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쓰던 섬소년, ‘전자정부시대’·‘로봇산업’ 이끌다
편지 쓰던 섬소년, ‘전자정부시대’·‘로봇산업’ 이끌다
  • 변경혜 기자
  • 승인 2018.11.05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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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정경원 전 한국로봇산업진흥원장
지난달 29일 서울 여의도에서 만난 정경원 전 한국로봇산업진흥원장이 로봇산업의 미래에 대해 말하고 있다. 변경혜 기자 bkh@jejuilbo.net
지난달 29일 서울 여의도에서 만난 정경원 전 한국로봇산업진흥원장이 로봇산업의 미래에 대해 말하고 있다. 변경혜 기자 bkh@jejuilbo.net

 

우체국의 편리해진 택배조회서비스에서부터 집에서도 각종 민원서류를 발급받는 편리해진 전자정부시대, 그리고 정부의 로봇산업 진흥을 위한 기반조성까지 역할을 한 인물을 꼽으라면 단연 정경원 전 한국로봇산업진흥원 원장(61)이다. 36년간 쉼없이 달려온 정부 정보통신분야의 공직생활을 마치고 인생 2막을 위해 첫 휴지기를 갖고 있는 정 전 원장을 지난달 29일 서울 여의도에서 만났다.

 

“35년 4개월의 공직생활을 마무리하고 처음으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셈이죠. 서울과 제주를 오가면서 고향 모슬포의 올레 10코스도 마음껏 걸어보고, 올해가 4·3 70주년이라고 하는데 인근의 백조일손지묘나 알뜨르비행장, 진지동굴들 등도 찬찬히 둘러보고 있어요.”
정경원 전 한국로봇산업진흥원장(61)이 여유롭게 근황을 이야기했다. 1979년 행정고시로 공직생활을 시작해 옛 정보통신부 등 중앙부처의 공무원으로, 2곳의 공공기관장을 역임하며 36년간 쉼 없이 달려온 그다.

■ 우편정보화시대를 열다
그의 이력은 손편지와 깊은 인연이 있다. “뼛속까지 모슬포 촌놈입니다. 사람마다 여러 취미가 있지만 손으로 꾹꾹 눌러쓴 손편지에는 사람냄새 나는 진한 감동이 있지요. 촌놈이라 멋진 말보다는, 마음을 전해주는 편지쓰기가 좋았고 제 최고의 취미였죠.”
학창시절 늘 그의 가방엔 편지지와 편지봉투, 우표가 필수품이었고 대학을 졸업할 즈음 그의 자취방엔 라면상자 4개 분량의 편지가 쌓였을 정도다. 공직생활 대부분이 우정사업분야였던 건 결코 우연만은 아니라고 그는 말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업무는 편지를 비롯해 우편물량을 줄어들게 하는 정보통신분
야였다. 지금은 당연해진 ‘집집마다 초고속 인터넷망 구축’ 같은 정보화계획을 총망라하는 국가사회 정보화촉진계획수립에 3차례나 참여, 전자정부의 기틀 마련 등에 상당한 역할을 하게 된다. 손편지를 즐기던 그가 열심히 일하자, 2002년 연간 55억통에 달하던 우리나라 우편물은 감소세로 접어들게 된다.
“정보화업무를 담당하다 2007년에 우정사업본부장에 취임했는데, 우편물량으로만 보면 제
가 매출 감소의 주범 중 한 명이죠.”
그가 우편물에 IT기술을 접목시켜 택배물품이 어디에 있는지 인터넷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이른 바 ‘종적조회’ 등 우편정보화시대를 열어나 가는 데 한 몫을 하게 된 배경이기도 하다.
“제가 촌놈이다 보니, 지방에서 택배나 소포를 보낸 뒤 답답함을 잘 알았죠. 우정사업분야를 책임져야 하는 역할이면서 동시에 소비자이기도 하니까요.”
정보통신(IT)에 기반한 우정프로세스 혁신이나 고객감동경영, 우정사업 흑자경영, 대한민국고객만족경영대상, 경영품질대상, 최고경영자상 등 그가 만들어낸 성과는 만만찮다.

