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비스와 불친절 곱씹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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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주일보
  • 승인 2018.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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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근 제주도 도시재생지원센터 사무국장

얼마 전 스페인 출장을 다녀오면서 의아한 경우가 한 가지 있었다. 점원이나 음식점 종업원이 생각보다 불친절할뿐더러 이를 아무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점이다. 모두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손님이 왕이라는 캐치프레이즈가 당연한 장소에서 지내는 사람으로서는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가이드는 이곳 사람들은 서로를 서비스 받아야 할 갑을이 아닌 동등한 관계라고 인식하기에 일어나는 일이라고 설명한다. 논리적인 설명은 알겠는데 영 적응이 쉽지 않았던 경험이었다.

갑질이 사회적으로 크게 문제 되고 있다. ‘땅콩 회항으로 촉발된 갑질 문화에 대한 관심이 사회 곳곳에서 터져 나왔고 제주대 교수의 갑질이 논란이 되기도 한다. 이 때문인가 자신도 모르게 그 같은 문화에 동질화됐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재생사업과 관련된 행사에 가면 가끔 이름이 불리는 경우가 있다. 제주도나 행정시 소속의 위원회나 자문단 회의에 참여하기도 한다. 회의를 하다 보면 어느새 내가 꽤나 전문적인 인물로 대접받는다는 생각이 든다. 반대로 회의나 행사를 주최할 경우 모두에게 겸손하거나 진실하게 사람을 맞이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자리 잡는다.

물론 당연한 일이고 갑을 관계로 설명할 내용은 아님에도 내 성격 탓인가 아니면 구조적인 문제인지 우월적 느낌이 들거나 반대로 조마조마한 마음을 버릴 수가 없다. 사실관계와 달리 불편한 마음을 느낀다는 것이다.

10월이 되니 행사 참여가 헤아릴 수 없이 늘었다. 최근 한 문화행사 개막식에 참석했을 때 작가 한 명의 이야기가 가슴에 남는다. 그 작가는 개막식 중 작품을 전시하는 작가들은 외부에서 서서 기다리고 참석한 손님들만이 많지 않은 좌석에 앉아 있는 것이 불편하다는 문제를 제기한다. 작품을 전시하는 작가들이 손님들이 앉아 있는 자리에 앉았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멋쩍지만 볼멘 목소리로 내뱉는다.

순간 궁금해졌다. 문화 행사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참석한 손님일까. 작품을 전시하는 작가일까. 물론 주객을 구분하는 일이 그다지 중요한 일은 아니다. 정성껏 작품을 출품한 작가와 관심이 있어 구경 온 관람객들의 선의를 구별 짓는 일들은 별 의미가 없다. 그럼에도 은연 중에 모임 참여에서 중요성을 느끼거나 즐기고 있지 않았나 생각이 미쳤다.

주민 모임을 하다 보면 여전히 첫 모임부터 회장을 뽑고 이사를 뽑아 정작 실무자는 없이 지시만 하려는 성향을 지닌 분들도 가끔 만난다. 그분들은 그 모임의 직함이 대단한 감투라 여길지도 모를 일이다.

조직 내에서 위계를 정하거나 순서를 정하는 일이 너무나 익숙해져 버린 것 같다. 관계에서 위계질서가 너무나 당연하다고 여겼던 생각이 생활에서도 인이 박인 모양이다. 수평적 관계를 이야기하지만 내가 남보다 우월하거나 주인공이어야 한다는 의식이 내 주변 곳곳에 똬리를 틀고 있는 상황이 아닐까 싶다.

앞으로도 내가 속한 조직이 호스트 역할을 하는 회의 혹은 공식적인 모임이 계속될 것이고 나 역시 다양한 모임과 회의 혹은 행사에 참여하게 될 게다. 어쩌면 그런 모임을 준비하는 이들조차 자신들의 마음이 불편하면서도 기존의 관행에 의해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고 여길 수 있을 것이다.

다르게 생각해본다. 상대방에게 지나치게 겸손한 게 꼭 당연한 것은 아닐 것이다. 한 편이 왕이고 다른 편은 시중들어야 한다는 게 맞나? 서비스의 본질이 인간 상호 간의 관계를 훼손하는 경우라면 이를 정당하게 여겨서는 안 된다.

서비스를 주고받는 것인지 아니면 위치를 활용해 갑질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임이나 회의에 갈 때마다 조심스럽게 살펴봐야겠다. 스페인에서의 불친절이 조금은 이상하지 않게 느껴진다.

제주일보  webmaster@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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