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가 낳은 ‘프리마돈나’…‘오페라 제주’ 꿈꾼다
제주가 낳은 ‘프리마돈나’…‘오페라 제주’ 꿈꾼다
  • 변경혜 기자
  • 승인 2018.11.0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6] 소프라노 강혜명
제주 출신 소프라노 강혜명이 주연을 맡은 오페라 공연 무대에서 열연을 펼치고 있다.
제주 출신 소프라노 강혜명이 주연을 맡은 오페라 공연 무대에서 열연을 펼치고 있다.

오페라의 불모지 제주에서 태어나 오페라의 본고장, 유럽에서 인정받아 세계무대를 감동시키고 있는 소프라노 강혜명씨(41)를 지난 1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사람의 마음을 노래로 흔들어버리는 그녀는, 제주4·3과 맞닿은 여순(여수순천항쟁)의 아픈 현대사를 성공적으로 그려낸 창작오페라 ‘1948년, 침묵’의 주연배우이자 이번 무대를 만들어낸 주역으로 예술의 영역을, 역사의 영역으로 확장시켜 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제주4·3여순항쟁공통의아픔

지난달 20, 21일 이틀 간 여수의 예울마루 대극장의 객석 곳곳은 소리없는 흐느낌이 이어졌다. 오랜 시간 여순반란으로 불려온 그 참상을 목도(目睹)해야 했던 유족들은 70년만에 처음 오페라로 만들어진 ‘1948년 침묵을 지켜보며 그렇게 눈물을 쏟아냈다.

주인공은 유럽의 프리마돈나강혜명. 4·3유족회 홍보대사인 그는 제주4·3을 알기에 촉박한 시간과 부족한 예산에도 무대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책임감, 일념이 있었던 것 같아요. 더욱이 4·3과 여순은 우리 근현대사에서 아픔을 함께 나눈 형제잖아요라고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4·3이 그러했듯, 침묵을 강요당하고 이념갈등에 멍든 채 살아온 심정을 그 역시 느끼고 있었다. 원작을 오페라에 맞게 각색하고 주요 출연진들을 직접 섭외하고 턱없이 부족한 예산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발품을 팔아야 했던 것도 그의 몫이었다. 주변에선 이번 창작오페라 공연을 기적이라고 했다. 부족한 예산도 큰 문제였지만 역사적 평가를 놓고 뜨거웠던 이념논쟁은 작품 각색으로 시간에 쫒기는 그를 더욱 다그쳤다.

더욱이 지난 5월 이탈리아 3대 오페라극장으로 불리는 나폴리 산카를로 극장의 베르디 라 트라비아타의 주인공에 낙점 받은 그였다. 오페라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한 이탈리아 극장이 주역을 다른 나라, 그것도 아시아인에게 맡기는 건 처음이었고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소프라노 니노 마차이제 등과 함께 캐스팅 된 것이었기에 부담이 만만찮았다. 그의 간절함이 이뤄진 것일까. 1000석 객석은 연이틀 가득했다.

공연이 끝나고, 한 노부부가 오페라에 몇 명이 출연했냐고 묻는 거예요. 106명이라고 했더니, 얼마 뒤에 검은 비닐봉지를 무겁게 들고 오셨어요. 음료 106병을 사들고 오신거죠. 공연장 인근엔 상점도 없었거든요. ‘우리 얘기 대신 해줘서 정말 고맙다며 눈물을 흘리셨는데, 그때 , 잘 해냈구나스스로를 위로했어요. ‘항쟁이냐’, ‘반란이냐는 역사적 평가는 학자들의 몫이고, 그때 그곳에 있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저에겐 더 중요했거든요.”

세계무대에서 프리마돈나로 이름을 날리는 그는 큰 무대 못지 않았어요. 정말 감동이었어요라며 잠시 그날의 기억이 생각난 듯 눈가를 적셨다. 강혜명 역시 4·3유족이다. 동시에 한국전쟁 참전용사의 후손이기도 하다.

“2015년 처음 4·3무대를 밟은 뒤에 제가 4·3유족이란 사실을 뒤늦게 알았어요. 할머니의 아버지와 오빠가 그때 돌아가셨대요. 한국전쟁 때 할아버지가 참전했다 돌아가셔서 보훈가족으로만 알고 지내왔거든요. 저희 가족사와 비슷한 분들이 얼마나 많겠어요. 어쩌면 저처럼 모르고 지낸 분들이 더 많을 수도 있겠죠.”

