의(憑依)해 의료적 활동을 벌였다. 이들 모습은 조선시대 기록에서도 생생히 드러난다.

김정(金淨)은 중종 15(1520) 제주에 유배와 다음해 사사(賜死)됐다. 그가 제주풍토록(濟州風土錄)’당신을 매우 숭배하고, 남자 무당이 몹시 많다.(중략) 질병이 생겨도 약 먹기를 매우 무서워하고 귀신이 노했다고 여겨 죽음에 이르더라도 깨닫지 못한다고 썼던 것이다. 이밖에 김상헌(金尙憲)이 선조 34(1601) 제주에 안무어사(按撫御史)로 와 제주 풍속 등에 대해 썼던 남사록(南槎錄)’, 이건(李健)이 인조 6(1628)~인조 15(1637)에 걸친 제주유배 기간 중의 견문을 적은 제주풍토기(濟州風土記)’에도 제주 사람이 질병 치료에 약을 쓰기보다는 귀신을 의지하는 음사(淫祀)가 성행한다는 기록이 나온다. 그럼에도 민간신앙이 15~17세기에 음사로 일컬어지면서 성행했던 점은 제주뿐만 아니라 전국 어디에서나 흔히 찾아볼 수 있는 보편적 현상이었다.

사실 인류역사에서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질병은 신의 뜻 혹은 악귀에 의해 나쁜 기운이 외부에서 신체 안으로 들어온 것이라 믿고 초자연적인 힘을 빌려 나쁜 기운을 쫓아냄으로써 질병을 치료하려고 했다. 이로써 샤먼(Shaman), 무당, 심방이라고 일컫는 자들이 무의(巫醫)로서 활동할 수 있었다. 곧 동·서양을 막론하고 최초의 의사는 무의였던 것이다. 그런 만큼 제주의 신당, 특히 일뤳당은 의료기구와 같은 성격과 기능도 겸했던 곳으로 봐도 무방할 듯싶다.

‘고려사’ 권57, 지리 2, 탐라현조 제주목(濟州牧) 설치 기록.
‘고려사’ 권57, 지리 2, 탐라현조 제주목(濟州牧) 설치 기록.

한편 제주의 의료기구가 고려시대부터 국가의 지방통치체제로서 마련·실시됐던 군현제의 일환으로 설치·운영되기 시작했다. 그 시기는 고려시대 때 최초로 제주목(濟州牧)이 설치되는 충렬왕 21(1295) 이후라고 보인다.

제주 지역은 고려시대부터 지방행정단위화가 이뤄졌고 그 격이 점차적으로 승격해 나아가 충렬왕 21(1295)에 제주목에 이르렀다. 목은 경()과 도호부(都護府)의 격을 지닌 행정단위와 더불어 계수관(界首官) 지역으로 일컬어졌다. 계수관 지역은 고려시대 때 최상의 독자적·개별적 행정단위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던 곳이다. 여기에는 다른 행정단위와는 달리 사록참군사(司錄參軍事장서기(掌書記의사(醫師문사(文師)란 관원도 더 두었다. 이들은 속관(屬官)으로도 일컫거니와 해당 군현의 행정책임자였던 외관(外官), 곧 수령을 행정적으로 보좌하는 관원이었던 것이다. 이들 계수관의 속관 가운데 의사도 있었다. 의사는 목 이상의 행정단위에 파견되어 질병구제란 직임을 맡았던 관원이었다. 이로써 제주 지역도 목의 격을 지닌 행정단위로 승격하는 충렬왕 21(1295) 이후부터는 의사가 파견됐다고 봐야할 것이다. 이로부터 제주는 의술을 익힌 의료인이 종사하는 의료기구가 들어서기 시작했다고 하겠다.

조선시대 들어와서는 초창기부터 고려의 군현제를 개편·정비해 보다 더 중앙집권적 형태의 지방통치체제를 갖추어 나아갔다. 조선시대의 군현제는 고려의 그것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던 것이다. 이와 때를 같이해 제주의 의료기구도 개편·정비되어 나아갔다. 조선시대 때 제주의 의료기구도 군현제의 일환으로 설치·운영됐던 점은 고려시대와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애초, 제주의 의료기구와 관련해서는 그 실마리를 신당에서 찾더라도 무리가 없다고 하겠다. 현재도 제주의 신당은 제주인이 질병 치료를 바라는 심정으로 곧잘 들러 의례를 치르는 곳이기도 하다. 고려시대 들어와서는 고려 군현제의 운영양상에 비춰볼 때, 제주는 제주목이 설치되면서 비로소 의술을 익힌 의료인, 곧 의사가 종사하는 의료기구도 들어섰다고 보인다. 그럼에도 그 의사 이름은 기록의 누락 탓인지 아직까지 찾아볼 수 없다. 반면 조선시대 제주의 의료기구는 군현제의 운영양상과 함께 여러 사서에 산견되고 있다. 다음에는 이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 청피의 출현 이후 그것의 변천·확장

‘갈화해정탕’부터 ‘청피분’·‘초청피’까지…

청피는 9세기 린다오런(藺道人)이 처음 썼다. 이후 청피의 면모가 변천·확장돼 나아갔다.

