깅이죽
깅이죽
  • 뉴제주일보
  • 승인 2018.11.06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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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미경 수필가 / 제주여류수필문학회 회장

보말국은 제주토속 음식의 별미다. 요즘 시장에 가면 보말이 소고기보다 비싸다. 보말(고동)을 보면 추억이 날개를 편다.

바닷가는 온통 우리의 놀이터였다. 썰물이 되면 너나없이 소쿠리를 들고 바닷가로 내달린다. 갯가는 왁자지껄 사람들로 붐빈다. 어머니도 어김없이 갯가에서 보말과 깅이(바닷게)를 잡고 온다. 물때에 맞추어 갯가에 깔린 돌덩이를 뒤집으면 보말과 먹음직스런 먹보말(바위고동)은 물론이고 감빛 깅이(바닷게)를 주전자 가득 잡고 온다.

보말은 큰솥에 삶아 모여 앉아 까먹고, 깅이는 깅이죽과 범벅, 깅이조림을 만들어 먹었다. 엊그제는 고향에 사는 친구와 함께 바닷가로 향했다. 세월이 흘러도 확 트인 고향 바다는 나를 반기는지 해풍이 옷자락을 흔든다.

물때에 맞춰 해안도로 가까운 거리를 정하여 차를 세웠다.

물새가 우짖는 바다, 바라만 보고 있어도 시원하다. 현무암 틈에 돋은 연초록 해초가 싱싱하다. 물결에 곱게 씻긴 해초더미를 헤치고 돌멩이를 뒤적였더니 보라성게도 있다. 자연의 주는 풍요로움에 흠뻑 빠져 있는데 귓등으로 억양의 심상치 않은 목소리가 우리를 향해 쏟아진다. 순간 잘못을 저지른 아이처럼 두렵기도 하고 어안이 벙벙하다.

거기서 뭐 햄수과? 빨리 나옵써!”

알고 보니 그 동네 해녀였다. 너무도 황당한 마음에 한마디 건넸다.

바다가 아주머니 바다예요?”

한참을 실랑이 끝에 겨우 마른 돌 틈에 사는 깅이만 잡고 나왔다. 집으로 돌아오는데도 기분이 나빴다.

언제부터인가 제주 바다는 온통 해녀들의 전유물이 되어버렸다. 우리 모두의 공동체인 천연자원인 바다가 왜 이지경이 되었을까? 누구나 다닐 수 있는 공간을 해녀들에게 송두리째 빼앗긴 사실이 생각할수록 씁쓸하다.

깅이를 빻아서 별미를 만들면 기분이 나아질까?

예전에 어머니가 하던 방식으로 도전해본다. 깅이를 절구통에 넣어 빻아다진 후, 껍데기는 버리고 즙에 쌀을 넣고 끓였다. 죽이 눌어붙지 않게 계속 저었다. 어느 정도 찰진 죽이 다 된 것 같아 한 술 먹어보니 어머니가 해주신 그 맛보다 못하다. 감칠맛이 떨어진다.

먹을게 넘치다보니 입맛이 예전 같지 않아서일까, 깅이죽은 영양이 풍부하여 입맛이 없을 때 요긴하게 속을 채우는 보양식이었다. 유년기엔 유난히 입이 짧아 편식을 하는 나에게 어머니는 깅이를 잡아다 죽을 끓여 먹였다. 깅이죽은 칼슘과 키토산이 풍부하여 자주 먹으면 관절에 좋다고 한다. 딸의 다리 아프지 말라고 자주 바닷가를 드나드셨나 보다.

지금도 깅이죽을 좋아하는 이유는 암갈색 깅이죽이 바다 냄새처럼 구수해서 토속적인 맛을 느낄 수 있어서이다.

죽을 전문으로 파는 음식점에 가면 깅이죽이 있다. 하지만 어머니가 해주시던 손맛은 나의 식성마저 지배했는지, 그때의 맛은 어디에도 찾을 수 없다. 고향바다에 대한 향수마저도 멀어져간다. 그 시절, 들깨로 짠 참기름이 진동하는 깅이죽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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