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어디서나 부모
언제나 어디서나 부모
  • 뉴제주일보
  • 승인 2018.10.02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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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숙.서울가정법원 상담위원/숙명여대·가천대 외래교수

제주법원에서 재판 중 의뢰된 상담을 하다보면 자녀와 헤어져 지내는 부모가 원거리에서 지내는 경우가 종종 있다. 부산, 전남 광양, 대전, 서울, 강원도 홍천, 경기도 평택, 안산, 파주, 베트남, 일본, 영국 등등.

이혼재판은 재판받을 법원을 본인의 임의대로 정할 수 없고 별거 전 함께 살았던 주소지에 있는 법원에서 재판을 하게 된다. 그래서 부부 중 한 명 혹은 두 사람 다 제주를 떠났더라도 함께 살았던 곳이 제주라면 제주에서 재판을 받아야 한다.

이혼을 통해 타인이 되고자 하는 부부 사이에 미성년 자녀가 있는 경우 한 쪽 부모의 원거리 거주가 자칫 자녀에게는 한 쪽 부모와의 영영 이별이 될 수도 있다. 이 경우 정서적 혼란을 겪을 수 있는 확률이 높게 된다.

부모 입장에서는 상대방이 싫어 집을 떠났지만 어쩐지 아이에게는 미안한 마음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 때 많은 이들이 아이가 잘 적응하도록 도우려면 정을 떼야 한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부모 입장에서 배려라 여길 수 있으나 아이 입장에서는 자칫 결핍의 시간이 될 수도 있다.

헤어져 지내는 부모와 영영 이별을 경험하는 자녀, 즉 면접교섭을 못하는 자녀는 비양육자로부터 버림받은 것에 대한 분노와 자책감을 갖기도 한다.

만약 이 때 함께 지내는 부모가 헤어져 지내는 부모에 대해 부정적인 비난을 많이 할 경우 그 이야기를 내내 듣고 자란 아이는 자신을 만나러 오지 않는 부모에 대해 극단적으로 왜곡된 부모의 이미지를 간직한 채 자라게 된다.

간혹 상대방이 너무 싫어 자신은 제주를 급하게 떠난 후 빨리 이혼하기 위해 빠른 재판을 신청하기도 한다. 필자의 상담 경험 상 빠른 재판 진행이 오히려 부부 갈등을 상승시켜 자녀에게도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 경우에 따라서는 부부 갈등을 절감시키며 천천히 진행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반대로 자녀에게 미칠 부정적인 영향을 깨닫고 자녀와의 면접을 빠르게 시도하기 위해 원거리로 떠난 다음 빠른 재판 진행을 원해 법원에 요청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때도 어려움은 있다. 물리적 거리가 멀기 때문에 본인은 빠르게 재판을 진행하고자 하지만 법원 입장에서는 인력 사정 상 여의치 않은 경우가 있다. 특히 전국 이혼율 최고인 제주법원은 사정 상 당사자가 원하는 만큼 재판이 빨리 잡히지 않는다.

요즘 면접교섭 중요성에 대한 홍보가 잘 돼서 부모가 헤어지더라도 면접교섭이 자연스럽게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특히 면접교섭과 관련 제주가 가지는 최고의 장점은 도내에 있는 경우 거리가 가까워 자녀가 수시로 헤어진 부모와 종종 만나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이다. 또 한 가지 특별한 장점은 비록 부부는 헤어졌지만 자녀를 양쪽 집안의 보물로 여겨 양쪽 조부모와의 만남, 특히 제사·장례·명절·벌초 등의 집안 행사 참여에 대해 거부감이 없는 것이다.

이혼하면 며느리나 사위에 대한 분노감 때문에 손주를 남의 자손으로 여기는 경우도 있는데 제주는 공동으로 양육하는 생각이 짙다. 자녀 양육에 대한 책임감이 특히 강하다. 부부는 비록 이혼을 선택했지만 자녀를 이 갈등 구조 속으로 밀어 넣지 않고 할머니, 할아버지, 큰아버지, 이모, 삼촌의 사랑을 전하는 더 큰 사랑의 구조를 전해주는 제주의 특징은 아이들에게 중요한 버팀목이 돼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 의식을 자연스럽게 스미게 한다.

원거리 면접교섭도 면접교섭 내용의 합의만으로는 어림없다. 실제로 해봐야 한다. 아이는 제주에 있는데 헤어져 있는 부모가 원거리에 있거나, 헤어져 있는 부모는 제주에 있는데 아이가 다른 곳에 있는 경우 아이와 헤어져 있는 부모가 만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면접교섭은 당연한 것이라는 생각이 바탕이 돼야 한다. 그리고 각 가족에 맞는 방식을 찾아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필자와 해당 부모는 머리를 맞대 다양한 아이디어를 내는 시간을 갖고 있다.

다행히 많은 부모들이 필자의 생각에 동의하고 적극 동참한다. 서로에 대한 신뢰에 고마움을 잔뜩 느끼는 시간이다.

뉴제주일보  webmaster@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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