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세계’를 이뤄가는 삶의 과정들
‘자기 세계’를 이뤄가는 삶의 과정들
  • 뉴제주일보
  • 승인 2018.10.04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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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가 추천하는 이달의 책] 생명연습

‘자기 세계’라면 그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나는 몇 명 알고 있는 셈이다. ‘자기 세계라면 분명히 남의 세계와는 다른 것으로서 마치 함락시킬 수 없는 성과도 같은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 성곽에서, 대기는 연초록빛에 함뿍 물들어 아른대고 그 사이로 장미꽃이 만발한 정원이 있으리라고 나는 상상을 불러일으켜 보는 것이지만 웬일인지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 중에서 자기 세계를 가졌다고 하는 이들은 모두가 그 성곽에서 특히 지하실을 차지하고 사는 모양이었다. 그 지하실에는 곰팡이와 거미줄이 쉴 새 없이 자라나고 있었는데 그것이 내게는 모두 그들이 가진 귀한 재산처럼 생각된다.

위의 단락은 김승옥의 생명연습의 일부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부이기도 하고 이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일부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 소설에서 말하는 자기 세계란 무엇일까. 여기에서의 자기 세계란 사람들 사이에서 흔히 얘기하는 것과 통하는 면이 있기는 하지만 이 소설에서는 뭐랄까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해나가는 과정 같아 보이기도 하고 일종의 콤플렉스 그리고 겉으로 드러났을 때 외부 세계와 조화되지 못하는 어떤 비밀 같은 것 또는 다른 세계와 직면하거나 충돌했을 때 자신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 같은 것으로도 여겨진다.

나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소설의 제목 생명연습의 의미를 천천히 생각해본다.

생명, 즉 삶에는 연습이 필요하다는 것일까 연습이 필요하다면 살아가는 것은 어떻게 연습할 수 있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

또한 자기 세계를 이루는 과정이 살아가는 연습 중 하나라면 누구에게도 드러낼 수 없는 비밀들을 자신의 지하실에 차곡차곡 쌓아두는 것으로 자기 세계를 이룩해내면 되는 것인지 이것이 아니라면 어느 것 앞에서도 무너지지 않는 강건한 성곽을 쌓으면 되는 것인지 하는 의문도 든다.

위의 의문들처럼 나는 가끔 내가 좋은 어른이 될 수 있을까하고 자문할 때가 있다.

하지만 이 질문에서 좋은에 대한 정해진 답도 없고 어른이라는 의미에 대한 정확한 정의도 내릴 수 없다는 것이 내가 스스로 내린 결론이다.

그래서 이 질문은 꼬리를 물다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로 이어지다가 흐지부지돼 끝난다.

옳은 말씀이다. 이제 와서 눈물을 뿌린다고 해서 성벽이 쉽사리 무너져 날 것 같지도 않은 것이다. 소설의 가장 마지막 부분에서 화자인 는 한 교수님의 어떤 말을 듣고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된다. 이 생각은 한 교수님에 대한 냉소이자 조롱이지만 어떤 면에서 내가 느끼기에는 살아가는 것은 연민을 버리고 좀 더 냉정해지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처럼 들리기까지 한다.

스스로 대답해야 하는 존재들, 끝없이 질문하는 존재들과도 같이, 지구 바깥에, 허공에 집을 짓는 사람들.

황병승 시인의 시 그리고 계속되는 밤에는 위와 같은 구절이 나온다.

허공에 집을 짓는 행위는 이 시에서는 시를 창작하는 행위라고 볼 수 있지만 생명연습과 관련해 보면 삶을 연습하는 것 또는 자기 세계를 구축하는 것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항상 어느 순간에나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사람이라면 어떤 순간들을 늘 마주하고 있을 것이다.

그럴 때마다 질문과 대답을 반드시 해야 하는 어쩌면 강요당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을 만큼 언제나 그런 상황에 놓이게 된다.

이런 상황들을 항상 우리가 원하는 대로 이끌어나갈 수도 없다. 이것을 실패라고 여길 수도 있지만 연습이라고 생각하자고 말하고 싶다.

이런 고민의 과정이 이 소설에서 말하는 자기 세계생명연습으로 대표되는 생명연습의 핵심이 아닐까 싶다.

<지기룡 동녘도서관 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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