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곁가지’로 가려지는 비자림로
‘곁가지’로 가려지는 비자림로
  • 정흥남 논설실장
  • 승인 2018.09.13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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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곁가지’.

뜻은 원가지에서 곁으로 돋은 작은 가지쯤으로 정의된다. 요즘은 어떤 사물이나 관계 따위에서 덜 중요하거나 본질적이 아닌 부분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 더 사용된다.

때문에 곁가지를 부각시키다 보면 본질적 문제가 뒤로 묻히는 경우가 왕왕 나온다. 도로 확장공사로 환경파괴 논란이 이어지고 있는 비자림로가 이번에는 곁가지 논쟁에 빠지는 모습이다. 당연히 도로확장 공사를 진행하고 싶은 측의 간절함이 베어난다.

비자림로의 곁가지는 여러 가지 형태로 강조된다. 대표적인 게 이번 삼나무 벌채가 이뤄진 구간은 ‘대한민국의 아름다운 도로’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점을 부각시키는 것이다. 또 삼나무는 건강에도 별로 유익하지 않은 나무라고 평가절하 한다. 나아가 비자림로는 천연기념물 제 374호로 지정 보호되고 있는 구좌읍 평대리 비자나무숲의 비자나무와 무관하다는 점을 내세우는 것이다.

이는 결과적으로 비자림로 (일부구간에 대해서는) 삼나무를 베어내도 문제가 될게 없다는 결론으로 이어져 사업추진의 정당화 수단으로 활동될 소지가 충분하다.

그럴싸한 곁가지로 본질을 훼손하려는 의도가 다분히 엿보인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 한다는 비난이 나오는 이유다.

#“잠잠해지면 공사 강행 소문”

원희룡 지사는 이달초 제주도의회에서 “비자림로 (확장공사)에 대한 질문은 굉장히 난감하다”며 “사실은 2013년부터 지역구 도의원들의 오랜 숙원사업”이라고 설명했다.

원 지사는 또 “아름다운 도로로 선정됐다고 하는데, 그 부분은 확장공사 구간 자체는 아니다”며 “삼나무는 과수원 방풍림으로 사용되지만 보조금을 지급해서 잘라내고 있고, 아토피나 호흡기 질환 주범으로 꼽히면서 환경단체에서는 수종을 바꾸자는 제안이 나오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원 지사의 답변이 나온 직후 정의당 제주도당은 논평을 내고 “비자림로 확장이 지역 주민들의 오랜 숙원사업은 틀림이 없지만 그 도로가 갖는 보존적 가치를 생각한다면 거꾸로 지역주민을 설득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밝혔다. 정의당은 또 “비자림로 공사는 이미 전국적인 사안이 돼버렸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도 4만명 이상 반대 서명을 했다”며 “제주도 환경파괴에 대해서 전 국민이 아파하고 어떻게 진행될지 지켜보고 있다”고 주장했다.

정의당은 “항간에는 여론이 잠잠해지를 기다렸다가 결국에는 공사가 강행될 것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다”고 덧붙였다.

양쪽 주장 모두 일리가 있다. 그런데 나무가 무참하게 잘려나간 현장을 다녀온 사람들의 생각은 한결같다.

“이건 정말 아닌 것 같다”

#200억 혈세사업 정당성 갖춰야

비자림로는 구좌읍 평대리 평대초교 앞 일주도로에서 한라산 횡단도로인 5·16도로까지 이어지는 길이 27.3㎞의 왕복 2차선 도로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비자림’옆을 지난다고 해서 붙여진 도로명이다.

2002년 당시 건설교통부 주관 평가에서는 전국 88개 도로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도로’로 선정돼 대상인 대통령상을 받기도 했다. 이 구간은 사려니 숲길 일대다.

이번 공사지역은 대천동 교차로∼금백조로 입구 2.9㎞로, 엄밀하게 ‘가장 아름다운 도로’ 구간에 포함된 곳은 아니지만, 도로 양쪽에 삼나무 숲이 병풍처럼 이어져 빼어난 경관을 보유한 곳이다. 공사가 진행되면 2500그루 가까운 삼나무가 잘려나간다. 숲 훼손이 불가피 하다. 경관훼손·환경파괴 지적이 나오는 게 당연하다.

제주도는 ‘지역민원’이라는 방어막 뒤에 남아선 안 된다. 차가 막히면 얼마나 막히고, 교통량은 얼마나 되는지 ‘꼭 해야 할 사업’임을 입증 할 필요가 있다. 제주에 차가 막히는 곳이 이곳만이 아니다. 적어도 200억원이 넘는 막대한 혈세를 투입하겠다면 정당성을 확보해야 한다. 아무리 눈먼 돈이라 하더라도.

본질을 벗어난 ‘곁가지’로 지금의 문제를 덮을 순 없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린다’는 ‘이장폐천(以掌蔽天)’라는 사자성어가 달리 나온 게 아니다.

정흥남 논설실장  jhn@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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