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린 가을, 흐린 감귤, 흐린 행정
흐린 가을, 흐린 감귤, 흐린 행정
  • 정흥남 논설실장
  • 승인 2018.10.11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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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60년엔 강원도 해안가에서도 감귤을 재배할 수 있다.’

얼핏 소설처럼 들릴 것 같지만, 현실이다. 이미 감귤은 2000년대부터 경기도 이천을 비롯해 충남 천안 등지에서 부분적이지만 재배가 이뤄지고 있다. 이는 지난 4월 통계청이 발표한 ‘기후변화에 따른 주요 농작물 주산지 이동현황’이라는 자료에 나온다. 한반도의 기온상승으로 주요 농작물 주산지가 남부지방에서 충북, 강원지역으로 북상하고 있다.

물론 대표적 만감류인 한라봉이 남해안에서 재배된 지는 오래 전 일이다. 지구 온난화의 영향이다.

지구 온난화 등으로 1880~2012년까지 전 지구의 평균기온은 0.85℃ 상승했다. 대한민국은 최근 30년간 전세계 기온 상승에 비해 1.5배 높게 상승했고 최근 20년의 경우는 0.7배 수준이다. 전국 주요 권역의 연 평균 기온은 최근 40여 년 사이에 1도 안팎으로 상승했다. 제주라고 예외가 아니다.

제주의 기온상승은 곳곳에서 현실이 된다. 제주의 가을 하늘을 우중충하게 만들었다. 이는 잦은 비날씨로 이어지고 그 결과 수확을 앞두고 감귤나무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일조량을 빼앗아 갔다.

당연히 감귤 맛으로 이어졌다.

#낮은 가격, 불안한 출발

올해산 노지감귤 출발이 시원치 않다. 초반 가격이 지난해보다 낮게 형성되고 있다. 물론 현재 출하되는 노지감귤은 이른바 극조생 감귤로, 다음 달 중순이후 본격적으로 시장에 나오는 일반 조생과는 분명 다른 점이 있지만 그래도 불안감은 여전하다.

최근 출하된 올해산 노지감귤의 평균 경락가격은 10㎏ 기준 2만2000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2만5300원)보다 10% 정도 낮은 수준에서 형성되고 있다.

지난해산 노지감귤의 경우 10월 초 2만3000~2만9000원에 거래되다가 중순부터 1만원 대로 가격이 떨어지면서 전체 10월 평균가는 1만5400원을 기록했다.

최근 가격 하락세는 감귤 생산량이 증가한 것도 한 요인이지만, 실제 지금 시장에 나온 감귤을 맛본 소비자들은 눈살을 찌푸리기 일쑤이다.

감귤의 맛을 결정하는 두 요소는 당도와 산(酸)으로, 지금 출하되는 극조생 감귤의 경우 산 성분이 상대적으로 높다.

이유는 다름 아닌 ‘하늘’ 때문이다.

출하시기를 맞은 요즘 비와 함께 흐린 날씨가 주범이다. 과거 같으면 청명한 하늘이 탱글탱글 익어가는 감귤열매를 반겨야 하지만, 요금은 그 청명함의 표면을 저기압이 뒤덮고 있다.

충분히 예견된 기상조건이다. 지구온난화다.

#온난화 대응 기대이하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관측 자료에 따르면 올해 제주산 노지감귤 생산량은 45만t 내외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감귤을 제외한 과일 가운데 올해 사과 생산량은 46만8000t 수준으로 전망됐다. 배는 21만4000t 내외다.

이에서 보듯 감귤은 사과와 함께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과일이다. 그렇지만 감귤은 대한민국의 과일에 앞서 ‘제주의 과일’이다. 때문에 중앙정부가 감귤을 직접 지원하는 데에는 한계가 따른다. 결국 지방정부인 제주도의 몫이다.

한편에서 보면 다른 밭작물과 형평성 문제를 제기하기도 하지만, 이는 논쟁이 될 수 없다. 3만가구가 종사하고 1조원에 이르는 생산실적은 제주 골목골목에 생기를 불어넣는 실핏줄이다. 감귤산업을 살려야 하는 당위성이다.

제주도는 감귤산업 발전을 지속적으로 도모한다고 하지만, 제자리걸음이다. 여전히 ‘돌연변이’ 감귤가지를 찾는데 발품을 팔고 있다. 단기대책이다.

감귤정책은 도정이 바뀔 때 마다 춤을 춘다. 가격이 하락하면 아직도 ‘시장격리’라는 사실상의 산지폐기에 의존해 위기상황을 벗어나기에 급급해 한다. 그리곤 값이 좋으면 손 놓고 시장만 쳐다본다.

지구 온난화가 가져온 수확시기 궂은 날씨에도 흔들림 없이 유지될 수 있는, 지속가능한 발전을 담보할 수 있는 대책은 눈 씻고 봐도 찾을 수 없다.

온난화에 쫓겨 육지로 나가는 감귤을 바라만 볼 참인가.

정흥남 논설실장  jhn@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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