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따라 걸어보면…
길을 따라 걸어보면…
  • 부영주 주필·편집인/부사장
  • 승인 2018.10.21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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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을 따라 걸어보면 해안도로나 일주도로와는 다른 느낌을 받는다. 동네 산책은 내게 좋은 취미 같은 것이 됐다.

어둑어둑한 이른 새벽, 집을 나서 신산공원을 한 바퀴 돌고 6시부터는 시민들과 함께 맨손체조를 하고 운동도 하다가 돌아오면 아침이 산뜻하다.

여행을 가서도 마찬가지다. 새벽에 호텔을 나서 주변 동네 길을 걷다가 돌아와 아침 식사를 한다. 파리의 센강 둑 오른쪽에 있는 루브르박물관 인근 튈르리정원에서 바스티유까지 보행자 전용도로는 풍광이 참 아름다웠다.

하지만 부럽진 않았다. 지근거리에 아름다운 오름과 바다를 두고 있는 제주시민으로서의 자부심 때문이었다. 진짜로 부러웠던 것은 센강을 배경으로 걷고 있는 시민들의 활기였다.

 

길을 걸으면 머리는 맑아지고 생각하기 쉬워진다. 도시 외곽으로 나가지 않더라도 골목길을 걷는 것도 좋다. 그 길은 저마다 각각 다른 색깔이다. 요즘 걷기는 유행을 넘어서 열풍이라고 한다. 사람들은 왜 걷는 것을 좋아할까. 걷는 것은 A지점에서 B지점까지 도달하는 가장 단순한 방법, 그 이상이기 때문이다. 또한 운동하는 가장 편안한 방법, 그 이상이기도 하다. 걷다 보면 기분이 바뀐다.

길가에 두 팔 벌리고 있는 큰 나무들이나 올망졸망 줄지어 있는 집들이 정겹다.

머릿속을 단단히 조이고 있던 생각과 감정이 천천히 밖으로 빠져나오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래서 돌아올 때쯤이면 마음이 풀린다. 아침에 걷는 사람들의 얼굴이 밝고, 맑은 것은 그런 때문일 것이다.

 

어떤 도시는 걷는 동안 그 도시의 역사에 흡수되는 느낌이 든다. 1990년대에 모스크바에 머물렀던 적이 있는데, 모스크바야말로 (치안 문제만 아니면) 골목 구석마다 역사가 느껴지는 도시다. 일본의 옛 수도, 교토도 그런 느낌이 강했다. 그 도시의 길을 걷다 보면, 그곳에 집을 짓고 길을 따라 걸었던 사람들을 느낄 수 있다.

제주시도 걸으면서 역사를 느낄 수 있지만, 잘 찾아봐야 한다. 근대화 이후 제주시는 현대적인 도시가 됐다. 그러나 아직도 골목골목에는 역사가 숨 쉬고 있다.

요즘 나에게 걷는다는 것은 내 정신을 쉬게 하는 힐링이 됐다.

그런데 제주는 걷기 좋은 도시인가? 많은 시민들이 그렇듯, 나 역시 걷기 좋은 공간에 살고 싶다. 밖에 나가 걸을 때 자동차 경적과 오염된 공기에 맞부딪칠 때는 스트레스를 받는다.

본지 보도(1016일자)를 보면 시민들이 일상에서 운동할 수 있는 도시공원 조성 면적이 인구 1000명 당 12.9로 전국 평균(18.2)보다 크게 낮다. 보행자 전용 도로의 면적도 0.1%에 불과해 전국 평균(0.5%)보다 크게 미흡하다. 걷기에 좋은 환경이 아니라는 뜻이다.

 

걷기 좋은 도시란 어떤 곳일까. 박소현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55)동네로 눈을 돌린다. 걷기 좋은 도시는 우리가 살고 있는 동네 생활환경을 기반으로 한다.

아이 학교 데려다주는 길에 맛있는 것도 사 먹고, 장도 보고, 단골 찻집에서 이웃과 만나 수다도 떨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동네 걷기환경에 대한 관심은 미국 부동산업체들이 워크스코어(도보환경점수·Walk Score)’를 마케팅에 활용하고 있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워크스코어라는 사이트는 상점 등 편의시설 접근성, 도로 환경, 주민과의 거리 등을 계산해 얼마나 걷기 편한 동네인지를 0~100점의 점수로 환산해 알려준다.

고령 사회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 일본에선 노인들이 가까운 데서 생필품을 구할 수 없는 쇼핑 난민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노인 세대가 생을 마감하기 직전까지 걸어서 모든 생활이 가능하도록 동네 설계를 해야 한다는 말이다. 지난해 돌아가신 필자의 장모님(제주시 건입동)도 돌아가시기 두세 달 전까지도 온 동네를 걸어 다녔다. 보행기에 의지하면서도.

나이가 들면 동네에서 보내야 할 시간이 많아지잖아요.”

제주시가 걷기 좋은 동네만들기 운동이라도 벌였으면 좋겠다. 시민의 행복이 먼 데 있지 않다.

부영주 주필·편집인/부사장  boo4960@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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