중국은 송대부터 청피가 널리 쓰이기 시작했다. 11세기 쑤송(蘇頌)은 중국 청귤(靑橘), 12세기 한옌즈(韓彦直)는 상강(霜降)이후에도 익지 않은 풋귤 껍질을 청피로 썼다. 12세기 우옌쿠이(吳彥夔)전신적용방(傳信適用方)’에서 청피(중략) 손가락만한 너비의 면발크기로 모나면서 납작납작하게 자른다(靑皮切作指面大方片子)”고 했다. 이는 청피사(靑皮絲), 곧 청피를 써는 형태의 규격을 일컫는 것이다.

13세기 양스잉(楊士瀛)인재직지(仁齋直指)’에서 숙취해소의 처방에 쓰는 갈화해정탕(葛花解酲湯)에 연화청피(蓮花靑皮)를 사용한다. 리가오(李杲)도 같은 처방에 난실비장(蘭室秘藏)’에서 사화청피(四花靑皮), ‘비위론(脾胃論)’에서는 연화청피를 쓴다. 연화청피는 그 모양이 4개의 파란 연꽃꽃받침조각처럼 보여서 명명된 것 같다.

한편 우리나라는 15세기 와 향약집성방에 제주청귤의 껍질을 쓰는 청피가 나온다.

중국의 왕시(王璽)는 청피의 최상품을 사화청피라 했다. 이는 청량한 냄새를 지니면서 맛은 쓰고 맵다. 껍질은 짙은 녹색에 내면은 희고 기름기가 많이 흐르는 것이 좋다(氣淸香, 味苦辛, 以皮黑綠色, 內面白色, 油性足者爲佳)”고도 한다. 16세기 리스쩐(李時珍)청귤피는 귤이 아직 노랗게 익지 않고 푸른색을 띤 것(靑橘皮乃橘之未黃而靑色者)”이라 했다. 이로써 중국은 풋귤 껍질이 청피로 더욱 고착화되기에 이른다.

17세기 리중쯔(李中梓)본초통현(本草通玄)’에서 귤의 작은 것은 청피다(橘之小者爲靑皮)”라 했다. 이후 크기가 작은 풋귤도 모두 청피라 하게 된다.

18세기 우리나라에서도 청귤의 미숙과, 곧 크기가 작은 풋귤도 청피라 했다. 이는 정운경의 제주귤보에 나온다. 그럼에도 중국과는 달리 청피는 반드시 청귤만을 썼다.

19세기 자오치꽝(趙其光)본초구원(本草求原)’에서 일반 감귤의 미숙과 껍질을 청감피(靑柑皮)라고도 명명했다. 이는 귤과 감의 분류가 잘 되지 않아 그런 것 같다.

20세기 중약대사전에는 아주 작은 풋귤의 청피자(靑皮子), 개청피(個靑皮)가 나온다. 최근 소청감(小靑柑)도 광둥성(廣東省) 장먼시(江門市) 신후이(新會)에서 소개됐다. 이는 7~8월에 딴 차지감(茶枝柑)을 일컫거니와, 그 껍질도 사화청피가 된다. 8~10월에도 익지 않은 차지감의 껍질을 감청피(柑靑皮)라 한다. 이들 모두가 청피이다.

현재는 청피 활용의 상품도 나왔다. 예를 들면 가루로 만든 청피분(靑皮粉), 식초 가공의 초청피(醋靑皮), 청피를 오래 묵힌 청진피(靑陳皮) 등이다. 앞으로 제주에서도 솎아낸 풋귤을 한약재와 여러 제품으로 잘 활용되길 기대한다. 더 나아가 제주에 자생하는 청귤의 껍질이 최고의 청피가 될 수도 있으니, 많은 연구가 뒤따라야 하겠다.

‘난실비장’, 갈화해정탕 제조 약재 부분.
‘난실비장’, 갈화해정탕 제조 약재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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