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집] "제주일보는 4·3 해결에 앞장선 신문, 유족의 한 사람으로서 고마움 느껴"
[창간특집] "제주일보는 4·3 해결에 앞장선 신문, 유족의 한 사람으로서 고마움 느껴"
  • 현대성 기자
  • 승인 2018.09.30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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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일보와 '동갑내기'인 김두연 전 제주4·3희생자유족회장 인터뷰
제주일보가 창간한 1945년 태어난 ‘해방둥이’ 김두연 전 4·3희생자유족회장이 본지를 펼쳐 보며 지나온 세월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1945년에 태어난 ‘해방둥이’. 광복과 제주4·3사건, 6·25전쟁, 4·19 혁명, 5·16 군사정변, 민주화운동, 한강의 기적 등 파란만장한 격변의 현장에서 온몸으로 부딪치며 살아온 그들의 삶에는 우리 현대사의 희로애락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그들의 삶은 같은 해 창간한 제주 최초의 한글신문인 제주일보의 역사와 닮았다.

제주의 현장에서 도민들과 함께 숨 쉬며 도민들과 함께 했던 제주일보의 역사는 곧 제주의 역사이자 제주도민의 역사다.

제주 4·3 유족으로 그 진상규명에 앞장섰던 ‘해방둥이’ 김두연씨(73)는 제주일보 창간 73주년을 맞아 지난달 28일 제주시 도남동에서 진행된 인터뷰를 통해 제주일보에 대한 고마움, 제주 4·3의 해결을 위한 언론의 역할 등에 대한 생각을 가감 없이 밝혔다.

김씨는 “1948년 4·3 당시 스물 한 살이던 맏형은 토벌대에 의해 희생됐고, 아버지도 이듬해 강제로 토벌 작전에 동원돼 임무를 끝내고 귀가하던 도중 행방불명 됐다”며 “아버지의 시신은 그로부터 37년 후 동굴에서 발견됐다”고 말했다. 

김씨는 이후 4·3 진상규명 운동에 앞장섰다. 김씨는 1988년 제주4·3희생자유족회의 전신인 ‘4·3 반공유족회’의 발기인으로 참여했고 이후 제주4·3유족회 조천지회장, 제주4·3유족회 사무국장, 상임부회장 등을 거치면서 각종 4·3 문제 해결에 나섰다.

김씨는 유족회 활동을 통해 4·3 특별법 제정, 진상조사고보서 제정, 노무현 대통령의 공식 사과 등을 이끄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김씨는 2005년부터 2009년까지 제주4·3유족회장을 역임하면서 희생자 유해 발굴 사업을 시작하는 데 일조하기도 했다. 2008년 제주 4·3 60주년을 맞아서는 옛 전국 형무소와 학살터의 혼백을 모시기 위한 제례를 지냈고, 4·3평화재단 설립, 4·3해원방사탑 건립 등에 힘썼다.  

김씨는 “역사의 불행은 우리 가족에게만 불어 닥친 것이 아니었고, 제주 사람 모두가 고통을 짊어지고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삶을 살아가야 했다”며 “하지만 각계각층에서 제주4·3의 진상을 밝히기 위한 노력이 이어졌고, 특히 언론의 노력이 제주 4·3을 해결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언론에서 제주 4·3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해결을 위해 다양한 노력을 했기 때문에 평화공원도 생기고,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도 마련되고, 대통령이 사과도 한 것”이라며 “특히 4·3 문제를 처음 꺼낸 제주일보는 우리 유족들에게 더할 나위 없이 고마운 존재”라고 말했다.

김씨는 이어 “제주 4·3이 70주년을 맞았지만 제 이름을 찾는 문제, 특별법을 개정해야 하는 문제, 그 과정에서 미군정의 책임을 물어야 하는 문제 등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적해 있다”며 “저와 동갑내기인 제주일보를 비롯한 언론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제주4·3의 완전한 해결을 위해 노력해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현대성 기자  cannon@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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