성악가의꿈을이루다

노래하는 즐거움으로 유년시절을 보낸 그였다. 으레 노래 잘하는 아이로 불리며 칭찬세례에 만족하던 강혜명은 고등학교 1학년 때 우연히 텔레비전에서 본 소프라노 조수미에 흠뻑 빠져들었다. “드라마 같았죠. 사람의 소리가 그렇게 매혹적일 수 있는지, 더구나 무대를 압도하는 당당함에 넋 놓고 봤던 기억이 생생해요.”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됐던 공연을 본 강혜명은 본격적으로 성악가의 꿈을 키워나갔다. 예술중·고교에서 일찍 노래를 시작한 또래에 비하면, 늦어도 한참 늦은 셈이다. 덕분에 원하는 대학에서는 모두 고배를 마셨다고 했다.

어려서부터 잘한다는 칭찬에 노래만큼은 자신 있었는데, 보기좋게 실패의 첫 경험을 한 거죠. 하지만, 그때 만해도 제주섬을 탈출하고 싶다는 생각이 먼저였거든요.”

여고생 강혜명에게도 바다를 건너고 싶은 제주섬사람의 유전자가 꿈틀댔던 것.

성악을 늦게 시작했지만 좋은 점도 있어요. 노래라는 게 타고난 소리통을 어떻게 쓰느냐가 중요한데, 일찍 시작해서 몸에 습관처럼 배어버리는 전례를 밟지 않아도 된다는 거죠. ‘가 정해진 건 아니에요.”

바다를 건넌 강혜명의 도전은 계속됐다. 추계예대를 졸업한 그는 이탈리아로 건너가 산타체칠리아 국립음악원에서 공부했다.

또 일본 후지와라 오페라단원으로 본격적인 오페라무대에 선 그는 지휘자 정명훈의 일본 NHK방송 신년음악회에서 이름을 알렸고 프랑스 최고 오페라 가수 배출기관으로 알려진 CNIPAL 마르세이유학교에서 국비장학생으로 공부를 이어간다. 프랑스 오페라극장 협회(CFPL) 오디션에서 최종 우승과 프랑스 마르몽드 국제성악 콩쿨 대상 수상, 2016년 플라시도 도밍고 내한공연 특별 출연 등 그의 이력은 화려하다.

그가 이처럼 오페라 무대에서 주목받는 이유중 인물분석이라는 평가도 이어진다. 유럽 240여 개 도시로 생중계될 정도로 알려진 이탈리아 타오르미나 페스티벌 10주년 기념공연에서 나비부인 주역을 맡았을 때도 악보와 캐릭터 연구에 집중했다. 작곡가가 꼭꼭 숨겨둔 악보의 보물을 찾아내 강혜명의 색깔을 입혀 관객에게 전달하는 그의 음악공식도 만들었다.

제주,아시아의오페라중심지로

앞으로 계획을 묻자 그는 음악활동을 하며 경험했던 많은 이야기를 꺼냈다. “이번 여순을 담은 오페라 제작에 참여하면서 마음에 늘 빚처럼 있던 숙제를 조금 푼 느낌이에요. 여순은 이제 70주년을 기념하는 대표적인 문화콘텐츠를 갖게 됐고 전국투어 이야기도 나올만큼 콘텐츠로서의 가치도 인정받고 있어요. 그렇다면 이제 4·3이죠. 제주4·3도 오페라로 풀어내고 싶어요.”

현기영 작가와 만나 소설 순이삼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일화도 전했다. 강혜명은 그러면서 욕심이지만이라는 단서를 달고 한 가지를 덧붙였다. “제주가 가진 환경과 지리적 자산을 한껏 발휘해 중국과 일본을 잇는 아시아의 오페라 중심지로, 세계적 오페라 페스티벌도 만들어 보고 싶은 꿈이 있어요. 세계적 관광지 명성에 맞는 문화콘텐츠를 만들어나가는 것도 음악활동하는 제주인의 소임이라고 생각해요.”

일본에서 후지와라 오페라단원으로 목소리를 알린 뒤, 유럽에서 10년 넘게 활동하며 이름을 알렸고 중국 상하이대학교 교수로 음악교육과 무대생활을 이어가는 그는 욕심을 키워야 뜻이 이뤄지더라며 꿈을 향해 계속 도전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소프라노 강혜명은?

소프라노 강혜명은 제주여고와 추계예술대학교를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 에꼴노르말 음악원을 최우수로 졸업했다. 프랑스 오페라극장협회(CFPL) 오디션 최종 우승 및 프랑스 마르몽드 국제성악콩쿨 대상을 수상했다. 이탈리아 산카를로 오페라 극장에서 아시아인으로선 처음으로 라트라비아타 비올레타역으로 공연했으며 프리마돈나로 전세계에서 활약하고 있다. 현재 중국 국립 상하이 대학교 음악원 초빙교수이자 제주4·3홍보대사, 이탈리아 ‘DM artist’ 소속 아티스트로 활동 중이다.

변경혜 기자 bkh@jejuilbo.net

 

변경혜 기자  bkh@jejuilbo.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