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왕조 거치며 다듬어진 완벽함
여러 왕조 거치며 다듬어진 완벽함
  • 뉴제주일보
  • 승인 2018.11.02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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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아시아 문명의 원천 신들의 나라 인도를 걷다
(58)삶의 원초적 모습을 지닌 남인도를 찾아서(17)-아루나찰레스와라 사원
남인도의 도시 티루반나말라이의 아루나찰라 산에 자리 잡은 거대한 힌두 사원 ‘아루나찰레스와라’. 이 사원은 여러 왕조를 거쳐 완성됐으며 높이 65m에 이르는 ‘왕의 탑’이 유명하다.
남인도의 도시 티루반나말라이의 아루나찰라 산에 자리 잡은 거대한 힌두 사원 ‘아루나찰레스와라’. 이 사원은 여러 왕조를 거쳐 완성됐으며 높이 65m에 이르는 ‘왕의 탑’이 유명하다.

푸념 같지만 이번 여행은 매일 성지 순례를 하는 기분입니다. 물론 애초 여행 계획 자체를 옛 왕궁이나 사원 방문 일정으로 짰지만, 이렇게 많은 사원을 찾다 보니 마치 힌두 성지 순례를 하는 것 같습니다.

오늘도 어김없이 출발은 오전 8시. 이번 일정은 아루나찰라 산에 자리 잡은 아루나찰레스와라(Arunachaleswara) 사원입니다.

달리는 차창 밖 풍경은 이번 남인도 여행 첫 코스였던 함피의 지형과 비슷합니다. 거대한 돌무더기 산들이 곳곳에 있고 그 위에는 어김없이 왕궁 혹은 사원으로 보이는 옛 유적들이 쓸쓸히 서 있습니다.

사원에서 만난 성자. 깊은 사색에 빠져 있다.
사원에서 만난 성자. 깊은 사색에 빠져 있다.

차로 1시간30분을 달려 아루나찰라 산을 중심으로 형성된 도시 티루반나말라이(Tiruvannamalai)에 도착했습니다.

이 도시에 거대한 힌두 사원 아루나찰레스와라가 있습니다. 이 사원은 7개의 프라카라(Prakara)와 9개의 거대한 탑을 자랑하는데 계획 단계부터 완벽하게 지어졌다고 합니다.

동쪽 탑은 15세기 크리슈나데바라야(Krishnadevaraya) 왕이 세웠는데 높이가 65m에 달해 인도에서 두 번째로 큰 탑이라고 합니다. 탑 이름은 ‘왕의 탑’입니다.

그 옛날 이런 거대한 사원을 지으려면 얼마나 많은 인력과 시간이 걸렸을까 하고 일행들과 이야기하는데 옆에서 듣던 한 분이 “이렇게 거대한 사원을 수도 없이 지었으니 왕조가 망한 게 아니냐”하고 농담을 하기도 합니다.

듣고 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인도 여행을 올 때마다 종교에 의해 흥망성쇠를 겪었다는 기록들을 많이 접했기 때문입니다.

이 사원은 사실 여러 왕조에 의해 건축됐다고 합니다. 가이드의 설명에 따르면 가장 오래된 2개의 프라카라는 판디아 왕조에 의해 조성됐고, 나머지 프라카라는 판디아 왕조와 촐라 왕조가 지었습니다. 13세기에는 호이살라 왕조가 몇 개의 작은 사나다(Sannadhi) 등을 더 지었다고 합니다.

사원 전경을 사진에 담으려면 아루나찰라 산을 올라야 한다는데 시간이 여의치 않아 입맛만 다시고 말았습니다. 이 산은 시바 신의 화현(化現)으로 여겨지는 성소라고 합니다.

시간을 충분히 준다고 했지만, 사원이 워낙 넓다 보니 만족할 만큼 둘러보지 못했는데 벌써 다른 곳으로 가야 한다고 합니다. 사원 내 건물 입구마다 신도들이 줄지어 있어 안을 제대로 볼 수 없습니다. 겨우 한 곳만 기웃거리고 얼른 일행을 찾아 나섰습니다. 대충 둘러보고 온 것인지, 내가 늦은 것인지 일행들은 벌써 다들 모여 있습니다.

다시 2시간을 차로 달려 칸치푸람이란 도시에 도착했습니다. 이곳에서 ‘에캄바레스와라’와 ‘카일라사나타’, ‘카막쉬 암만’, ‘바이쿤타 페루말’ 등의 사원을 찾았습니다.

이 도시는 팔라비 왕조 시대 ‘황금도시’라고 불릴 만큼 힌두 사원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먼저 봤던 거대한 아루나찰레스와라 사원이 인상에 남아서인지 다른 사원들에는 크게 관심이 가지 않습니다.

옛 팔라비 왕조의 수도 칸치푸람에 있는 카일라사나타 사원.
옛 팔라비 왕조의 수도 칸치푸람에 있는 카일라사나타 사원.

칸치푸람은 4세기 초에서 9세기 말에 걸쳐 타밀나두주(州) 북부지방을 다스렸던 팔라비 왕조의 수도였다고 합니다.

당시에는 불교가 융성해 당나라의 현장법사가 이곳에 방문하기도 했습니다. 현장법사가 남긴 기록에 따르면 도시 둘레가 10㎞에 달하고 주민들은 정의를 사랑하고 학문을 존중했다고 했으며, 석가모니 부처도 이 도시를 찾은 적이 있다고 합니다.

에캄바레스와라 사원 입구에는 시바 신의 연인인 파르바티(Parvati)가 망고나무 아래에서 링가(linga·남근상)를 끌어안고 있는 그림을 볼 수 있습니다. 관련된 전설도 있다고 하는데 너무 길어 생략합니다.

카일라사나타 사원은 7세기 말 라야심하(Rayasimha)에 의해 세워졌고 이후 그의 아들에 의해 증축된 시바 사원입니다. 초기 드라비다 건축 형태를 보여주는데 사원 안에는 각기 다른 모양을 한 시바의 화신들이 있다고 합니다.

카막쉬 암만 사원 역시 시바 신의 또 다른 반려자인 여신 카막쉬(Kamakshi)를 모신 비교적 자그마한 규모의 사원입니다. 아쉽게도 외국인은 고푸람(Gopuram·탑문) 안쪽 마당까지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바이쿤타 페루말 사원은 비슈누(Vishnu) 신을 모시고 있는데 7세기에 조성됐고 카일라사나타 사원 다음으로 조성돼 비슷한 모습을 띠고 있습니다. 후대에 이르러 1000개의 기둥이 있는 홀이 생겼다고 합니다.

비슈누 신을 모신 바이쿤타 페루말 사원. 1000개의 기둥이 있다는 홀의 모습.
비슈누 신을 모신 바이쿤타 페루말 사원. 1000개의 기둥이 있다는 홀의 모습.

이들 4곳 사원도 여느 사원 못지않게 귀중한 유적지인데, 하루에 사원 5곳을 둘러보는 일정이라니…. 그야말로 주마간산 격이 되고 말았습니다.

아무리 귀한 사원이라도 이쯤 되면 녹초가 되고 맙니다. 아쉽지만 보는 둥 마는 둥 지나쳐 왔다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돌이켜 생각하니 ‘몇몇 사원은 힘들어도 자세히 보고 올 것을…’ 하고 후회도 했습니다.

숙소에 도착하니 어느 덧 오후 9시. 저녁은 대충 때우고 우선 잠을 좀 자야겠다는 생각뿐입니다. <계속>

<서재철 본사 객원 大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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