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다움’의 속살들, 그 길에 있더라…
‘제주다움’의 속살들, 그 길에 있더라…
  • 뉴제주일보
  • 승인 2018.09.17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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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연재를 마치며
신천목장 감귤껍질 말리기.
신천목장 감귤껍질 말리기.

# 천혜의 섬 ‘제주’

올레 길은 바다에서 마을로, 마을에서 다시 오름을 왔다 갔다 하는 구조다. 섬 주민들의 생활공간을 따라 펼쳐져 있다. 말미오름과 알오름에서 시작하여 식산봉과 대수산봉, 통오름과 독자봉, 고근산과 하논, 베릿내와 월라봉, 모슬봉과 녹남봉, 수월봉과 당산봉, 저지오름과 문도지오름, 고내봉과 수산봉, 도두봉과 사라봉, 원당봉과 서우봉, 지미봉과 바다 건너 쇠머리오름까지 오른다.

또 주요 해안길은 물론이고 연대나 봉수 같은 방어유적, 포구나 신당 같은 생활유적, 폭포와 섬 속의 섬, 곶자왈과 두메산골 등 천혜의 자연인 섬 구석구석을 걸으며, 이 땅에서 태어났음을 감사히 여기고 자랑과 긍지로 여기게 만들었다.

그러고 보면 필자뿐만 아니라 이 길을 걷는 사람들은 올레 길을 마련해놓은 서명숙 이사장의 혜안과 노고에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다.

섯알오름 학살터.
섯알오름 학살터.

# 이야기가 있는 길

올레 길을 걷고 있으면 곳곳에서 말을 걸어온다. 일만팔천신이 신당에 좌정했다가 본풀이로 신화(神話)를 들려주고, 설문대할망이 다가와 이 땅의 전설(傳說)을 조근조근 이야기해준다. 바닷가를 두른 환해장성과 연대(燃臺)는 섬을 잘 지켜 달라 부탁하고, 마을길을 지키고 선 팽나무는 유서 깊은 마을임을 대변해주는가 하면, 옛 포구와 원담은 바다와 더불어 살아온 선인들의 지혜를 일깨워준다.

그러나 어찌 좋은 일만 있었으랴. 때론 수탈의 뼈아픈 역사를 가슴 아리도록 느꼈고, 폭포나 해수욕장에 어려 있는 43 원혼들의 질타를 외면할 수도 없었다.

# 더 이상의 개발은 안 된다

올레 길을 걸으며 수 없이 목격한 것은 제주의 아름다운 자연을 훼손시켜 만들어놓은 인공 구조물들이었다. 필자에게 제주섬의 가치를 묻는다면, 첫째가 자연이라고 대답하겠다. ‘유네스코 자연부문 3관왕이라는 어설픈 조어(造語)를 예로 들지 않더라도 누구나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올레 길을 걷다 보면, 이런 곳에 이런 구조물이 왜 서 있는지 모를 때가 많다. 나무를 베어내거나 오름이나 해안 절벽을 깎아 주저 없이 시설해 놓았다. 우리 생각 같아서는 그곳에 그런 시설물이 들어설 필요가 없어 보이기도 하고, 경관을 해치지 않은 곳에 들어서도 충분할 것 같은데. 제주의 허파라고 하는 곶자왈을 헤치고 들어선 개발단지나 골프장, 오름 밑에 바짝 들어선 리조트. 이런 걸 미끼로 외국 자본을 끌어들여 일자리를 창출하고 세수(稅收)를 챙긴다고는 하지만, 곶감 빼먹듯 반복하다 보면 그리 넓지도 않은 섬 땅은 이런 시설물로 가득할 것이고, 투기 때문에 오른 땅값에 따른 세금 때문에 본토박이들은 섬을 떠나야 할 지도 모른다.

성산리 터진목에서 본 풍경.
성산리 터진목에서 본 풍경.

# ‘이다

서명숙 이사장의 저서 제주 걷기 여행프롤로그를 보면 자신은 산티아고 길을 걸으며, 운명의 여신이 던지는 메시지에 따라 자신을 낳고 길러준 제주 섬에 까미노를 만들겠다는 야심찬 소망을 안고, ‘목덜미를 간질이는 해풍을 맞으면서, 바다와 오름에 번갈아 눈을 맞추면서, 인간다운 위엄을 지키면서, 걸을 수 있는 길을 내어보겠노라는 다짐을 했다고 한다.

며칠 전 천주교 서울 순례길이 아시아에서 최초로 교황청의 승인을 받은 국제 순례길이 되었다는 뉴스를 접한 적이 있다. 명동 대성당에서 출발하여 삼성산 성지까지 3개 구간 총 44.1나 되는 순례길이다. 신자들로서는 환영할 만한 일이다. 물론 제주에도 얼마 전부터 천주교와 불교에서 내놓은 순례길이 있어, 더러는 올레 길과 중복되기도 한다.

걷는 사람의 필요에 달라질 수 있는 게 길의 속성이다. ‘산티아고 길처럼 걸으면서 신앙심을 다지는 한편 깨달음을 얻을 수도 있고, 멕시코 국경에서 캐나다 국경까지 미대륙 서부지역을 종단하는 대표적인 장거리 트레일인 PCT 같은 길에서는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며 건강을 다지고 자신감을 회복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제주올레길은 꼭 완주를 목표로 하지 않아도 된다. 오랜만에 시간을 얻어 친구끼리 만나 걸으며 그간의 이야기를 나누어도 좋고, 날짜를 정하여 식구끼리 모여 가족의 정을 더욱 돈독하게 하기도 하고, 부모가 아이들에게 어릴 적 고향 이야기를 들려주다가 때가 되면 맛집을 찾아 식사를 즐겨도 좋겠다. 학교에서는 학생들의 소풍이나 현장학습 코스를 어느 올레 길로 정해 자연과 접하게 하면서, 조상들의 살았던 생활흔적을 돌아보며 향토학습을 할 수도 있겠다.

# 연재를 끝내며

82주 동안 정규 21개 코스, 개별 5개 코스와 B코스까지 걸으며 향토의 역사와 전설, 자연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엮어 보았다. 어떤 때는 필자의 역량이 모자라서 어떤 때는 지면이 한정되어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못 하기도 했다.

올레 길은 놀멍 쉬멍 걷는 길이라는데, 때론 길가에 좌판을 놓고 앉아 있는 할머니 앞에 쪼그려 앉아 파는 물건을 사 먹으면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길가에 늘어선 카페를 찾아 커피 한 잔을 앞에 놓고 전망을 묻기도 하고, 쉼터에 앉아서 나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 데는 많이 소홀한 것 같다. 어떤 친구에게선 모처럼 자기가 사는 동네를 지나면서 어째 전화 한 통 없었냐.’는 핀잔 전화도 몇 차례 받았다. 솔직히 취재차 걸으면서 간세한 번 못하고 주마간산 격으로 지나친 곳도 한 두 군데가 아니다.

끝으로 매번 거친 글을 새기며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께 고마운 말씀 드리며, 또한 허락 없이 작품을 인용하도록 관용을 베푸신 문우 여러분께도 심심한 사의를 표한다. <>

<김창집 본사 객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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