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야, 문제는 신뢰야
바보야, 문제는 신뢰야
  • 뉴제주일보
  • 승인 2018.09.20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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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완 제주대 철학과 교수·논설위원

제비 한 마리가 온다고 여름이 온 것은 아니듯, 하루 한 때의 행복이 인생 전체를 행복하게 하는 것은 아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쓴 니코마코스 윤리학의 한 구절이다.

제비 한 마리가 온다고 여름이 온 것은 아니다라는 서양 속담은 여기에서 나왔다. 이 속담이 프랑스나 우리나라에서는 제비 한 마리가 온다고 봄이 온 것은 아니다로 바뀌었다. 그런데 이 말은 성급한 판단을 조심해야 한다는 교훈을 담은 이솝우화에서 비롯됐다.

많은 재산을 상속받은 젊은이가 방탕한 생활 끝에 건달이 됐다. 남은 재산이라고는 외투 한 벌뿐이었다. 외투를 팔아 배를 채우고 싶을 정도로 굶주림에 지쳐있었지만, 그러기에는 너무 추웠다. 건달은 날마다 광장에 나가 제비를 기다렸다. 제비가 올 때면 따뜻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광장 분수대 위를 나는 제비 한 마리를 발견하자마자 건달은 외투를 팔아 배를 채웠다. 하지만 곧바로 찾아온 추위에 떨던 건달은 얼어 죽은 제비에게 이렇게 말한다. “불쌍한 것, 너는 우리 둘 다 망하게 만들었구나.”

7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끝난 지 3개월이 다 돼간다. “뼈를 깎는다는 반성과 함께 사퇴한 야당 대표들의 교체를 두고 언론에서는 올드 보이의 귀환이라고 평가절하하고 있다.

나라를 통째로 넘기시겠습니까?’라는 야당 슬로건의 근거가 됐던 북미정상회담은 여전히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다. 선거 직전 경제를 통째로 포기하시겠습니까?’라는 슬로건이 추가되면서 집중됐던 최저임금 인상과 소득주도 성장론에 대한 공세도 여전하다. 그런데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뭔가 달라진 듯하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낙선한 야당의 유력후보는 1992년 미국 대통령 선거 때 클린턴 당시 민주당 대표가 내세운 구호를 인용했다.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It’s the economy, stupid).”

어쩌면 지금 그 후보는 추락하는 국정운영 지지율을 보면서 3개월이라는 시간 차를 아쉬워할지도 모르겠다. 3개월 전이 지금과 같았으면 낙선의 고배를 마시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비가 왔기 때문에 따뜻해지는 게 아니라, 따뜻해졌기 때문에 제비가 오는 것이다. 그러니 지금은 성급하게 아쉬워할 때가 아니다.

그렇다. 문제는 늘 경제(經濟). 경제를 뜻하는 이코노미(economy)’살림살이를 뜻하는 희랍어 오이코노모스(οκονόμος)에서 비롯됐다. 경제도 경세(經世)와 제민(濟民)이 조합된 한자어다. 세상을 경영하는 것이 백성을 구제하는 방법이고, 백성을 구제하는 것이야말로 세상을 경영하는 목적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이렇게 동서양 할 것 없이, 정치의 목표는 살림살이를 나아지게 하는 데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지난 지방선거에서 확인했듯이 살림살이가 전부는 아니다.

논어(論語) 안연(顏淵) 편에서 공자는 정치가 식량(경제)을 풍족하게 하고, 군비(국방)를 충족하게 하고, 백성(민심)이 믿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자 자공은 경제와 국방, 민심의 우선순위를 묻는다. 공자는 군비를 버리고, 식량을 버릴지언정 백성의 믿음을 저버려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정확하게 옮기면 사람들은 언젠가 죽기 마련이지만, 백성의 믿음 없이는 설 수 없으니 식량을 버린다라고 말했다. 여기에서 오늘날 정치가들이 애호하는 무신불립(無信不立)’이라는 말이 나왔다.

공자의 말처럼 전쟁이나 굶주림 때문이 아니더라도 사람들은 언젠가 죽는다. 그래도 살아 있는 사람이 있는 한 정치는 계속된다. 그렇다고 해서 정치가 늘 블루오션인 것만은 아니다. 외투 한 벌 간신히 건진 건달로 전락하기 십상이다.

문제는 신뢰다. 그러니 어설픈 경제 이야기로 민심을 왜곡하고 선동하는 것은 좋은 전략이 못된다. 물론 민심을 잘못 읽어 가던 길을 돌아 나오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제비 한 마리가 광장 하늘에 날아올랐다고 해서 여름이 온 것은 아니다. 탄핵과 지방선거에서 보듯이 민심은 싸늘하고, 여전히 그렇다.

여야를 막론하고 아직은 외투를 팔 때가 아니란 말이다.

뉴제주일보  webmaster@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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