■ 정부와 산업간의 가교 역할
정 전 원장은 이후 정보신산업진흥원장을 거쳐 한국로봇산업진흥원장에 취임하면서 정부와 산업 간의 가교에도 상당한 역할을 했다. 최근 대형건축물 외벽의 청소로봇 개발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기업에 도움을 준 것도 바로 로봇진흥원장 당시 그였다.
“현수막 등을 제작하는 정말 작은 업체였죠. 심지어 업체 대표는 신용불량자였어요. 아파트 외벽에 로봇을 이용해 벽화를 그리는 아이디어로 지금처럼 성장했는데, 창업공간을 지원하고 국내·외 마케팅 지원에 힘을 썼어요. 내년엔 창업공간을 졸업한다고 하니, 정말 뿌듯합니다”
해당 업체는 건축물 로봇 페인팅 시스템 및 서비스로 국내·외에서 두각을 나타내면서 건설업계는 물론 로봇과 정보기술(IT) 등 테크 업계에 서 상당한 주목을 받으며 연 매출액 30억원, 25명이 일하는, 작지만 강한 중소기업으로 성장했다. 창립 7주년을 맞은 지난해 정 전 원장을 초대해 ‘기사회생’의 발판을 마련해줬다며 감사의 뜻을 전하기도 했다.

■ 로봇산업, 제주의 미래
정 전 원장에게 로봇산업의 전망에 대해 질문하자 로봇진흥원장 시절 주목했던 재일동포 3세, 손정의(孫正義) 소프트뱅크 창업자 이야기를 꺼냈다.
“2014년에 손 회장은 사람의 말과 감정에 반응하는 감성로봇 페퍼를 세상에 알렸지요. 일부에선 로봇이, 4차산업혁명이 사람의 일자리를 빼앗는다고 하지만 이미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이고 그렇다면 ‘로봇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사람에게 어떻게 유익하게 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로봇산업을 발전시키는 것이 인간의 숙제라고 봅니다.”
정 전 원장은 로봇진흥원장 시절 고령으로 요양시설에 활용했던 하지재활로봇 이야기도 들려줬다.
“제 어머니가 뇌졸중으로 서귀포의 한 재활병원에 계셨는데, 병상에만 누워 있어서 ‘스스로 움직여 걸어다니는 것’이 소원이셨지요. 기업에서 하지재활로봇을 개발해 시범사업을 했었는데, 어머니도 이용해봤지요. 어머니가 돌아가신 그 재활병원에서는 여전히 그걸 쓰고 있습니다.”
정 전 원장이 제주에 보급하려다 실패했던 사례도 들려줬다. 감귤선과장에 로봇을 투입해 차근차근 감귤상자를 쌓거나 옮기고, 상차도 할수 있는 로봇이었다.
“2년간 공들여서 거의 마지막 단계까지 왔는데, 아쉽게도 빛을 보지 못했어요. 제주에 뭔가를 하고 싶었는데, 그게 아직도 많이 아쉽지요.”

고향 얘기가 나오자 그의 목소리에 한층 힘이 실렸다.
“제주는 육지부에 비해 전기차나 해상풍력, 신재생에너지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습니
다. 사양산업으로 접어들었던 우편업무에 IT를 접목시켰듯, 농업이나 양식장, 관광에 로봇을 접목시킬 수 있죠. 제주에서 모든 걸 생산하고 공급하는 방안만이 아니라 활용측면에서 충분히 고민한다면 길이 있다고 봅니다. 공급뿐 아니라 활용측면도 제주의 주력산업이 될 수 있습니다.”
그에게 다시 휴식 기간이 길어지는 것 아니냐고 묻자 “제주에서 나고 자라 늘 자랑스러웠다”며 “올레길을 그냥 걷기만 하는게 아니라, 고향을 위해 뭘 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라고 귀뜸했다.

정경원 전 한국로봇산업진흥원장은?
서귀포시 대정읍 하모리에서 태어나 제주제일고, 한양대 법학과를 졸업했다. 국방대학원 안보과정, 숭실대 대학원 IT정책경영학과를 수료했다. 행정고시(23회)로 공직생활을 시작, 정보통신부 기획예산담당관과 정보기반심의관, 우정사업본부장, 정보통신산업진흥원장, 한국로봇산업진흥원장 등을 역임했으며 관료출신 정보통으로 평가받는다.

변경혜 기자  bkh@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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