正名의 역사와 ‘용어혼란 전술’
正名의 역사와 ‘용어혼란 전술’
  • 부영주 주필·편집인/부사장
  • 승인 2018.10.14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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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생각과 행동은 언어 또는 용어(用語)에 의해 큰 영향을 받는다. 그래서 공자(孔子)도 바른 이름과 용어를 사용하는 일을 강조했다. 공자는 제자 자로(子路)로부터 정치를 한다면 무엇부터 하시겠습니까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이름을 바로 세울 것이다(正名)”고 했다. “이름()을 바로 세우지 않으면 말()이 서지 않고, 말이 서지 않는다면, 모든 일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건·사물의 성격 규정을 바로 해야 제대로 된 정책이 나오고, 시민들이 따르는 정치로 이어진다는 뜻이다. 분명히 공자의 말에는 일리가 있다. 이름이 바로 돼있으면 어떤 사물인지, 그 관념이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 이해하기 쉬워지고 그렇지 않으면 그 이름의 실재가 달라져서 서로 다른 주장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이름이 중요하기에 우리 역사에서도 정명(正名)을 얻으려는 노력이 끊이지 않았다. 제주 4·3에 정명하자는 논의도 그런 이유에서다.

그런데 아쉽게도 우리 사회에는 용어가 왜곡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가장 심각한 경우는 아마도 진보-보수라는 프레임일 것이다. 심지어 학계에서도 그대로 사용한다. 좌파가 사용하는 진보라는 용어는 진취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반면 우파를 지칭하는 보수라는 용어는 과거 계승이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대중에게 호감을 주는 이름은 과연 어느 쪽인가? 서구 우파의 사상인 보수주의는 과거의 가치를 지키면서 사회의 유기적 발전을 도모한다는 고귀한 요소가 있다. 그런데 우리 역사에 서구 우파적인 보수주의가 있었던가? 한국 사회에선 보수주의가 착근하기가 힘들다. 세계 역사상 가장 빠른 속도의 변화와 발전적 사회 변동을 경험하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진보보수란 허구적 프레임에 갇혀 있다.

 

원희룡 제주지사는 제주 녹지국제병원에 대해 공론조사위원회의 불허 권고를 최대한 존중하겠다고 밝혔다. 제주 녹지국제병원은 중앙정부가 사업계획을 승인했고 제주도도 이를 받아들였고 중국 자본이 778억원 투자됐다. 지난해 7월 서귀포 헬스케어타운 안에 병원 건물을 준공하고 의사, 간호사까지 채용해 개업 허가만 기다리던 상태였다.

공론조사위의 설문조사 결과는 녹지국제병원 개설을 허가하면 안 된다고 답한 비율이 58.9%(106), ‘개설을 허가해야 된다고 답한 38.9%(70)보다 20.0%포인트 많았다. 반대한 이유에 대해서는 ‘(영리병원을 허가하면) 다른 영리병원들의 개원으로 이어져 의료의 공공성이 약화될 것 같아서66.0%로 가장 많았다.

문제는 영리병원이란 이름이다. 한국에서 동네 의원에서부터 병원, 대형 대학병원에 이르기까지 영리를 추구하지 않는 병원이 있는가? 그런데도 이 녹지국제병원에 대해서 영리병원이라는 이름을 붙여놓고, ‘영리비영리의 프레임으로 몰아세운 점은 적절하지 않았다.

 

용어는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야기할 가능성을 근본적으로 내포하기 때문에 이름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처음 만들 때도 그렇지만 끊임없이 용어와 그 사용, 수식어에 대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예를 들면 공짜도 아닌데 무상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무상급식, 무상보육, 무상의료 같은 경우가 그렇다.

용어가 왜곡되는 것은 해석을 잘못했거나 본래의 의미와 다르게 사용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해석을 잘못한 경우에는 교정의 여지라도 있지만 의도적으로 용어를 왜곡시키는 경우에는 (정략적) 이득을 취하려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정명의 문제를 넘어선다.

이런 경우 이름이란 단지 위장망에 불과하다. 내가하면 비영리이고, 남이 하면 영리가 된다면 그것은 소위 말하는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다. 그런 용어혼란 전술에 휘말리면 심각한 사회 분열을 낳는다.

정치를 하려면 무엇부터 해야하는지는 공자가 말했다. 사용하는 용어부터 합당해야 한다.

부영주 주필·편집인/부사장  boo4960@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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