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난 사십구 재
특별난 사십구 재
  • 뉴제주일보
  • 승인 2018.10.23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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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선 수필가

시어머님이 떠나셨다. 하필이면 폭염이 지속 되던 날이었다. 며느리 목소리만은 잊지 않으려는 듯 눈을 억지로 뜨려하였다. 입안에서 옹아리가 되어 나왔다.

나는 십여 년 동안 스무 번도 넘는 죽음의 고비를 넘길 때마다 내 손길 닿는 순간이 마지막이려니 하였다. 돌아오지 못할 길,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하였다. 감기도 앓지 않던 시어머니가 행동과 말이 어눌해지더니 치매를 동반한 뇌경색이 왔다.

한 달 정도만 사실 것 같은 예감 때문에 숨소리조차 못 들을까 봐 잠자리를 같이 했다. 남편과 나의 지극정성은 삼 년 동안 24시간을 같이 했다. 화장실 출입이 불편해지는 신체가 되어가자 요양원으로 모셨다.

7년 여를 휠체어에 앉은 채로 요양보호사에 의지해 면회실에서 마주했다. 증손자의 재롱을 동영상으로 보여줄 때면 같이 웃었다. 금방 한 말도 되묻고 처음엔 그러려니 하였다. “나 언제 죽어질거냐?”고 물을 때마다 부처님이 오라고 해야 가지요라고 하면 맞다하면서 미안한 웃음 한방 날린다.

어느 누구도 죽음은 예약되어 있지 않다. 금방 끊어질 것 같은 목숨도, 피골이 상접한 얼굴에 뼈와 살갗만 남아도 오래 살아주셨다. 96세의 일기를 마지막으로 내려 놓았다. 평생을 뙤약볕이 지속되는 여름에도 농사일을 천직으로 알았기에 푹푹 찌던 날에 서천 꽃밭으로 가셨을까.

관욕 재개하는 시간이다. 두 스님이 바라춤으로 의식을 시작한다. 병풍 뒤에서는 잠든 영가를 깨우며 목욕 의식이 진행되고 있다. 나는 영가를 향하여 하염없이 절을 하였다. 승무에 이어 나비춤과 북소리를 들으니 그동안 나의 고생을 달래주는 듯 심금을 울린다. 영가도 듣고 있겠지.

시어머니가 마련해둔 수의 가방 속에서 호계첩을 발견하였다. 장병에 효자 없다더니 사십구 재 조차 걸렀다면 이 다음에 내가 어떻게 뵐까. 다보혜라는 법명을 펼쳐든 순간 눈물이 앞을 가렸다. 호계첩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었다. 남편을 낳고 건강하게만 자라 달라는 시어머니의 염원이 위대해 보였다. 영가전에 호계첩을 올려놓고 고유문을 낭독했다. “사랑했던 어머님, 다시 불러 봅니다. 다보혜 어머님은 제가 결혼할 때 마련한 혼수에서 고무신 크기도 같다고 마냥 좋아 하셨지요.(중략) 증명법사가 수지했던 호계첩을 동봉하였으니 서방정토 극락세계에서는 어떠한 괴로움과 고통도 겪지 마셔요. 49일 동안 성스러운 재를 회향하면서 자손들 다라니도 낱낱이 보냈습니다. 부디 영면에 드시옵소서.(하략)” 뒤에서 흑흑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시어머님께 마지막으로 들려드리려고 내가 시낭송을 배웠나보다.

일곱 분 스님께 감사의 절을 올렸더니 최고의 의식이었다고 덕담해주었다. 주지스님은 물고기방생을 바다에 마련해 주셨다. 그 자리에 함께한 친척은 성님, 극락왕생 하십서라고 외쳤다. 퍼덕거리는 커다란 물고기가 하늘로 올랐다가 꾸물거리며 물가로 내려앉았다. 구름이 지나며 웃음으로 대답한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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