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학문은 인문과학이다
모든 학문은 인문과학이다
  • 뉴제주일보
  • 승인 2018.09.19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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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방울 고문헌 박사·논설위원

지난 5일 문화체육관광부는 ‘2018 인문정신문화 실태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최근 인문학 열풍으로 불릴 정도로 사회 저변에서 인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 사회의 전반적 환경을 파악진단하고 수요자 측면에서 인문 정책의 지향점을 설정하기 위해 처음으로 실시된 것이라고 한다.

우선 우리 국민 27.7%가 인문학에 관심이 있다고 표명했다. 그런데 인문학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68.4%그렇다고 대답했다. 두 배 넘는 사람들이 그 필요성을 인정한 것이다. 인문학의 필요성을 느끼면서도 현실적으로 다가가기 어려운 상황을 반영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나는 누구인가’, ‘왜 사는가’,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등의 성찰이 우리들을 인문학으로 이끌고 있으나 현실적으로 인문학하면 뭔가 어렵고 고리타분해 보인다는 것이다. 이는 조사 결과로도 나타나는데 인문학의 한계점으로 내용이 어렵고 추상적이라 접근성이 낮기 때문에라는 응답이 39.3%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전근대 시기에는 인문학이 문학·역사·철학, 문사철과 동일시됐다. 그러다가 17세기 과학기술혁명을 거치면서 자연과학이 엄청나게 발전하기 시작했다. 그 이전의 학문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문사철이 중심이 될 수밖에 없었다. 17세기 이후로 축적된 기술을 통해 새로운 학문들이 생겨나며 각 분야로 전문화돼 나갔다. 우리가 쓰는 과학(科學)’이라는 용어는 사이언스(science)’를 번역한 것인데, 사실 과학이라는 말은 분과 학문이라는 뜻으로 드라이한 용어다. 그 내부 어디에도 근사해 보이는 사이언스의 의미를 담고 있지 않다.

이렇게 각개 약진하던 학문들이 20세기 후반 서로 뭉치기 시작했다. 각자 우물을 열심히 파고 있었는데, 깊이 들어가다 보니 공통된 수맥을 발견하기 시작한 것과 비슷하달까. 그 수맥 중 하나는 다름 아닌 바로 우리 인간에 대한 이해였다. 현미경으로 쪼개고 쪼개서 분석도 해보고, 망원경으로 저 멀리 우주를 관찰해 보았다. 이 성과들은 모여 인간을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길 요구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이전에 미처 생각지 못했던 새로운 연구 성과들이 쏟아지고 있다.

여기서 다시 인문학이 도대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다. 인문학은 인문을 연구하는 학문일 터이니, 그렇다면 인문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인문의 사전적 의미는 인류의 문화. 이는 한자를 우리말로 옮긴 정도의 의미밖에 그 내면적 의미를 전하지 않는다.

인문학 및 인문정신문화의 진흥에 관한 법률3조에서는 인문을 인간과 인간의 근원문제 및 인간의 사상과 문화라고 정의하고 있다. 인간과 관련된 모든 주제가 인문이고, 이를 연구하는 것이 인문학인 셈이다. 위에서 언급한 학문 흐름과 관련해 예를 하나 들어보자. 20세기 후반 들어 생물학이 엄청나게 발전했는데, 이를 통해 인간을 새롭게 이해하기 시작했다. 진화생물학, 진화심리학, 동물행동학, 뇌과학, 신경과학, 인지과학, 생화학, 생태학, 유전자 인류학 등의 학문이 발달하면서 이를 통해 인간의 기원과 마음을 새롭게 들여다보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이전에 철학과 종교가 질문하고 대답했던 분야였다. 그러나 현재는 훨씬 다양한 학문 분야에서 과학적 방법론으로 연구되고 있다.

이런 시대적 흐름은 이번 조사 결과로도 나타난다. 인문 프로그램의 발전 방향에 대해 정치·경제·경영 등 사회 전반에 대한 정보를 다루며 실용성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54.2%, 심리학·인류학·예술 등 폭넓은 인문학 계열로 확장해야 한다는 의견이 23.4%, 현대사회의 시대적 흐름을 이해하고자 생활과학, 자연과학, 천문·지리·생명과학·공학 분야를 다뤄야 한다는 의견이 16.6%로 나타났다. 그런데 정작 문사철 기초에 집중해 인문학의 본질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은 5.9%에 불과했다. 기존의 인문학에 새로운 변화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인문학의 위기인가, 인문학의 열풍인가. 기존처럼 분과 학문으로서의 인문학은 위기일지 모르나 인간 근본 문제에 새롭게 도전하는 통합 학문으로서의 인문학은 희망일 것이다. 모든 학문은 쓸모가 있는 것이고, 그 쓸모는 결국 한 곳에서 만난다. 그 지점은 바로 인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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