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초 이야기
벌초 이야기
  • 뉴제주일보
  • 승인 2018.09.18 20:0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고훈식 시인·제주어육성보존위원

벌초를 하려면 묘가 있어야 한다. 묘가 있으려면 망자가 있어야 한다. 망자가 산에 묻히려면 조종을 울리면서 꽃상여를 등에 진 상여꾼들의 발길이 있어야 한다. 천성이 효자인 까마귀는 미리 소나무 가지에 앉아서 얼마나 정성을 들이는지 묘를 쓰는 거부터 제를 지내는 것까지 지켜보고 있다.

금년에는 태풍이 이미 지나가서 매우 쏟아지는 비가 없어 다행이다. 봉분과 산담을 하고 상석 모서리에 돋은 풀만 베어내고 제물을 올리고 배례하면 보람차게 벌초를 마칠 수 있는데 느닷없이 폭우가 쏟아져서 서울에서 온 동생이 선산을 지키는 형님더러, ‘조카들 감기 들 수가 있으므로 대충하고 갑시다라고 했을 경우, ‘일 년에 한 번 조상 벌초를 하면서 그까짓 비에 엄살이 심하다고 타박하면 내년엔 벌초 비용만 보내고 구태여 비행기를 타지 않게 된다. 문득 여기서 산자를 위한 벌초인가, 망자를 위한 벌초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가족묘가 300평 남짓으로 넓어서 소나무가 몇 그루 돋아나서 낙락장송이 되면 운치도 있고 그늘이 되어 좋겠다는 생각에 키울 것을 제안했는데 소나무 뿌리가 사방으로 뻗치면 봉분 속으로도 파고들기에 불효막심이 되므로 없애자는 쪽으로 가닥이 모아져서 나무 한 그루도 없어 고사리가 돋은 잔디밭이 되었다.

조상이 아무리 명당에 누었어도 후손이 다른 곳으로 옮기면 불평 없이 따라야 한다. 심도 있게 숙고하면 아무도 찾지 않아서 고총이 되거나 산사태로 유실되어 후손이 찾지 않는다 해도 후손은 미래의 조상이므로 조상은 자기 후손의 잘잘못을 따지거나 벌을 주지 않음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그 가문의 조상이니까. 그러기에 꿈에 나와서 하소연하지 않음은 후손이 기가 죽지 않게 염려하는 배려이다. 그리하여 어떤 이유가 있던지 간에 벌초를 수십 년이나 하지 않는 대단한 배짱이 부러울 따름이다. 내 경우는 장손이라고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할아버지 따라 벌초를 다닌 세월이 이제 칠십이 넘었다.

묘적이 있는 조상 묘가 도로가 나게 되어 보상을 받게 되었으나 그 곳이 명당이라 어느 친척은 일본에 가서 성공했다고 이묘를 바로 도로 옆으로 옮길 것을 제안하면서 납골묘나 평장을 하지 말라고 독선을 부리고 있다. 친족 기금도 생겼으니 친족 묘 전부를 평장으로 하자고 해도 막무가내다.

한라산이 영산이면 되는 거지 제주도에 명당이 아닌 곳이 어디 있으랴. 비행기가 공중에서 폭되어 시신이 없는 영가나 바다에서 떠도는 고혼도 명당타령에 제외되면 서러울 거다.

마음 같아서는 화장하지 말고 매장을 하고나서 300년이 지난 다음에 관을 열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물론 소문난 삼베로 시신을 감싸고 질긴 아교를 칠하여 더욱 윤기 나는 오동나무 관에 묻었으니 미라로 남아있으면 그 또한 조상을 만나는 감회가 새로울 것이지만 그러겠노라고 대답해 놓고 화장해버린 경우도 무수하게 많다.

어느 가문은 내년부터 봄에 지내는 묘제를 가을에 단체소분을 하고 나서 합병하여 제를 지내기로 잠정 합의하였다. 명분으로 치자면 쾌심한 처사이고, 실리로 보면 대단한 순발력이다.

뉴제주일보  webmaster@jejuilbo.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