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루한 일상을 깨우는 보석같은 만남
지루한 일상을 깨우는 보석같은 만남
  • 뉴제주일보
  • 승인 2018.11.01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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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 당신’ 中 ‘그 남자의 책 198쪽’ 윤성희 / ‘세계의 끝 여자친구’ 中 ‘내겐 휴가가 필요해’ 김연수
영화 ‘그 남자의 책 198쪽’ 스틸컷.
영화 ‘그 남자의 책 198쪽’ 스틸컷.

가끔 도서관으로 찾아와 사서 직업 인터뷰를 하고 싶다는 중,고등학생 친구들을 만난다. 어떻게 사서가 되었나요? 사서는 어떤 일을 하나요? 어떤 책을 추천해주고 싶으신가요? 라는 질문들이 대부분이다. 그 중 제일 인상 깊었지만 잘 대답하지 못해서인지 지금도 생각나는 건 ‘사서의 하루를 얘기해주세요’와 ‘이용자들의 이야기를 어디까지 들어주시나요?’ 라는 두 가지 질문이다.
  만약 그 질문을 던진 학생들을 다시 만난다면 도서관에서의 일상과 이용자와의 교감을 다룬 두 단편, 윤성희의 ‘그 남자의 책 198쪽’과 김연수의 ‘내겐 휴가가 필요해’를 그 대답으로 돌려줄 수 있을 것 같다.

윤성희의 ‘그 남자의 책 198쪽’의 주인공 ’그녀’는 8년째 도서관에서 근무 중이다. 그녀의 삶은 취침시간 저녁 10시, 수도요금 오만원, 어머니와의 통화주기 1주, 고시공부를 하는 동생에게 송금하는 생활비 50만원, 밥을 씹는 횟수 100번, 식후 30분에 먹는 신경성 위염약 등의 반복되는 숫자들의 나열로 요약된다. 도서관은 단지 직장일 뿐 그녀에게 별 의미를 주지 못하는 공간이다. 창문 너머에 있는 집들의 지붕 색깔이 하나라도 바뀌면 도서관을 관두리라는 생각을 하면서 ‘저기요’라고 자신을 부르는 사람들을 응대한다.

저기요, 복사 카드는 어디에서 사나요. 저기요, 펜 좀 빌릴 수 있을까요. 저기요…그녀는 도서관에서 이름 대신 저기요, 라는 말을 수없이 들었다. 그래서 도서관이 아닌  다른 곳에서도 누군가 저기요, 라는 말만 하면 자연스럽게 고개가 돌아갔다. 그녀는 저기요, 라는 호칭이 자신의 이름보다도 더 익숙했다.

이 ‘저기요,’의 거리를 뚫고 한 도서관 이용자가 다가온다. 그는 죽은 여자 친구가 줬다는 ‘xxx 책 198쪽을 봐. 너에게 전해주고 싶은 내 마음이 거기에 있어’라는 쪽지를 보여주며 여자 친구의 대출기록을 볼 수는 없는지 요청한다. 그녀는 규정을 살짝 무시하고 남자와 함께 죽은 여자 친구가 읽었던 책들의 198쪽을 함께 찾아본다.
 그 날 이후 그녀의 삶은 약간 달라진다. 서가에 꽂힌 책들의 198쪽을 펼쳐보고 그 페이지에 나온 구절들로 시작되거나 끝나는 수백 개의 문장들을 상상하면서 그 구절처럼 행동해본다. 남자와의 일탈(?)을 통해 그저 정리해야할 물건에 불과했던 책이 삶을 새롭게 바라보게 하는 창으로 변화하게 된다.

  사서가 이용자들을 도와주고 이용자는 그 도움을 받는다는 일반적인 관계에서 벗어나 역할의 반전이 일어난다는 점이 이 작품의 특별한 부분이다. 도서관 이용자가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실마리를 던져준다는 점은 사서로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어쩌면 내 삶이 달라지게 만들 기회를 저버리고 너무 방어적으로 이용자들을 대한 것은 아닐까?
 

김연수의 ‘내겐 휴가가 필요해’ 속에는 여름독서교실이 한창 진행 중이라 바쁘고 정신없는 바닷가 근처의 도서관이 등장한다. 그 도서관을 (휴관일을 빼고는) 하루도 빼먹지 않고 십 년째 출근하며 사회과학과 역사 서가의 책들을 독파하던 이용자인 전직형사가 바닷가에서 사체로 발견되었다는 소식에 자료실 담당자 강이 충격을 받는다.
  죽기 전날 우연히 서가정리를 도와준 후 함께 술을 마시며 전직형사는 강에게 자신이 1980년대 군사정부 시절 물고문으로 대학생을 숨지게 한 대공담당 형사였다고 고백한다. 자신의 행위에 대한 정당성을 밝히는 책을 쓰고자 자료를 모으려고 10년 동안 도서관 안에 숨어 닥치는 대로 책을 읽어댔지만 책을 읽을 수록 자신이 틀렸고 죽은 사람은 되살릴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으며 그래서 스스로를 그 학생처럼 죽이고 싶다고 눈물을 흘렸었다.

여기서 재미있는 부분은 전직형사가 ‘자신의 일생의 단 한 번의 진실한 순간’이라고 생각한 그 눈물을 강은 어느 여대생과의 이뤄지지 못한 사랑 때문이라고 오해했다는 점이다.

‘타인을 이해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거기에 가 닿을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해하려고, 가 닿으려고 노력할 때, 그 때 우리의 노력은 우리의 영혼에 새로운 문장을 쓰기 시작할 것이다.’ 이는 김연수 작가가 소설 속에서 계속 반복하는 메시지이다. 서로를 오해한 채 위로를 던지고 받는 전직 형사와 강의 모습을 마냥 우스꽝스럽게 볼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결코 이해할 수 없는 타인을 이해해보고자 노력 자체가 우리를 아름답게 만든다.

두 작품 속에 나오는 도서관에서의 일상을 읽다보면 도서관도 여느 직장과 똑같구나 라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다. 반복되는 사소한 업무들과 서로를 오해하고 질투하는 동료가 있는 것은 도서관에서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가끔 우연히 만나게 되는 타인과의 보석 같은 만남의 순간은 ‘직장으로서의 도서관’의 특별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사서와 이용자 모두 서로를 위로하고 성장시킬 수 있는 공간인 도서관을 꿈꾸며 두 단편을 읽어보시길 권한다. 

<강희진 제주도서관 사서>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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