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가 외면하는 ‘제주’
제주가 외면하는 ‘제주’
  • 정흥남 논설실장
  • 승인 2018.11.08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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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정말 쉬운 문제인데 어려움을 헤쳐나 갈 방법을 잊은 채 허둥거리는 경우가 왕왕 나온다. 중국 송나라 때 학자 사마광이 어렸을 때 일로, 너무 잘 알려진 일화다. 물이 담긴 큰 항아리에 아이가 빠져 익사할 위기에 놓였다. 사람들은 어찌할 바를 몰라 당황했다. 이 때 사마광이 돌을 던져 항아리를 깨어 아이를 살려냈다. 어려운 문제에 봉착했을 때 문제를 풀 수 있는 방법은 결코 먼데 있는 게 아니라는 의미로, 여기서 나온 사자성어가 격옹구아(擊甕救兒)다.

요즘 대한민국에서 속된 표현으로 ‘핫한 곳’을 꼽는다면 그 중 한곳이 순천만습지다. 순천만습지는 갯벌과 갈대 군락지가 광활하게 조성돼 다양한 멸종위기 동식물이 서식하는 생태계 보고(寶庫)다. 20년 전 이곳은 딴판이었다. 인근지역에서 각종 오수가 유입됐고, 쓰레기도 넘쳐났다. 악취가 진동하는 버려진 공간이었다. 그러던 중 1990년대 초 이 일대 갯벌을 파내 모래를 채취하려는 시도가 이뤄졌다. 이에 대응해 순천만을 지키자는 움직임이 일었다. 골재채취사업은 취소됐고, 이를 계기로 반전이 일어난다. 일대 축산농장은 모두 철거됐고, 이곳을 찾는 철새들을 위해 300개 가까운 인근 농경지의 전봇대 또한 모두 뽑혔다. 그 결과 순천만습지는 국내 연안습지 최초로 람사르협약에 등록됐다.

순천시 전역이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됐다. 요즘 순천만습지엔 평일에도 전국에서 몰려든 관광객들로 발 디딜 틈 없다. 주말에는 하루 3만 명 넘는 탐방객이 몰리면서 입구부터 장사진이다. 인구 30만 명도 안 되는 순천시를 찾는 관광객 증가로 이어졌다. 순천시 방문객 수는 지난해에만 순천시 인구의 30배인 907만 명에 이른다. 순천만습지로 발생한 경제적 이익은 향후 100년간 2조원을 넘어설 전망이다. 개발을 최대한 억제하고 자연을 보전해 온 선택의 결과다.

제주에도 순천만습지에 버금가는 곳이 한 둘이 아니다. 물론 순천만습지에 면적으로 견줄 바는 아니지만, 빼어난 경관과 보전가치 뿐만 아니라 생태관광 가능성을 충분히 갖춘 곳들이다. 람사르 습지로 지정된 곳만 5곳에 이른다. 물영아리습지를 비롯해 물장오리습지, 1100고지습지, 동백동산습지, 숨은물뱅듸 등이 그곳이다.

람사르 습지는 아니지만 순천만습지와 흡사한 하도철새도래지(약 0.77㎢)도 있다. 이곳은 바다와 인접하고 수심이 1m 정도에 그쳐 영양분이 풍부한 먹잇감과 습지식물이 많아 철새들이 월동하기엔 최적의 공간이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고 세계적으로 1000여 마리 정도만 남아있다는 저어새를 비롯해 역시 천연기념물인 고니, 매, 황조롱이 등과 환경부 멸종위기야생동물인 물수리 등이 서식한다. 그렇지만 이곳은 조류인플루엔자 소식만 들리면 빗장이 잠긴다. 아직도 주변엔 축산시설이 영업 중이다.

제주는 세계자연유산, 생물권보전지역, 세계지질공원 등재 등 이른바 유네스코 3관왕이라는 영예를 안았지만, 제주의 생태관광은 수십 년째 성산일출봉과 천지연폭포, 한라산을 우려먹기에 여념이 없다. 결국 한계가 나올 수밖에 없고 이는 새로운 관광자원 개발이라는 미명아래 난개발을 불렀다. 제주 곳곳이 파헤쳐졌다. 그 결과 연간 제주 주민 수 보다 20배 이상 많은 1500만 명이 찾아오지만 남는 게 별로 없다. 재벌기업의 면세점을 중심으로 하는 소수의 대자본 이 재미를 독차지한다.

대신 쓰레기와 하수가 전역에 넘쳐난다. 관광혐오증이 안 나오는 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지방정부인 제주도가 이를 모를 리 없다. 그런데 여전히 질적 성장 타령이다. 전라남도 해안의 어느 작은 도시에선 일대의 모든 전봇대를 뽑아내면서까지 지속가능한 발전의 방법을 찾아 사람과 자연이 공존하는 관광의 지평을 넓혀가지만, 세계적 관광도시라고 자부하는 제주는 되레 하루가 멀다고 전봇대가 우후죽순처럼 솟아나고 그 뒤에 제주다움으로 상징되는 자연·생태환경이 가려진다.

문제를 풀 답이 눈앞에 있는데도 딴 데 만 본다. 답답하다.

정흥남 논설실장  jhn@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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