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쓸쓸함에 대하여
그 쓸쓸함에 대하여
  • 뉴제주일보
  • 승인 2018.10.09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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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가영 수필가

의학의 발전으로 수명이 길어진 건 사실이다. 잘못하면 200세까지 산다는 농담이 나올 정도다.

노인이라는 단어가 나올 때 마다 귀를 기우리게 된다. 어느 덧 나 자신도 그런 나이에 접어들어서인지, 흥미롭다. 한 번도 살아보지 못한 시간을 맞이하게 될 것이기에 두렵기도 하다.

장수가 인간의 행복이라고 생각하던 것은 옛 일이다. 다음 세계를 믿고 있을 시대의 얘기다.

노인들이 존경을 받던 이유와 사정이 있었다. 옛날엔 노인을 신들의 원형으로 생각하는 면도 있었다. 청년이나 장년보다도 신에 세계에 가까운 곳에 있기 때문이라는 분위기가 사회에는 남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남자 노인을 높여서 부르는 의 이미지조차도 찾아보기 어렵다.

현대는 사회와 집단에 도움이 되는지 그렇지 않은지로 인간을 평가한다. 그런 의미에서 노인은 마이너스의 존재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사회활동 하는 기능을 해마다 잃어가기 때문이다.

이미 경로의 가치를 발견하는 걸 외면한지 오랜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노인이라는 이미지에 대한 의견을 물으니 불쌍해 보인다, 지저분하다, 도움이 안된다, 고집이 세다, 욕심이 많다라는 대답이 나왔다.

독일의 사상가 슈타이너는 인생을 육체로 살아가는 청년기, 마음과 지성으로 살아가는 장년기에 비해 노인은 영성으로 살아간다고 했다.

의 이면에는 신의 모습이 어딘가에 있다. 그냥 노인이 아니라 신의 가까운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어렸을 적에는 늘 그랬다.

늙었을 때의 얼굴은 그 사람이 만든 것이라 한다. 만일 그렇다면 자신의 얼굴도 자신이 만든 것이 된다. 결국 이런 모습이 되었다는 식으로.

인간의 가치를 기능만으로 재는 현대에는 사회에서의 기능을 잃어버린 노인은 그저 불쌍한 대상 외에 어떤 가치도 없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어렸을 적엔 연극이나 그림에도 노인이 옹과 선인으로 등장했지만, 이젠 볼 수 없다.

그것은 우리들의 시대가 의 의미를 잃어버려서가 아닐까.

분석심리학의 기초를 세웠던 융은 무의식에 숨어 있는 원형 속에는 의 원형과 소년의 원형이 있다고 했다.

그것이 여러 민족의 신화와 동화에 나타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현대문학에는 문학의 근원에 있던 그런 것을 묵살하고 있다. 쓸쓸한 얘기다.

인간은 120세 전후를 한계로 그의 생존을 끝낸다. 늙음도 죽음도 자연이다. 그러나 노화를 나쁘게 보는 문화가 있다. 죽음을 패배로 보는 사상이 있다.

꽃이 지는 걸 애석하게 느끼는 마음은 영원히 바뀌지 않을 것 같다. 지지 않는 꽃은 조화뿐이라는 걸 알면서도, 노화는 가혹하고 잔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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